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매 번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어요. 결정 장애의 대명사인 저에게 살면서 가장 쉬운 선택은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하느냐 이었습니다. 두 가지 기준만 들이대면 되니까요. 똑똑하냐! & 착하냐!
여기서 똑똑 의 기준은 명문대 간판 학벌이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 재능이라 여겼어요. 한 국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막중한 책임에는 대다수 보통의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천재적인 똑똑함이 필요하다고 믿고요. 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착함도 따라오더라 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이거를 식별하기는 매우 쉬웠어요.
정치를 전혀 모르던 시절에 치른 첫 대선은 김대중과 김영삼 구도였는데, 지역 신문 한 귀퉁이에서 기자들의 만담 비슷한 평가를 읽었어요. 가장 취재 기사 쓰기에 수월한 사람이 김대중인데, 그의 발언과 연설은 너무나 논리적이어서 손 댈 필요가 없이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반대로 김영삼 관련해서는 극한 직업에 다름없는 고 난이도 작업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맥락 파악이 돼지 않아서 진땀을 흘린다 라고. 그렇다면 김영삼을 알기 위해 우리가 읽는 기사 글들은 김영삼 스스로의 지식이나 철학을 날 것 그대로 반영 했다기 보다는, 기자들에 의해 마사지 된 해석에 가깝다는 거겠죠.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논리있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안다고 믿는 것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맛보기로 게재된 김대중의 발언록을 읽어보았어요. 논리를 중요시하는 제 성향 때문인지, 가슴이 뛸 만큼 좋았습니다. 그 정도에서 이미 제 선택은 정해졌었죠. 그리고 훨씬 나중이기는 했지만, 김대중이 디지털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구상이 이미 1980년대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처럼 쉬운 선택을 두고 왜 사람들은 다른 선택을 하는지 저로서는 불가사의였어요.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에 이르는 선택 모두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어렵지 않았어요. 이들 모두는 두 자질을 겸비한 좋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천재와 착함을 겸비했지만 그것이 열매 맺을 수 있는 토양이 척박해서 씨는 뿌리되 꽃 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산화해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도 있는데, 그래서 노무현은 그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더 강렬하게 더 오래 아니, 영원히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커뮤너티를 팔로우 하다 보면 새로운 기술이나 도구 역시 남들보다 빠르게 접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인지 대부분이 트위터를 모르던 시절부터 이미 계정을 열어서 시사 관련 팔로우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성남시장시절의 이재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트위터 세계에서는 아이돌 스타를 뺨치는 인기였어요. 무엇보다 이재명의 말, 생각, 의도, 구상, 실천력 등, 우리가 정치인을 선택하기 전에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날 것 그대로 접할 수 있고 실시간 피드백 과 리트윗 까지 정말 신세계였어요. 그럼에도 트위터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고 거대 카르텔 언론 기업이 더 많아서 그런지 또 잘못된 선택으로 윤석렬을 거치고 계엄까지 당하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네요.
나의 기준과 선택을 신뢰하고, 더 좋아지고 단단해진 토양까지 갖추어진 현 시대의 나는, 더 이상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