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까르마로써 인생의 적분적 요소를 강조했습니다.
법륜스님은 말합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5학년인 저는 이 부분 실감하고 있습니다.
과보를 많이 지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누군가 내가 걷는 길에 손전등이라도 비춰 주었다면'
물론 그 손전등 빛도 내 그림자에 의해 가려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는 구원으로써 인생의 미분적 요소를 강조했습니다.
아마 다음과 비슷한 것일 겁니다(기독교에 대해 가끔 영상을 보는데, 잘 모릅니다).
'회개하라. 구원받을 것이다'.
5학년인 저는 이 부분도 실감했던 적이 꽤 있습니다.
사지에 몰리게 되면 구원해 줄 누군가를 찾을 수 밖에 없고,
의지하게 되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지를 좀 벗어나면 간절함은 사라지는 게 또한 현실이었죠.
적분과 미분. 한때 이과임에도 불구하고 수포자였던 저로서는
인생의 적분적 요소와 미분적 요소,
모두 어렵게 느껴집니다.
허나,
스토리로써의 수학은 여전히 좋아하고 연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