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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태종 이방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것 (숙청에 관하여) 18

4
2026-02-22 20:47:46 수정일 : 2026-02-22 20:49:05 211.♡.72.114
진영인

아들 세종이 워낙 성군으로 유명해서  아버지 태종 이방원도 덩달아서  세종과 함께 최고의 성군으로 알고있는 분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물론 태종 이방원은  똑똑하고 정세파악도 잘하고  결단력도 뛰어난 정치를 잘했던 왕이었죠.

하지만 태종은 세종과 달리  왕조의 큰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결정적 실수를 여러번 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세종의 처가,외가 숙청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흔히들  태종 이방원이  세종의 외가와 처가를  싹 다 정리해줘서 세종이 왕권을 강력하게 행사하며 통치를 할수 있었고 그래서 세종이 성군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오해로 오히려 반대로 세종의 권력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중기나 후기와 달리  세종 당시에는 동인,서인,노론,소론 같은 당파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관료집단이 분열되어서 당파싸움도 없었습니다.

고려말 전통적인 권문세족과 새롭게 일어난 신진사대부가 잠시 갈등을 겪는거 같더니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그들은  지연과 혈연, 혼인,사제,동문,등으로  빠르게 엮이면서 본격적으로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한몸이 되어갔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퇴직후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서로 재판을 봐주면서 거대한  이익 집단이 되어버린 판사,검사의 사법카르텔 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라고 보면 됩니다.  관료집단들이 분리되고 서로 견제가 되어야 왕 입장에서는 양쪽을 번갈아 선택하며정치하기 좋은것인데 

세종시절에는 아직 그런게 없었습니다.

물론 그당시에도 관료들간에  나이차에 따른 세대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종때 조광조의 등장이전에는 본격적인 세력다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광조도 개국공신 한양조씨  조온의 후손으로 당시 기득권세력의 일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기득권 집단속에서 조광조가 별종으로 독특하게 나온거였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계모에 의해서 왕이 못될뻔 했던 악몽같은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자신의 왕권이 안정되자마자 처가 여흥민씨 집안과  후계자인 세종의 처가 청송심씨 집안을 말도 안되는 꼬투리를 잡아서 도륙을 내다시피  숙청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심온이 사형을 당하던날 태종은 자신이 주최한 연회에 세종을 참석하게 해서  술을 마시고 춤까지 추게해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냉혹한 정치현실을 뼈저리게 경험하도록 배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초기 왕에게 처가와 외가는  거대한 관료집단과 맞서서 싸워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대통령 대신에 국힘과 싸워주는 민주당 같은 존재. 

물론 이것이 과해서  특정 집안이 독주를 하게되는 세도정치가 조선후기에 나오게 되는데 그때는 당파정치와 관료사회가 무너진것이 큰 원인이지,

건강한 조선시대라면  처가와 외가가 왕 대신에 여당 역할을 하며 관료사회와 대립하며 왕권을 지켜주는 구도였습니다.


그런 구도를 아예 씨를 말려버린것이  태종 이방원 이었습니다.그래서 세종은 우리가 아는것과 달리 왕 등극후 몇년동안은  관료집단에게 쩔쩔매는  어리버리한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물론 똑똑하고 고집이 센 왕이었던 만큼 자신의 통치철학을 분명히 하며 왕권을 행사했는데

처가와 외가의 빈자리는 어쩔수가 없었죠.


세종은 한덩어리가 되서 경쟁이 사라진  관료집단을 도무지 신뢰할수가 없었죠.

그래서 세종이 꺼낸 카드가 바로 자신의 아들들을 현실정치에 참여시켜서 관료집단과 경쟁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실록에 보면 세종이 관료들에게 맡겼던 업무결과에 만족하지 못해서 자신의 아들들에게 다시 일을 맡겼는데  그 결과물이 몇배나 뛰어나다면서  저들은(관료들) 내가 벼슬만 낭비한거 같다는 대단히 혹독한 비판을 하는게 여러번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태종 이방원이  처가와 외가를 적당히 손보고 길들여서 세종이 자신의 여당으로  활용할수 있게끔 해줬어야 했는데

아예 씨를 말려 버려서  존재를 사라지게 해버렸으니 세종은 그 대타로 자신의 아들들을 현실정치에 참여시키며 권력을 나눠주었는데

문제는 이 왕자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따르는 관료들이 생기고 그들끼리 계파가 만들어 진다는 겁니다.

왕위까지 노릴수 있는 왕자들의 계파형성은 관료들의 당파형성과는 전혀 상황이 다릅니다.


세종이 아끼던 후계자 문종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을 따르던  관료들은 수양대군이 왕이 되어서  자신들도 지금보다 훨썬 더 출세를 할수있는 길이 열렸다는것을 깨닫고 

수양대군에게 강력하게 푸시를 하기 시작했는데  , 이미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수양대군 역시  어린 조카 대신  자신이 왕이 되어야만  아버지와 형의 과업을 이어갈수 있다고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태종 이방원의 무리한 외척숙청이 

세종의 정치적 고립을 자초하게 했고, 세종은 어쩔수없이 왕자들을 현실정치에 참여시켰는데  그 왕자중 수양대군이 권력야욕을 드러내며 계유정난을 일으켜서 테종과 세종의 왕국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었다는 겁니다.


