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금기어가 된 '자살' 이라는 단어가 있었지요.
모두들 '극단적인 선택'으로 에둘러 말하는 그 녀석에 대해서 말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자살관련 연구자도, 정치평론가나 사회분석가도 아니지만, 이 문제 만큼은 언제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 20 여 년째 우울증약을 복용하면서도 용케 회사를 출근하고 있는 저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자살율을 높이는 세 가지 주제인, 우울증과 경제적 빈곤 그리고 리바운딩이 불가능한 사회구조 입니다. 이 세가지는 한국 자살율의 대부분의 원인을 각기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묘한 점이 있지요.
한국의 자살율이 OECD 1등이라는 사실은 이제 중학생들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가끔 리투아니아에게 1위를 빼앗기긴 하지만 우리는 결국 1위를 되찾았지요. 늘 그래 왔듯이.
의외로 그 다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1년에 자살자가 매년 13,000명 가량이라는 사실을요.
(가장 최근 통계에서는 월단위로 산출이 되고 있지요.
하루에 30여 명의 사람이 세상을 등지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달마다 300채 규모의 아파트 전원이 자살하는 셈이고,
8개월 마다 울릉도 주민 전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5단계를 거치면 세상에 못만날 사람이 없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자살자를 주변에 품고 있어야 정상인 걸까요.
직장에서, 심지어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가족이나 친척 가운데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사망신고시에 사인을 단순 사고사로 하는 경우도 있기에 통계의 누락도 있을 것이지요.
제 이야기를 먼저 해 보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늘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 들어오셨지요. 하루는 동네 형에게
흠씬 맞고 왔는데 밤늦게 귀가한 어머니를 보니, 세파에 찌든 그 얼굴에 차마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입을 닫고 살았지요. 늘상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의 특성이었을까요. 책을 읽거나
혼자 사색하고 노래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고2까지 매년 이어졌던 왕따에 대해 한 번도
부모님께 말을 한 적이 없이 살았습니다.
아니군요. 단 한번 중1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린 적이 있군요.
어머니는 한없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그리고 저는 입을 다시 닫았지요.
다행히 고3 시절에는 집단괴롭힘이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공부 비슷한 것이라도 해야 하는
절박함이었겠지요. 저는 그 시절이 행복했나 봅니다.
썩 나쁘지 않은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자유와 괴롭힘이 없는 세상이란 것의 가치를 처음 깨닳았지요.
그때는 자유와 방종을 구별할 시기가 못되었습니다.
밤늦게 술을 먹고 창밖의 고요함을 내다보는 그 시절의 습관은 20 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군요.
그 당시 저는 자살이란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자살한 사람의 기사를 읽으며
"그 사람을 묶어놓고 몽둥이로 계속 때린다면 살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무시 정도로 치부했었지요.
나중에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살은 '죽고 싶다'가 아닌 '살고 싶지 않다' 였습니다.
그걸 한 참 후에서야 깨닳았지요.
하루는 새벽부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00가 죽었다는 것이었지요.
대학 동기는 그렇게 제초제를 마시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십대 초반에 세상에 어찌도 한이 많았던지 그 수많은 방법 가운데 제초제를 썼습니다.
제가 지금도 증오하는 '그라목0'이라는 죽음의 제초제.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시골 농업사에서 푼돈에
살 수 있던 그 약은 수많은 시골 어르신을 소주와 함께 떠나 보내셨지요.
그 약의 더러운 불가역성을 기억합니다. 한 숟가락이면 무조건이요. 입에 넣었다 뱉어도
차마 형용하기 힘든 고통에 몇 일간 몸부림치다 죽어가는 약.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 병원에 밤에 찾아오는 응급 환자 가운데 제초제 환자가 그리 많았다는 것을.
친구의 끝을 지키던 다른 이에게 그의 마지막을 들을 수 있었지요. 차마 그 이야기는 쓸 수가 없군요.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라목손을 구매불가 시키자 번개탄이 유행하더니 질소를 어쩌구 유행하고, 마포대교 난간을 1미터 올려도 자살율은 줄었다 회복되어 갔습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제 인생 처음으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믿을 수 없이 공부에 빠져있던 그 때, 아침 6시에 도서관에 나와 12시에 들어가는 일을
반년정도 하자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뭔가 기분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그러다 그러다 정말 조심스레 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이제 나는 정신과를 갔으니 정신병자로구나" 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론적인 생각과 같았지요.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우울장애 처방을 받고는 끝내 부정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취직을 하여 일이 터졌지요.
몇 차례의 자살시도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망가트리고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저에게 욕을 하던 남자 간호사가 생각납니다.
"당신 스물 다섯이라 이렇게라도 살은줄 알라구. 스물 여섯이면 진작에 죽었을거야."
그리고 5일 후 저는 스물 여섯이 되었지요.
