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들에게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각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1997년, Westwood Studios에서 출시했던 동명의 게임 역시 저에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말 그대로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습니다.

혹시 1997년 9월호 PC챔프 잡지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그 잡지에 실린 이 게임의 스크린샷을 보고 가슴이 뛰었던 소년이 바로 저였습니다.


영화의 눅눅한 분위기, 네온사인, 반젤리스 풍의 음악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사인 웨스트우드에서 포인트 앤 어드벤처 게임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소개 문구는 당시의 저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죠.
하지만 정작 이 게임은 한국에는 정식 발매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조기 유학 간 친구를 통해 어렵게 게임을 구해 실제로 실행해 보았지만, 자막 한 줄 없이 쏟아지는 영어 대사들은 당시의 저에게는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사이버펑크 수사 게임이 아니라, 그냥 가혹한 영어 듣기 평가에 가까웠달까요.
결국 엔딩을 보지 못한 채 게임을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한국어화를 시도했다가 기술적 난이도로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는 누군가 해주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결국 2026년이 되어서야 제가 직접 그 작업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이 흥미로운 이유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게임으로 재현’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로이 배티를 쫓던 바로 그 시간, 게임의 주인공인 신참 형사 '레이 맥코이' 역시 또 다른*리컨트 사건을 수사하며 LA를 누비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일종의 사이드퀄입니다.)
영화의 세트장을 그대로 재현한 배경 위에서, 플레이어는 데커드가 방문했던 장소를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영화 속 조연들과 마주치기도 합니다. 특히 숀 영(레이첼 역) 등 영화의 오리지널 배우들이 성우로 참여해 그 몰입감은 지금 봐도 대단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무작위성'입니다. 게임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누가*리컨트인지,
어떤 인물이 끝까지 살아남는지,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는 명확한 정답 없이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바뀝니다.
이 때문에 정해진 공략이 없습니다.
플레이어는 영화 속 데커드처럼 직접 단서를 찾고, 용의자에게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실시하며 스스로 진실을 판단해야 합니다.
“레플리컨트는 어디까지 인간인가”
“그들을 사냥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 도시에서 정의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래서 이 작품은 액션 게임이나 퍼즐 게임으로서의 재미보다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남는 질문을 직접 걸어 다니며 생각해보게 만드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영화를 좋아했던 분들일수록, 오히려 게임적인 재미보다 그 세계를 다시 체험한다는 감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문득 든 생각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인조인간'을 색출하는 게임을 번역하기 위해, 30년 뒤의 제가 진짜 'AI'의 도움을 받아 코드를 수정하고 텍스트를 다듬었으니까요.
1997년 잡지를 보며 기대에 부풀었던 그 소년에게, "먼 훗날 네가 AI와 협력해서 이 게임을 한국어로 만들게 될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아마 말도 안 되는 싸구려 SF 소설 쓰지 말라고 비웃었겠죠.
하지만 그런 미래가 왔고, 덕분에 저는 이 오래된 게임을 한국어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패치 정보 및 설치
이 패치는 최신 시스템에서 고전 어드벤처 게임을 구동해 주는 ScummVM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배포처 (GitHub): https://github.com/schultz1138/BladeRunner-KOR
[설치 요약]
1. 위 링크의 우측 Release 에서 `BladeRunner_Kor_v1.0.0_20260208.zip` 다운로드
2. 게임 폴더에 덮어쓰기
3. 동봉된 `start.exe` (또는 `start.bat`) 실행
그 시절, 언어의 장벽 때문에 2019년의 LA를 제대로 거닐지 못했던 분들에게 이 패치가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이 고전 게임을 누가 할까 싶긴 합니다. ㅎㅎㅎ)
재미있게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얼마만에 맛 보는 제대로 된 20세기 게임인지.. 게다가 한글이라니요... ㄷㄷㄷ
굴러다니는 iso 파일 받아서 돌리고 있는데,
오늘은 잠 자기 다 틀렸지 말입니다.
ScummVM에서는 저장하려면 Ctrl-F5 눌러야 하는군요..
펜티엄 구형 컴퓨터가 있어서
실기로 직접해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나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걸 요새 누가 할까...란 생각에 이렇게 만든 김에 배포까지 하게되었네요.
혹시 이것도 제로베이스에서 AI에게 물어서 패치파일로까지 패키징해 내신건가요? 진짜 너무 놀라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