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단종에 관한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통해서 단종을 쫓아내고 왕이 될수 있었던 이유중 가장 큰 것 두개는
세종과 문종이 수양대군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면서 자기세력을 키울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과
또 하나 당시 명나라의 정치상황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세종이 수양대군등 자신의 아들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면서 통치에 참여하도록 했던것은
어쩔수없는 측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 같으면 왕자의 정치참여는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이었죠.
명나라의 영락제는 주원장의 4번째 아들이었는데 조카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일으키기 7개월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영락제가 조카를 몰아내고도 강력한 통치를 통해서 황제로 잘 지냈다는것을 두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게다가 영락제의 아끼는 후궁인 여비한씨는 한확의 누나였는데 ,
한확은 누나의 후광으로 조선에서도 강력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수양대군은 그런 한확의 딸을 자신의 며느리로 삼아서(인수대비) 명나라 황실과 확실한 연결고리로 삼았죠.
수양대군은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이 되더라도 명나라의 승인을 받을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미 명나라에는 영락제라는 선례가 있고 한확을 통해서 명나라 황실과 연결되어 있기에
명나라가 자신을 승인해줄거라고 확신했던거 같습니다.
즉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낸것은 명나라 영락제의 사례를 철저히 벤치마킹 한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한국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에 강한 영향을 받아왔는데
문제는 500년후
북한을 장악한 김일성은 마오쩌뚱의 공산당이 국공내전을 통해서 국민당 장제스를 몰아내는데
미국이 끝내 군대를 보내지 않은것을 목격했습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최종 승리하고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망감)
이걸 보면서 큰 나라 중국이 공산화 되는데 미국이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1/40 크기의 작은 조선땅에서 내가 전쟁을 일으켜도 미군은 개입하지 않을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졌던거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었죠.
드라마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김동인의 소설 "대수양"이 생각나네요. 어찌나 미화에 쩔던지 ㄷㄷㄷ
6.25는... 유엔군 없었으면 한반도는 공산주의가 됐을듯 싶어요
당연히 미국이 우리나라 안보를 위한다기 보다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팽창이 미국에 득이 안되니깐 미군을 보낸거든요
아무래도 자국 이익이랑 상관이 없다면.. 아무래도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속에 한반도는 공산주의가 됐겠죠..
암튼 자주국방 중요합니다~
이미 다 알려져 있는 내용이죠. 영락제의 생모가 사실상 누구인지도.. 왜 조선 여인에게 집착했는지..
명나라 초기 궁에 왜 그렇게 고려인, 조선인 환관이 많았는지도..
영락제의 후궁이던 여비 한씨는 영락제 사후 순장되었고.. 이후 한확의 누이도 미모로 이름을 날려 여동생도 선덕제의 후궁이 되죠.
경태제의 생모 공녀 오씨 이야기도 성호사설에 있기도 하고.. 괜히 임진왜란때 30년 파업중이던 만력제가 나선게 아니죠.
경태제의 후손들이 이후 모든 명황제들이죠.
세조의 집권 이면에는 왜 세종은 아들들에게 권력을 나눠주고 정치에 참여시켰나? 라는 당시 상황파악이 중요한거 같더라구요. 우리가 무결점 성군으로 알고있는 세종도 몇가지 실수가 있었는데 후계문제에 있어서도 제대로 대비를 못한 부분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세종 말년에 건강이 안좋아져서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는데 정작 문종의 건강이 더 나빠져서 세종이 다시 집무를 보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문종이 오래 살지 못하겠구나 라는 예상을 당시에도 했었고, 또 당시 대군들의 야심을 지적하는 신료들이 있었고 세손인 단종이 너무 어렸는데 세종이 좀 안일하게 대처했던 면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하여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오늘 영화보고 오니 사라져버린 단종의 가능성이 너무 궁금하네요. 이래서 대체역사물이 흥하나 봐요.
현대사에서 비슷한 케이스인 박정희,전두환도 주변에 신망이 높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고들 하더라구요. 단종은 세종과 문종이 제대로 후계자로 키웠던 인물인데 세조에 의해서 피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렸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죠.
세조 집권후에 조선은 세종시대와 상당히 다른 형태로 변해가게 되니까요.
전두환 미화는 좀 보기 그렇습니다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하거나 오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두환은 나름 7년동안 임기를 잘 마쳤으니 어떤 부분이 성공한 쿠데타가 될수 있었는지 아는것도 중요한거 같습니다. 자신의 집권을 위해서 자국민을 학살한 사람은 미화의 대상이 될수가 없지요.
"잘 마쳤다" 라고 표현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사업분야에서도 그렇고... 직접보고 오는게 엄청 큰 영향을 주더군요 ....
일본의 메이지 유신도 사절단?이 미국와 유럽을 두루 둘러보고 외국의 정책과 문물을 적극 도입했죠...
북한과 남한의 전쟁은 일종의 한 국가의 내란 정도로 볼 거라고 봤을거에요..
그래서 중국은 직접적 개입을 초반에 전혀 안하죠..
다만 저는 중국의 공산화과정에서 미국이 끝내 군대파견은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김일성의 남침유혹을 더 강화하는 요소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흥미 진진하네요. 세조의 권력욕에 이씨왕조가 세락으로 간 시발점이기 하지만.. 문제는 그 피해는 백성들만 봤죠
수양대군이 영락제 쿠테타와 연결을 생각도 못 했습니다.
