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무기효과(weapon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극도로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는 사람의 감각이 가장 치명적인 자극에 집중됩니다. 그래서 범죄자가 들고 있던 총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지만, 그 총을 누가 들고 있었는지, 그 방 안에 누가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같은 맥락적 정보는 오히려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법정에서의 목격자 진술도 종종 믿기 어려워집니다. 총에 대한 기억이 판단과 사고 자체를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이십 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가 어느 정도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분노와 공포라는 ‘총’에 너무 오래 시선을 고정한 채, 그 방 안에 있었던 더 중요한 맥락과 구조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제 기억에 정치검찰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크게 폭발한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분노 속에 있었고, 그때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며 대들던 기억까지 아직도 또렷합니다. 그 이후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부감과 검찰 집단에 대한 강한 불신은 새로운 미디어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 방송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 ‘총’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분노가 정당했을 수는 있지만, 그 분노가 정치의 중심이 되는 순간 사회 전체가 점점 분노와 불신으로 대립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제 경험은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용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동안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멈춰버린 정치와 제도를 다시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합니다.
검찰개혁 역시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법 시스템을 세워 국민의 인권과 정의를 지키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제도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우리 사회가 ‘사람고쳐 쓰는 것 아니다’는 말보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오래된 말을 조금 더 믿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두가 좀 더 열심히 일해보고자 하게 하는 사회로 다시 도약하려는 이 국가적 분위기를 '무기효과'로 삼켜버리게 하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