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얘기는 모든 회사의 IT 인프라 담당자가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저희는 장비 구축이나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데, 신규 장비 구축은 30만 원 정도이지만 유지보수도 30만 원이거나 그 이상을 받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의 설치 공임을 보고는 몇몇 회사에서는 "아니 설치하는 것보다 왜 출장 유지보수가 더 비싸요?" 하고 이해를 못 하시는데요,
실제 현장에 가면 정말 다양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이 장비가 어느 네트워크 스위치나 라우터에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라우터 관리자 모드 접속 암호도 모르고,
심지어 퇴사한 전임자가 장비에 마개조 급으로 엄청난 커스텀을 해놨는데, 그 분 퇴사한 이후 구조를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가 설치한 게 아니라 타사가 설치한 곳에 가서 유지보수를 해준다는 건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이 레고 블럭 세트를 사서 직접 레고를 만드는 거랑,
남들이 몇시간 걸려서 만들어놓은 레고 완성품에서 안쪽에 보이지도 않는 부분의 특정 블럭을 바꿔달라는 것의 차이죠. 뭘 잘못 건드리면 전체가 무너질지 알 수 없습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 외에도 리스크도 큽니다. 고객사에서 라우터(특히 한국에서 많이 쓰는 아이피타임) 관리자 정보를 모르면 초기화를 해야하는데, 이건 초기화하면 기존 정보가 다 날아갑니다. 몇 번 설명을 드리고 진행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저께는 한 중견기업에 갔는데 라우터 초기화를 했더니 사내 엑셀에서 연결해놓은 모든 DB 연결이 끊겼습니다. 근데 DB 서버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일일이 서버 같아 보이는 것들을 찾아서 연결해보고 mysql이 떠 있는 걸 찾고, 다른 PC에서 나는 오류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서버의 아이피 주소를 유추해서 그 DB 서버의 IP를 다시 할당해 주니 정상 작동하더군요. 의심되는 장비 개수가 적어서 다행이지, 수십 개 서버가 있는 서버실이라면 재앙입니다.
그래서 사실 원래는 유지보수 비용을 설치 비용보다 더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설치 비용 정도만 받고 가 줍니다. 현장에서 견적이 아무래도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싶더라도 처음 부른 가격에 해줘야죠.
회사 심장이랑도 같은 IT 기기는 가능하면 원래 설치했던 업체에서 서비스를 받으시는 게 제일 좋습니다. 아니라면 엄청난 비용은 각오하셔야 합니다.
하드웨어 납품이 따라오지 않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비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자연스러운 심리가 있는데, 회사라면 심리에 의존해서 가격을 네고하면 안 되고 체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기분에 따른 판단을 최대한 지양해야 하지요.
한번 작업해보면 그 복잡함에 멘붕이 오죠.
얼마 후에 포드는 1만불의 수리비가 청구된 견적서를 받았는데, 포드는 스타인메츠가 한 일이라곤 분필로 마킹한 것 뿐인데 수리비가 너무 과한거 아니냐며 견적서를 트집잡아 비용이 항목별로 자세히 구분된 인보이스를 다시 보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스타인메츠가
- 분필로 마킹한 비용 $1
- 분필로 어디에 마킹해야 하는지 알아낸 비용 $9,999
이렇게 인보이스를 보냈고, 이걸 본 헨리 포드는 그제서야 수긍하고 수리비를 보냈다고 합니다.
예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나 실렸을 법한 마치 이솝우화같은 얘기이고, 실화인지 여부도 제가 알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전달하는 메세지 때문에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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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썻던 댓글인데, 비슷한 상황인거 같아서 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