태종 입장에선 손자나 증손자 대까지 내가 어떻게  알고 대처할수 있겠느냐고 억울해 할수 있겠으나

당시에는 왕을 보좌할 거의 유일한 집단인  처가와 외가를 도륙낸것은  왕의 손발을 자르고 외롭게 만드는 것인데 이걸  몰랐다는건  이방원이 당시 정치의 큰 그림을 볼수있는 능력은 안되었다는걸  말해준다고 봅니다.





진영인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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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
아띠팡
IP 58.♡.132.183
02-22 2026-02-22 20:49:02
·
조광조가 개국공신의 후손이었군요.. ;;
진영인
IP 211.♡.72.114
02-22 2026-02-22 21:03:40
·
@아띠팡님 조온은 유명하죠. 거의 고아로 이성계가 데려다가 업어키운 격인데 이방원측에 서서 배신을 해버렸으니 이성계입장에선 배신감이 극에 달했을 겁니다. 오죽했으면 이성게가 이방원에게 조온은 반드시 죽여달라고 부탁을 했었다고 합니다
아띠팡
IP 58.♡.132.183
02-22 2026-02-22 21:07:14
·
@진영인님
유명한 것을 전혀 몰랐네요 ㅜㅜ
스빈
IP 112.♡.178.158
02-22 2026-02-22 20:54:17
·
세종이 초기에는 관료들에게 쩔쩔 맸었군요.
진영인
IP 211.♡.72.114
02-22 2026-02-22 21:05:52
·
@스빈님 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고 외가처가가 없는 상태였던 세종이 많이 당했었는데, 김도련 뇌물사건이라는 것을 세종이 잡아내면서 역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빈
IP 112.♡.178.158
02-22 2026-02-22 21:08:23
·
@진영인님 그렇군요. 글 잘 보고 갑니다.
루슬렌
IP 61.♡.135.249
02-22 2026-02-22 20:59:17 / 수정일: 2026-02-22 21:00:30
·
올바른 해석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우선 정성글에 공감 드립니다.
저도 흔한 해석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간날 때 다른 내용들 더 읽어봐야겠네요.
진영인
IP 211.♡.72.114
02-22 2026-02-22 21:06:38
·
@루슬렌님 네 이런 견해도 있다는걸 알아주시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루슬렌
IP 61.♡.135.249
02-22 2026-02-22 21:09:58
·
@진영인님
아아앗, 딴지 걸겠다는 얘긴 아니었어요.... 그냥 원래 흔한 해석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내용을 보니 흥미가 있으나, 이 부분에 옳다 그르다 할 만큼의 지식은 없어서 더 알아보고 싶다는 얘기였습니다.

혹시 '올바른 해석인지는 모르겠으나' 라는 부분에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진영인
IP 211.♡.72.114
02-22 2026-02-22 21:13:47
·
@우리최고님
당시 태종이 세종의 처가와 외가를 숙청해 버린것은 세종을 보필할 집단자체를 없애 버린거라서
앞으로 세종이 어떤 어려움을 겪게될지 예상 못했다면 무능하다는 말을 들어도 무방하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일단 태종이 상왕으로 있으면서 세종을 후계로 앉힌것은 참 표현하기 애매한데 태종이 왕을 10년 해보니까 왕이 너무 바쁘다는 겁니다.
태종은 신료생활도 해보고 왕의 삶도 해본 유일한 왕이었죠. 왕의 업무는 덜면서 권력은 유지하고 싶고, 놀고는 싶은데 방법이 무언가? 생각하다가 얻ㅇ얻은 결론이 자신이 상왕이 되는 것이었죠.
인사권과 군사권은 자신이 틀어쥐면 된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세종을 앉혀놓고 태종은 신나게 놀러 다녔습니다. 실록에 보면 상왕이되자 태종이 여기저기 사냥 다니고 건물 지은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자신이 돌봐주면 세종의 정치적 고립도 막아줄수 있다고 생각했던거 같은데 사냥갔다가 감기에 걸려서 허무하게 사망했습니다. 아마도 폐렴이었던거 같은데 상왕이 된지 3년후 였습니다.
결국 태종 이방원의 잘못된 판단은 모두 세종이 짊어지게 되었죠
삭제 되었습니다.
아라미스
IP 211.♡.4.76
02-22 2026-02-22 21:12:00
·
전주이씨 대부분이 양녕대군 효량대군파인데

제가 알기론 저희 집안은 정종의 단한명의 생존한 아들인 무림군의 후손이라

태종부터는 죄다 원수 집구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선조가 살아남은 이유도 뱃속에 있어서 였다고 하죠
바람의그림자
IP 115.♡.251.37
02-22 2026-02-22 21:15:56 / 수정일: 2026-02-22 21:16:13
·
태종의 경우 본인의 왕자의 난 경험의 영향이 다른것 보다 더컸다봅니다. 그과정에서 친족들끼리 싸울때 본인이 겪었던 역경이 더 컸던것이 아닌가 싶네요
명이나물
IP 223.♡.214.136
02-22 2026-02-22 21:18:47 / 수정일: 2026-02-23 12:40:43
·
이런 시각 존중합니다

