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기병 3.4만 지원군 포함 5만에
홍타이지가 친정하는 주력군 올인 전략인데도
청군 사망자만 7천명 넘는 걸로 추정되고
-아프간에서 20년간 미군 사망자보다 많죠
두달가까이 걸렸고
기병 상대로 이정도면 전투력 자체는 비등했는데
기동력과 그의 파생된 정보력이 문제네요
이정도 전과면 청나라도 이겼지만
일시적으로 타격이 있었던 듯 하네요
홍타이지도 천연두 때문에 빨리 갔다고는 하지만
인질도 이미 챙겼고 근왕병이이나 명의 배후공격이 무서웠을겁니다
사기도 많이 떨어졌을테고
인조 때문에 전쟁에 져서 잊혀진 전쟁이 됐네요
교차 검증된 것도 아니라 믿을 수도 없구요.
자국 피해 상황조차 제대로 집계 못하는 국가가 타국 피해 상황 집계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구요
그후 이제 의병이 등장해서, 싸움이 되고,
지리적으로 산악지형이고, 보급도 어려워, 수성전 하면 우리가 유리한데,
근데 속도전으로 치고 내려와
왕 먼저 딱 잡아 버렸으니, 게임 끝난거죠.
애시당초 우리와는 전면전할 생각이 없었고,
외교만 잘 했다면,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전쟁으로 보여집니다.
청나라의 필요에 의해서 공격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부족이나 인력부족
오히려 공격이 조금 남은 시점에선 오히려 적개심을 덜 드러냈다고도 하네요
네, 경신대기근때도 참혹했죠. 시기도 그 유명한 암군으로 꼽히는 선조라 정신승리해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을병대기근은 탕평으로 유명한 조선 성군으로 꼽히는 숙종때죠. 을병대기근때는 심지어 정승 뿐 아니라 왕족도 기아로 사망했으니 일반 민초들은 어느 정도였을지.....학자마다 이견은 있지만 최대 120만명이 기아 상태였다고 하죠. 그런데 오죽하면 청국이 야, 너네들 너무 불쌍하다...우리가 그냥 쌀 30만석 줄테니 이것으로 위기라도 넘겨라 하니 아비의 나라 명국을 멸한 오랑캐의 도움을 받는 건 부모를 파는 불효이고 금수나 하는 짓이라고 반대했던 게 조선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승, 왕족까지 기아로 죽으니 당장 자기들도 민초들 벗겨 먹다 먹다...벗겨 먹을 게 없으니 받았죠. 국짐당 생각나지 않아요?
그런데 이걸 제대로 배우나요? 이걸 이야기하면 조선은 낙후되었다 그래서 일본 지배가 정당하다는 정한론자냐는 개소리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게 오히려 이병도가 조선편수회에서 활동하다가 광복후 동학과 갑오개혁에서 자강론을 찾는 민족사학자들을 비판하는 논리였음에도 이를 클리앙에서도 많은 분들이 유사한 사관을 갖고 있죠.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는 조선인을 식량으로 탕을 끓여 먹었고, 아이는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후 일본 사무라이 사망자의 원혼을 위한 재물로.....병자호란때는 민초를 포를 떠서 전투식량으로 썼었죠. 그런데 그 당시 사대부와 임금??? 실록 보면 답이 없던 국가였습니다.
기록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실록이 엄청난거지 민간 기록을 포함하면 기록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민간 기록 차원은 정말 빈약하다고 합니다. 너무 빈약한 민간 기록과 방대한 관의 기록. 이게 뭘 말하는 걸까요. 기록도 비용이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생각하면… 전 조선을 좋게 볼 수가 없는거 같습니다.
기록의 민족이 아니라 기록의 왕실이 정확한 표현일지도요.
* 역사학자/도가 아니라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질 만하니까 진겁니다.
제가 주장하는건 기존에 알고 있는
일방적인 피해가 아니라
청군도 예상외의 전력손실이 있었다
정도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