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면 무조건 수요·공급과 시장경제만 강조하는 주장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조차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수요·공급 모형의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구매자와 판매자, 동질적인 상품, 완전한 정보, 자유로운 시장 진입과 퇴출, 합리적인 경제주체, 기타 조건 불변
문제는 이 조건들이 현실에서 거의 충족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현실에는 시간과 기술 장벽, 각종 규제, 정보 비대칭, 담합과 불법 행위 등 수많은 요인이 존재합니다.
즉 애초에 교과서적 시장 조건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수요·공급 논리만 보면, 일자리가 부족하고 구직자가 많은 지방에 공장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도권 인프라에 막대한 재정이 지속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은 이미 집적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철과 각종 인프라를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저렴하게 공급하고
그린벨트 해제, 용적률 규제 완화, 각종 정책적 지원, 같은 방식으로 추가적인 혜택까지 계속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경제 원리대로 수요와 공급에 맡기면 된다”는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공정한 경쟁 환경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를 극단적으로 적용하면 ‘적자생존’도 자연의 법칙이니 당연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 범죄를 당해 죽는 것조차 도태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역사를 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보이지 않는 손’과 완전한 자유시장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복지나 사회안전망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과 경제위기로 자신들이 피해를 보게 되자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정부의 개입과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평소에는 자유시장과 경쟁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려워지자 국가의 도움을 요구한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시장경제가 작동하려면 가장 먼저 공정한 경쟁 환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담합, 특혜, 정책적 편중 같은 인위적인 개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주장만 반복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공정성이 중요하다면, 쌍용자동차도 현대자동차랑 나란히 자동차시장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더 상품성이 있는 or 더 저렴하게 만들수 있는 제조사가 살아남죠.
그게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인거구요.
지방이라고 일방적으로 산업이 발달 안하는것도 아닙니다. 지역GDR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곳이 울산이죠.
경제학에서는 지방이 수도권보다 덜 발달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연구합니다.
지방도 고르게 발전해야한다고 하는건 경제학이라기보단 정치적 아젠다에 가깝습니다.
효율성을 포기하겠다면 뭐 자유시장 같은건 무시할수도 있는거겠죠... 현실에서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더 강하니까요.
그러나 효율성을 포기하는것의 대가는 (그것이 비용상승과 국제경쟁력 약화이던, 국가부채의 증가이던)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울산을 예로 들으셨는데 울산의 효율성이 나온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정부의 선택과 막대한 투자였죠.
제가 수요공급모형의 효율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일들을 보면, 비효율적인 배경조건들이 있었다는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공공재의 수요가 많을수록 편익이 높으니 공공사업이 많이 집행되는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히려 지방의 경우 지역균형개발 논리로 인해 BC가 1을 못넘기는 사업도 통과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미 효율성을 포기하고 지방에 특혜를 주고있는 상황으로 볼수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편익 산정 방식 자체가 인구·소득 밀도가 높은 지역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통 인프라의 주요 편익 중 하나인 통행시간 절감 편익은 ‘통행 인원 × 시간 절감’으로 계산됩니다.
따라서 인구가 적은 지역은 구조적으로 B/C 값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실제 효율의 차이라기보다 모델 설계와 정책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개별 사업 기준의 B/C와 국토 전체 기준의 효율성은 다를 수 있습니다.
수도권은 인구와 경제 활동이 집중되어 있어 개별 사업의 B/C가 높게 나오기 쉽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수도권 과밀로 인해 발생하는 SOC 추가 투자, 환경 비용, 주거비 상승, 복지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하면, 국토 전체 관점에서는 효율성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셋째, B/C 분석에는 반영되기 어려운 공공적 가치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국방이나 국가 안전을 위해 강원도 산간 지역에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전략적 필요성은 매우 크지만, 교통량이나 경제 편익이 적기 때문에 B/C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넷째, 비용편익분석은 기본적으로 ‘칼도–힉스 기준(Kaldor–Hicks criterion)’을 따릅니다.
즉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보다는 총편익이 총비용보다 큰지만을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프라 건설로 인해 A도시는 경제적으로 크게 쇠퇴하고, B도시는 그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B도시의 증가한 편익이 A도시의 손실보다 크다면 B/C는 1 이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득을 본 지역이 손해를 본 지역에 실제로 보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결국 몰락한 A도시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만 이런 것은 고려되지 않죠.
저는 이처럼 단순하게 효율성이나 B/C 수요공급 등을 얘기하는 것들이 너무 단편적인 것을 얘기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실제로는 효율적이지 않으면서도 단편적인 것들만 가지고 효율적인 것을 주장하면 결국 문제가 발생하는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