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마이뉴스
2017년 1월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자신이 소년공으로 일했던 시계공장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했었습니다. 많이들 기억하실테죠.
그 당시 유튜브 영상으로 기자회견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비록 저는 소년공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공장 노동자 출신이었고 해고되서 온 가족이 서울에 올라와 고생할 쯤인 중학생 시절부터 구로공단 주변에서 일하던 많은 소녀공들을 봤었습니다. 또한 학교 친구들이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조직폭력배가 되거나 공장에 들어가는 걸 봤었기 때문에 옛 생각이 나서 울컥했습니다.
우리가 학생 시절 그토록 주장했던 노동자 후보의 탄생이었습니다. 사무직 노동자도 아닌 공장 노동자 출신.
저는 그 때 이재명이라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그걸 출발점으로 삼는구나 싶어 감동적이었습니다.
동정심이나 사회적 의무감 혹은 사회과학 이념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다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으로 진출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노동자 출신임을 강조하곤 했지만 질적으로 다른 일입니다.
이재명 당시 후보의 기자회견에는 소년공 시절 친구들, 동료들도 같이 참석했었죠. 그게 더 울컥했어요. 노동자 출신임을 강조했던 어떤 이들에 대해 누군가는 그들이 우리를 이용했다거나 팔아먹었다는 분노를 표하기도 했지만, 소년공은 그런 소리를 들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했던 제 아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자기는 휴학하고 공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대학을 졸업하기만 간절히 원했지만 공장에 들어온 학출들은 자신에게 같이 노조 활동을 하자고 하다가 동조 안하면 모멸감을 줬다고. 그래서 무척 그들을 혐오했노라고. 제가 좌파이론을 들먹이면 무척 신경질을 냈던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배가 불러서 그렇게 살 수 있었다고 말이죠.
이재명에게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의 경험이 없다고 폄하하던 이들도 있었고 그래서 비주류로 치부되곤 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멸시, 주변의 집중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음은 물론 그렇게 간신히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데 만족하지 않고 어려운 나라를 구하고 망국적 투기와 이기심을 잡겠다고 노심초사하는 그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그간의 설움에도 불구하고 초심을 잃지 않은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보상심리, 괄시하던 자들을 밟고 싶은 심리가 일반적인데 그는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오리엔트시계 공장 앞에서 그의 기자회견 장면이 떠올라 모처럼 기사 사진을 공유해봅니다.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노동자 출신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