권력욕망의 제로섬게임에는
바지와 최대수혜자만 있을뿐이죠
실제로 안평대군이나 김종서 쪽도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일으킬거라는 상상 자체를 못했다가 불시에 당했고, 수양대군이 거사를 일으키려고 부하들을 모아서 이제 거병하겠다고 선언하니까 부하들 태반이 무서워서 흩어져 도망가고 얼마 남지 않은 부하들을 가지고 계유정난을 성공시켰죠.
그만큼 당시 단종의 정통성은 누구도 넘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결국 수양대군의 욕망을 한명회가 부채질해서 모험을 걸었는데, 상대편이 너무 방심해서 어이없이 성공한 쿠데타였죠. 상대방의 방심과 운빨의 조합으로 정말 어이없이 성공한 쿠데타였습니다.
한나라의 정승이자 최고권력자인 김종서를 한밤중에 찾아가서 살해하는 방식이 상당히 무식해 보이는데 , 이것은 당시 단종의 정통성과 김종서의 권위가 워낙 막강해서 그러한 테러형태가 아니고서는 김종서등을 제거할수 없었던 것으로 봅니다.
계유정난 당일을 선택한 날도 단종이 궁궐이 아닌 누나 경혜공주의 집에서 자는 날을 미리알고 잡은건데 왕과 궁궐의 경비가 분산되서 수양대군 일파가 그나마 수비대를 제압하기 쉬운 상태인걸 노렸던거 같습니다. 곧바로 단종의 신변을 확보한뒤에는 4대문과 경복궁을 장악하여 밖으로 도망갔던 김종서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서 사실상 쿠데타를 성공시킨거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김종서의 집도 갑자기 불쑥 찾아갔다기 보다 몇일 간격을 두고 신숙주,권람,최항등이 계속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서 방심을 유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더구나 한명회가 미리 살생부를 작성해서 살릴자와 죽일자,회유할자를 구분해서 그대로 실행했다는건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나중에 신숙주,권람등이 이조판서 민신을 설득하다 실패하자 주저하지 않고 민신과 다섯 아들을 모두 도륙내어 죽여버리는걸로 봐서 철저히 역할분담도 잘 되었던거 같습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수양대군이 거병을 하려고하니 부하들 태반이 역모인걸 알고 도망간것은 맞습니다. 이건 그만큼 단종의 정통성이 탄탄했기에 반란은 그 당시에 상상도 할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거부감이 들었을 겁니다. 그 순간 수양대군이 당황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남은 병력을 데리고 계획대로 움직였다는 것은 그만큼 순간 판단력이 뛰어났다는 겁니다. 만약 그날 거사를 하지않고 날짜를 뒤로 미뤘다면 반드시 김종서등에게 알려져서 역모죄로 끌려갔을 겁니다.
그리고 역모에 가담한 면면도 다양해서 신숙주,정인지 같은 집현전출신 학자들부터 자신의 동생 임영대군,영응대군등 왕자들뿐 아니라 정의공주의 남편등 부마들까지, 그리고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이었던 양녕대군도 수양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당대 최고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황희의 아들 황수신도 수양대군에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사회 최고의 계층이 두루 참여한 셈이죠.
수양대군의 인재등용도 파격적이어서 천민출신도 나중에 1등공신을 줄 정도로 능력만 된다면 신분상관없이 기회를 주었습니다.
단순히 무모한 쿠데타가 아니라 철저히 준비하고 계회된 거사였다는 거죠.
수양대군은 단순히 석보상절을 만든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군사분야에서 세종의 특명을 받아서 오랫동안 업무를 수행해서 군사쪽 인맥도 상당히 많았고, 무엇보다 명나라 사신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명나나 사신을 맞이하는 외교관 역할도 해서 군사,외교등 실무에 정통한 상태였습니다.
사실상 바로 왕위에 올라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였죠.
본문에도 짧게 언급했지만 왜 세종은 이렇게 왕자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했는가?
자신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할아버지 이성계를 쿠데타로 제압하는 비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텐데 왜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하는 점은 이해가 잘 안되지만
수양의 계유정난 쿠데타는 다른 반정,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등에 비해서 오히려 더 잘 계획되고 실천된 쿠데타 였다고 생각합니다. 명분이 전혀 없는데 대거 명망가를 포섭하고 끝내 성공시켰습니다.
그런데, 양녕대군이 계유정난을 지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난이 일어난 후에 정국안정을 위해 안평대군이나 단종을 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했던 걸로 압니다만.
그리고, 신숙주나 여러 공신들이 쿠데타 이후에 수양대군을 지지한 건 자기들 이권 때문이었지, 처음부터 계유정난을 기획하거나 지지했던 건 아니죠. 단종을 폐위시키고 나서는 다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구요. 애초에 계유정난이라는 것이 명분은 커녕, 제대로 된 지지세력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게 팩트가 아닐까 합니다.
양녕대군은 직접 계유정난에 연관이 된건 아니나 왕실의 제일 어른으로 계유정난을 옹호해서 완전히 분위기가 넘어가게 한 사람인데 계유정난이 무리한 쿠데타였다면 이렇게 빨리 수양의 편에 서지 않았을것으로 봅니다.
제 생각은 계유정난이 명분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나 치밀한 계획속에 진행되었고 순식간에 당시 조선의 지도층들이 계유정난을 옹호하고 수양의 편에 선걸로 봐서 대세가 그쪽이었다는걸 대부분 알았을 것으로 봅니다. 하여간 이쯤에서 마무리 하시죠
그리고 한확의 누이는 맞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역활을 했는지 여부는 기록에 없습니다.
이 부분도 수양대군이 잘 알고 비집고 들어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