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밸리의 들꽃 곁에서 남기는 어느 은퇴 여행자의 넋두리
죽음의 계곡에서 피어난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의 황혼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지금 온통 들꽃이 활짝 핀 데스밸리(Death Valley) 한복판에서 이 글을 씁니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생명력이 요동치는 이 역설적인 풍경 앞에 서 있지만, 정작 제 마음은 더없이 무겁습니다. 은퇴 후 캠핑카에 몸을 싣고 마주한 이 땅 미국과, 내 조국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이 장엄한 자연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펜타곤이 ‘전쟁부’로 회귀하고 국방 수장이 종교적 문신을 과시하며 이란과의 전쟁을 ‘신의 뜻이니 ‘예수 재림을 알리는 아마겟돈 전쟁'이니 하면서 전쟁 운운하는 현실은, 광장에서 들리던 한국 극우 개신교의 광기가 세계 최강대국의 심장부에 이식된 듯한 기시감을 줍니다. 길 위에서 남기는 이 짧은 성찰은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정교분리’를 허무는 거대한 설계에 대한 저의 넋두리입니다.
쇠퇴의 공포가 빚어낸 ‘종교적 발작’
미국 내 보수 복음주의 세력은 지금 인구 급감과 세속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이는 인구 절벽과 청년층의 이탈로 정치적 영향력에 집착하는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정확히 겹쳐집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종교적 생명력을 잃어가는 집단의 ‘발작적 저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적 설득이 불가능해진 이들이 ‘성전(聖戰)’과 ‘종말론’을 동원해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내부 결집을 꾀하는 것은, 사라져가는 권위를 붙잡기 위해 타자의 선혈을 제단에 올리는 단말마적 비명에 가깝습니다.
버니 샌더스의 경고 — 올리가르히와 테크노크라트의 '탐욕의 카르텔'
이 ‘발작’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세력은 바로 자본 권력(Oligarchs)과 기술 관료(Technocrats)들입니다. 이는 버니 샌더스 의원이 수년 전부터 그토록 실랄하게 비난해온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는 일찍이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소수의 억만장자들이 정치·경제적 삶을 통제하는 과두제(Oligarchy) 국가로 변하고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샌더스의 경고처럼, 올리가르히들은 규제 없는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종교적 광기를 일종의 '문화 전쟁'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민주적 합의를 '비효율'이라 냉소하는 테크노크라트들이 결탁하여, AI 감시 시스템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신권 정치의 효율적인 통제 도구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샌더스가 지적했듯, 이들에게 기독교는 신념이 아니라 ‘대중을 기만하고 시스템을 장악하기 위한 OS(운영체제)’일 뿐입니다. 이 결탁은 종교적 광기에 자본의 지속성과 기술의 정밀함을 부여하며, 발작을 영구적인 ‘정치적 상태’로 고착화하고 있습니다.
이란이라는 거울과 한국 사회의 기시감
미국이 이란을 ‘망상에 사로잡힌 정권’이라 비난하며 수행하는 전쟁은 역설적으로 이란의 신권 정치를 그대로 복제하고 있습니다. 헤그세스의 논리는 이란의 아야톨라나 한국 극우 개신교가 반대파를 향해 던지는 ‘종북’이나 ‘사탄’ 프레임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경계해온 ‘특정 종교의 국가 사유화’가 현실화되는 과정입니다. 샌더스가 우려했던 대로, 부의 집중이 권력의 집중으로 이어지고, 그 권력이 종교라는 탈을 썼을 때 민주주의는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는가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저당 잡는 ‘대못박기’ 전략
이 연합 전선이 노리는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되돌릴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법부를 장악하는 미국식 ‘대못박기’는, 한국 보수 개신교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결사반대하거나 교육 현장에 근본주의 교리를 주입하려 사활을 거는 것과 정확히 일맥상통합니다. 법체계 속에 자신들의 교리를 박아넣음으로써 미래 세대의 가치관을 미리 점령하려는 이 시도는, 샌더스가 말한 "소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의 종교적 완성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발작은 일시적 경련을 넘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잔인한 표준’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 민주주의의 생명선을 생각하며
데우스 불트(Deus Vult),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광기는 데스밸리의 메마른 대지보다 더 차갑게 느껴집니다. 샌더스의 말처럼 우리가 "정의를 위한 투쟁"을 멈춘다면, 민주주의는 한낱 장식품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명확합니다.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이 단순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종교의 광기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를 지키는 생명선임을 다시금 선언해야 합니다. 죽음의 땅에서 피어난 저 들꽃들처럼, 우리 민주주의도 이 척박한 과두제와 광기를 뚫고 다시 피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시집가면 시댁에 맞춰 종교도 바꾸는 재밌는 우리나라...
재미로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가고 절에도 가고...
(군대에서 초코파이 때메...ㅋ)
이 좋은 전통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런맛에 클량 합니다
글을 읽는 즐거움을 오랫만에 느낍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75%에 달한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인과응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으로 이끌려 하나나 일부 예수를 팔아먹는 자들은 지옥으로 이끌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