하지만 태종의 과감한 커트가 없었더라면
민무구 민무질 등의 선 넘는 정치개입이
세종때 없었으리라는 보장도 할수 없는거죠

후대의 우리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그냥 그랬을것이라는 추측밖에는 할수 없는거고요

결국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 올곧은 팩트는
태종의 다음 왕인 세종이라는 명군이 나타나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라는 팩트입니다

태종이 적당히 외척을 손봐주는 선에서 그쳤으면
말씀대로 '더 나은 세종'이 나올 수도 있었을수도,
'한글도 못 만든 세종'이 나올 수도 있었던거죠
이건 아무도 모르는겁니다

하지만 결국 태종이 옳았고
최선의 판단을 한 겁니다
세종대왕이라는 "결과"로요
Riverside
IP 77.♡.142.195
02-22 2026-02-22 21:53:11
·
본인의 처가를 견제하는게 힘들어서 자식은 쉽게가라고 다 쳐줬는데, 결과적으로 손자와 증손이 피를 보는 상황이 발생되었죠. 역사는 진짜 몰라요
wither91
IP 118.♡.192.180
02-22 2026-02-22 23:10:38 / 수정일: 2026-02-22 23:11:58
·
개인적으로 조선은 사실상 이방원과 이성계 부자의 공동창업국가라고 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이성계가 그 동료들(정도전 등)과도 대등하게 새 운영체계를 만드는 이방원을 믿고 내린 결단이라 보는 편입니다.

이환경 작가의 시리즈 덕분에 이방원의 평가가 달라진지 벌써 20여년이 되었네요

이런해석 한편으로는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신거라 천천히 저도 시간날때 프레임으로 봐야겠습니다.
흐에에엨
IP 211.♡.195.162
02-22 2026-02-22 23:30:54 / 수정일: 2026-02-22 23:33:02
·
흥미로운 주장인것 같지만, 몇가지 견해가 다른것 같은 부분이 있어서 남깁니다.
일단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건국 한 나라입니다.
유교는 단순 종교나 혹은 율법적 가치만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중앙집권과 관료제라는 고대부터 동아시아에 이어져 오던 행정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고 봅니다.

간단히, 유교에서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어른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럼 왕조 입장에서 보면, 누가 제일 어른일까요? 대체로는 장인이 됩니다. 왕이라는 것은 대체로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없는 상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죠. 혹은 아버지는 없어도 어머니는 계실 수 있죠. 왕은. 즉, 법을 기초로한 중앙집권적 행정 시스템은 아무리 세워 봤자. 법 밖에서 작동하는 권력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그 존재 자체가 외척인겁니다.

고대 중국, 한나라에서 유교 결합 중앙집권제에서 가장 먼저 폐혜로 나타난 것이 외척, 그 다음 귀족관료, 그 다음이 환관입니다. 안정적일때는 세 세력이 서로를 견제했지만 망가졌을 때는 한꺼번에 다 터지는거죠. 그 예사 삼국지에서 우리가 아는 십상시의 난 까지의 과정입니다.

조선 초기의 시스템은 학자출신의 관료를 배양하려고 했고, 이를 통해서 왕권이 견제될 수 있었습니다. 왕권이 견제 당하면 안좋은 것 아니야 할 수 있겠지만. 시스템에서 문제는, 집중화된 권력이 왕 아닌 다른 자가 이것을 휘둘렀을 때가 가장 큰 문제로 봤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무튼 조선은 이 시스템으로 500년 왕조 건립했습니다. 이 정도 관료제가 유럽에서 나타난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 듯, 조선은 환관과 외척으로 인한 폐혜가 그리 크지 않았던 역사입니다. 내부에서 쉽게 시스템이 안무너져서 그게 외려 문제였지. 내부적으로 중앙집권제가 매우 튼튼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설계되고 시행되었다는 것은 맞다고 봐야한다는 것이 제 사견입니다.
3Semo
IP 211.♡.88.174
02-23 2026-02-23 09:30:47
·
이런 의견 참 좋네요.
본 글도, 댓글도 참 좋습니다.

안그래도 늘 세종대왕 아래서 어떻게 세조가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외척을 대신해서 왕자들을 정무에 참여시킨 것이
새로운 파벌을 만들게 된 계기라는 의견이 와닿네요.
깨물이
IP 119.♡.226.97
02-23 2026-02-23 18:33:03 / 수정일: 2026-02-23 18:38:13
·
왕의 외척이나 처가가 탄탄하면
왕권이 강화되는가 질문에
제가 생각나는건 안동김씨, 풍양조씨, 여흥민씨의
순조-헌종-철종-고종 시대인데
그닥 긍정적이지 않았던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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