1999년이 되자 우리 가족은 또 한 번의 큰 결정을 하게 된다.
뉴욕에서의 이민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계속 마음속에 한 가지 계획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 오던 기술을 살려 직접 수리점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살던 뉴욕에서는 가게를 얻기 위한 렌트비가 너무 비쌌다. 작은 가게 하나를 시작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차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다른 선택지가 떠올랐다. 바로 서부로의 이주였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뉴욕에 비해 물가도 비교적 낮았고, 무엇보다 작은 수리점을 열 수 있을 정도로 상가 렌트비가 훨씬 저렴했다. 가족 모두가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우리는 결국 동부를 떠나 서부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이사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차 두 대에 짐을 싣고 세 부자—아버지, 나, 그리고 동생—가 번갈아 가며 운전을 했다.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이었다. 장장 5일 동안의 육로 여행 끝에 우리는 마침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이번에 우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곳은 다우니였다.
물론 나와 동생의 신분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는 여전히 불법체류 신분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되면서 조금씩 미국 서부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인생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2000년에 한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어느 날, 그녀가 부모님이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고 혼자 유학생으로 온 것이라면 몰라도, 부모님이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면 합법적으로 이민 온 가족일 가능성이 크겠지. 시민권자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영주권자는 아닐까?’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조금 재미있었다.
그녀 역시 나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과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이 가족도 아마 이민 와서 정착한 집안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오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진짜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유학생 신분이었고,
나는 부모님의 영주권 자녀초청 수속을 기다리는 불법체류자였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상황을 보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사실들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그 모든 상황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
이쯤에서 나는 인생에서 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이미 부모님의 초청으로 영주권 수속이 진행 중이었다. 그때 내가 해당되던 카테고리는 **“21세 이상 미혼 자녀”**였다. 문제는 단순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미혼 자녀’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진행해 오던 부모님의 자녀초청 수속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첫째, 부모님의 자녀초청 수속을 포기하고 결혼을 한다.
둘째, 결혼을 미루고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두 선택 모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결혼은 하되,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나는 법적으로 미혼인 상태가 아닐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한다. 꼭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며 가정을 이루는 커플들도 분명히 있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선택에는 분명한 위험도 있었다.
결혼식을 하고 함께 살면서, 심지어 아이까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법적으로는 ‘미혼’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 훗날 영주권 인터뷰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특히 부모님을 통한 영주권 수속은 여전히 긴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을 내렸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지만, 함께 가정을 꾸리기로.
그렇게 우리는 2001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부부로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3년에는 우리의 첫 아이도 태어나게 된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복잡한 신분 문제 위에 서 있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가족이라는 또 다른 현실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머니가 영주권을 취득한 뒤 5년이 지나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것이다.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서 상황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와 동생의 이민 수속 카테고리는 **“영주권자의 21세 이상 미혼 자녀”**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시민권자가 되면서 우리의 케이스는 자동으로 **“시민권자의 21세 이상 미혼 자녀”**로 변경되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영주권 심사 인터뷰 날짜가 잡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서류를 꼼꼼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나는 법적으로는 미혼 상태였지만, 이미 결혼식도 했고 첫 아이도 태어난 상태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주권 인터뷰 날이 찾아왔다.
인터뷰는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심사관은 서류를 하나씩 확인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결국 내가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 나왔다.
심사관이 서류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2003년에 태어난 아이가 있네요. 결혼은 했습니까?”
나는 준비해 두었던 대로 솔직하게 답했다.
“결혼식은 했고 아이도 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심사관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질문했다.
“영주권자의 21세 이상 미혼 자녀 초청 케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겁니까?”
나는 이런 질문이 나올 때는 오히려 당당하게 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불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네, 맞습니다.”
심사관은 잠시 서류를 정리하더니 그것을 들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몇 분 동안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내려놓더니 영주권 승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그렇게 해서 나와 동생은 마침내 2004년에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우리는 그동안 미뤄 두었던 혼인신고도 정식으로 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던 우리 가족의 이민 신분 문제가 그제야 비로소 하나의 마침표를 찍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영주권을 받은 뒤에도 우리 가족의 이민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영주권 취득 후 5년이 지난 2009년, 마침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시민권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의 신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시민권자의 배우자 초청으로 이민 수속을 진행했고, 그 결과 2010년에 아내의 영주권이 나오게 되었다.
아내의 경우는 시민권자인 배우자를 통해 영주권을 받은 케이스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주권자보다 더 빠르게 시민권 신청이 가능했다. 그래서 3년 뒤인 2013년, 아내 역시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또 한 번 이어진다.
아내는 시민권을 받자마자 자신의 부모님을 위한 가족초청 수속을 시작했다. 그 결과 다음 해인 2014년,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을 따라 하나씩 정리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보인다.
모든 일의 시작은 결국 어머니의 영주권과 시민권 취득이었다.
어머니가 시민권자가 되면서 나와 동생의 신분 문제가 해결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아내의 영주권과 시민권,
그리고 결국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영주권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의 선택과 결단이 여러 가족의 인생을 차례로 바꾸어 놓은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의 공로는 결국 우리 어머니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어머니 덕분에
나와 동생의 신분이 해결되었고,
그 다음에는 나의 아내,
그리고 아내의 부모님까지.
한 사람의 이민이 여러 가족의 삶을 연결해 바꿔 놓은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도 캐나다에서 사는 영주권자인데, 글을 읽는 중에 과거 3년간 영주권이 없어서 불안했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혹여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캐나다를 벗어나 나갈 수가 없던 시절이었는데, 지금도 가끔 그때의 불안감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나이 50대에 먼 타국으로 와서 혹여나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불안해서 조심했던 시절이었죠.
전 합법적인 신분이었음에도 불안했는데, 님과 님의 가족들의 불안감은 상상이 안되네요.
모두 잘 되어서 안정된 신분이 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주변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거든요.
아르헨티나 갔다가 또 미국으로 탈출했는데 그시기 아르헨 이민한분들 다들 비슷한 코스신가보네요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고, 좋은 결말을 거두셨네요
해피 엔딩이라 다행이네요~ ㅎㅎ
저도 미국에 있는지라 많은 공감 하면서 읽었습니다
주변에 고생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구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