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한글.
해방 직후 대다수가 문맹이었지만,
불과 십여년 만에 문맹률이 4.1%로 급감.
바꿔 말하면,
다른 나라에서 문맹을 줄이기 위해 ... 훨씬 더 긴 세월을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결코 쉽지 않았던 일을 세종대왕 덕에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958년에 이미 문맹률 4.1%
한글은 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바로 한글.
해방 직후 대다수가 문맹이었지만,
불과 십여년 만에 문맹률이 4.1%로 급감.
바꿔 말하면,
다른 나라에서 문맹을 줄이기 위해 ... 훨씬 더 긴 세월을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결코 쉽지 않았던 일을 세종대왕 덕에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958년에 이미 문맹률 4.1%
한글은 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에 다소 왜곡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도... 라고 하기에는 중국의 조건과 많이 다릅니다.
오늘 날에는 우리나라가 보다 선진화 된 나라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중국이 훨씬 선진적인 나라였습니다.
아주아주 오래 전에 이미 비행기를 만들던 나라와 비교하기는 그렇죠.
중국의 성장과 우리나라의 성장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중국은 엘리트 공산 사회라
지도부만 엘리트 여도 상관 없거든요
덩치가 워낙 크니깐요
반면 우리나라는 규모가 작아서 정말 모든 노동력이 전방위적으로 일을 해야하는 구조인데
문맹율이 낮은게 큰 도움이 되죠
세조가 없었으면 한글의 보급도 더디었을거란 얘기가 있더군요
애들을 일을 안시키고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토지개혁이었으니까요.
(1988년 한겨레 신문 창간 이후 분위기가 바뀜)
신문조차 가로읽기+한글로 바뀐게 불과 20년이 안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급격한 경제 성장의 원인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625전쟁 바로 후부터 명문중, 명문고 그리고 명문대를 진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었습니다.
(1960년대 무즙파동 사건 https://namu.wiki/w/%EB%AC%B4%EC%A6%99%20%ED%8C%8C%EB%8F%99)
나는 못배우고 없어도 자식만은 반드시 가르쳐야겠다...라는 분위기가 우리나라 발전의 토석이 되었죠.
아울러 그 뒤로 공부만이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는게 서태지, 박지성, 김연아등의 인물로 인해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어릴 적만해도 연예인들은 "딴따라" 라고 사회에서 엄청 경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