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폴 그레이엄의 <해커와 화가>에서 보았던 구절을 인용했던 적 있는데, 몇몇 분들께서는 흥미롭게 읽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스패머들이 떠드는 잡상인의 설명을 제한하면, 그들의 사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 (...) 사람들이 스팸에 응답하는 비율은 지극히 낮지만, 스팸을 발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해볼 만한 일이 된다. 반면 스팸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스팸 때문에 발생하는 불필요한 비용은 엄청나다. 백만 명의 사람이 스팸을 지우기 위해서 각자 1초를 사용했다면, 전체적인 합은 한 사람이 5주를 일해야 하는 비용에 해당한다. 하지만 스패머들은 그 비용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스팸을 보내는 것이 스패머에게 최소한의 비용을 부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필터링을 이용하든 아니면 스패머들로 하여금 설명의 내용을 건전하게 만들도록 강제하든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전체적인 응답 비율을 낮춘다면 그들은 언젠가 스팸을 보내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여기에서 잠깐 스팸에 응답하는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그 사람은 남의 말에 바보같이 쉽게 속아 넘어가는 부류이거나 아니면 스패머들이 전하는 성적 유혹에 무의식적으로 끌린 사람일 것이다. (...)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와 같은 식의 표현이라면 오늘날의 스패머들이 늘어놓는 설명처럼 수신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론을 말하자면 스패머들이 더 이상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잡상인 설명을 늘어놓을 수 없다면, 스팸은 그들이 원하는 마케팅 도구의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스팸을 보내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사실 이것 말고도 폴 그레이엄은 다양한 흥미로운 글들을 기고해 왔는데, 이 주제만큼은 요즘 시기에 여러분께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유해 봅니다.
뱀발: 폴 그레이엄은 철학을 전공하고 화가로 일하다가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Y Combinator라는 벤처투자사의 창립자로서 레딧, 드롭박스, 에어비엔비, 트위치와 같은 유명 스타트업을 발굴한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현재 OpenAI에 있는 샘 알트먼도 YC에서 경력을 쌓았죠.
폴 그레이엄은 반박이 세상에 점점 많아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렇기에 반박을 잘하게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출발점으로 그레이엄은 반박의 수준에 대해 위계를 세워 분류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반박의 형태를 분류하는 것의 가장 명백한 이점은 사람들이 읽는 것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적으로 부정직한 주장들을 꿰뚫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달변가인 연설가나 작가는 단지 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를 제압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아마도 선동가의 결정적인 특징일 것입니다. 반박의 여러 형태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는 비판적인 독자들에게 그런 풍선을 터뜨릴 핀을 쥐여주는 셈입니다.
DH0. 욕설 (Name-calling)
- "이 병신아!!!!!!!"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 "이 글쓴이는 잘난 체하는 딜레탕트다."처럼 현학적으로 포장해 봤자 욕설에 불과합니다.
- 해 봤자 말에 별로 설득력이 실리지 않습니다.
DH1. 인신공격 (Ad Hominem)
- 발언자의 주장 자체는 논파하지는 못하지만 발언자를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 욕설보다는 설득력이 있지만 유용하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점을 밝혀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논할 만한 권위나 자격이 없다고 하는 변종이 있는데 이 또한 쓸모 없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종종 외부인에게서 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권위 부족이 실수를 유발했다면 그 실수를 지적하는 게 더 유용합니다.
DH2. 어조에 대한 반응 (Responding to Tone)
- 발언자의 어조에 반대하는 방식입니다.
- 이 수준부터는 발언자가 아니라 발언에 대한 반응을 따지기 시작합니다.
- 주제 자체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중립적으로 보였던 어조라도 불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 어조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매우 까다롭습니다.
- 폴 그레이엄은 경박하지만 옳은 내용이 진지하지만 틀린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합니다.
DH3. 반대 (Contradiction)
- 증거 제시가 없거나 빈약한 채로 반대하기만 하는 방식입니다.
- 이 수준부터는 어떻게 또는 누가가 아닌, 발언 내용 자체에 대해 따지기 시작합니다.
- 보기만 해도 반대 주장이 옳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경우라면 설득력이 생깁니다.
DH4. 반론 (Counterargument)
- 반대에 추론이나 증거를 더한방식입니다.
- 이 수준부터 무언가에 대한 증명이 이뤄집니다.
- 하지만 그 '증명'이 원래 반대하려고 했던 내용과 무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반론이 약간 다른 것을 겨냥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무언가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쟁하는 두 사람은 실제로는 두 가지 다른 것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때로는 서로 동의하면서도, 다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 상대가 문제의 핵심을 놓쳤을 경우, 약간 다른 것에 대해 반론하는 게 의미있기도 합니다.
- 그럴 때는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DH5. 논박 (Refutation)
- 가장 설득력 있는 형태의 반대입니다.
-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지 않도록 인용이 필요합니다.
- 실수라고 생각되는 '결정적 증거(smoking gun)' 구절을 찾아서 인용합니다.
- 하지만 인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논박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 그보다 DH가 낮은 수준의 반대를 하면서 겉치레를 위해 인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DH6. 핵심 논점 논박하기 (Refuting the Central Point)
- 상대방의 실수를 넘어 핵심 논점을 논박해내는 경우입니다.
"글쓴이의 핵심 주장은 x인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용문> 하지만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틀렸다..."
- 상대의 최종적인 핵심 주장이 아니라도, 그 핵심 주장이 의존하는 기반을 논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DH5 중에서도 핵심과 무관한 사소하고 지엽적인 것만 논박하는 건 정교한 수준의 인신공격에 불과합니다.
- 이 경우, 실제로 일어나는 건 논쟁 상대에 대한 '신용'을 깎아내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가 승자를 가리는 방법은 아님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저 더 큰 설득력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반대를 추구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반박의 형태를 분류하는 방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반박의 위계가 우리에게 주지 못하는 한 가지는 승자를 가리는 방법입니다. DH 단계는 단지 진술의 형태를 묘사할 뿐, 그것이 옳은지 여부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DH6 수준의 응답도 완전히 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DH 단계가 답변의 설득력에 대한 하한선을 설정해주지는 않지만, 상한선은 설정해줍니다. DH6 수준의 응답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DH2나 그 이하 수준의 응답은 항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폴 그레이엄은 좋은 반대가 단순히 대화를 나아지게 할 뿐만 아니라, 비열해지지 않음으로서 대화하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잘 반박하는 것의 가장 큰 이점은 단지 대화를 더 낫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대화를 연구해보면, DH6보다 DH1 수준에서 훨씬 더 많은 비열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이 내세울 진짜 주장이 있을 때는 비열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당신은 비열해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에게 할 말이 정말 있다면, 비열해지는 것은 방해만 될 뿐입니다.
반박의 위계를 올라가는 것이 사람들을 덜 비열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열해지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뿐입니다.
원문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출처 링크를 따라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특히 마지막에 '더 알고 싶다면'으로 끝나는 것마저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