어머니는 조요히 병문안을 오시고는 아버지가 고혈압이니 너와 나만 알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도 삶은 계속되었지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처럼 말입니다.
다시 새로운 직장을 다니게 되고 사무적인 신경정신과 의사는 2주치 약을 주었으나
언제나 잠이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그들의 약처방이 저에게 안맞었던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 컴플레인을 걸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하루는 직장 가까운 신경정신과에서 대기하는 도중에 대기자 명단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직장동료 여자분이 두 명이나 명단에 있더군요. 특이한 성함이라 그 분들임을 곧 알았습니다.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인 사람들이었는데, 누구나 그렇게 살아 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요.
또다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찌저찌 넘어가며, 회사 생활을 이어가곤 했습니다.
사람의 삶은 약하다면 한이 없지만 그 질기기도 매한가지 인것을요.
그러면서 저는 독립생활에 오랜동안 익숙해 졌고 가족과는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출장중에 모텔에서 자려는 찰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먼저 전화가 걸려온 것은 거의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첫 대화가 아직도 떠오르네요.
"왜 이렇게 연락도 없이 지내냐.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연락이 안된다."
동생에게 연락을 하고서야 심상치 않음을 알았지요.
어머니는 마포대교에서 마지막으로 cctv에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시신도 찾을 수 없었지요. 3달간의 수사끝에 사건이 종결되었습니다.
물살이 세서라고 경찰은 이야기 했었지요.
살면서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신을 믿지만 귀신이나 미신은 믿지 않는 편입니다.
나름 과학적인 연구와 관련 직장을 다니며 논리적인 인간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일도 세상에는 존재하나 봅니다.
3달째 실종상태인 그 분에 대한 죄책감이 커질대로 커져서 매일같이 미친듯이 탈진할 정도로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주말에는 자전거에 텐트를 싣고 한밤중까지 어딘가를 갔다가 아무데서나 야영을 하곤 했지요.
그 주말도 그랬습니다. 지칠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고수부지 어딘가에 텐트를 쳤지요.
그리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한 겨울에 오한이 왔고 온 몸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다
새벽녁에 깨어났지요. 그리고 그날 어머니나 발견되었습니다.
장소는 투신하셨던 바로 그 자리였지요.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아려 오는군요.
그 후로 삶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자살시도자에서 자살 유가족이 되면서, 그리고 여전히
약을 복용해야 하는 연약한 사람으로의 삶은 스스로를 내파시켰지요.
그때부터였을까요. '자살'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알고 싶어졌습니다. 오만가지 논문과 관련 서적을 시간날때마다 읽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부터 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지금도 모든 유명 커뮤니티에서 죽음이나 자살과 관련된 글을 모두 스크랩하곤 합니다.
그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저를 우리를, 제 친구와 가족을 죽여 갔는지 하구요.
그러면서 스스로의 개똥철학도 만들어 갔나 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인 자살율의 급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체 인원수는 적지만 적어도 서구권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여줍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나면 30대 이후부터 자살 아니면 암으로 사망할 확율이 높지요..
자세히 말씀드리긴 그렇습니다만 한국에 자살사이트가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찾아서 들어가기 어려운 그곳. 그 안에는 매일같이 죽음을 논의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끝도 없었지요. 두려웠고 안쓰러웠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관련 기사를 읽다가 어떤 분의 댓글이 저의 마음에 오래 남게 되었지요.
'한국은 리바운딩이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이후 이 말은 저에게 화두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진정 선진국이고 인프라와 모든 면에서 손색이 없습니다.
저 역시 북미에서 살다 왔었기에 그런 점을 잘 느끼고 있지요.
하지만 무엇인가 다른 공기라고 할까요 그런게 느껴집니다.
마치 아침 8시에 9호선을 타야할 때처럼 말이지요.
매일 어느 순간까지는 견디지만 임계치를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수습할 방법을 알지도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우울하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에 가는 것은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고 낙인이 찍힐 것이라는 사고가
만연해 있지요. 제작년까지만해도 저도 연말정산에서 신경정신과를 뺐었습니다. 병원명이 다 나오기 때문이지요. 이게 상호가 가려져 제출하게 된것도 꽤나 최근의 일로 기억합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잘못 명명했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동의합니다.
우울하다-> 심해진다-> 우울증
이런 공식이 아니거든요.
우울증은 우울이 심한 증상이 아닌데, 우울이란 단어의 어감으로 그 병을 얕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저 당신의 뇌에 세라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아 감정조율이 되지 않는 흔한 질병일 뿐입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약을 평생 달고 살아도 아무도 뭐라 안그러는 것처럼요.
결국 리바운딩이 불가능하기에 이 사회에서는 직장을 뛰쳐 나가는 것도 창업을 하려는 것도
두려워 집니다. 저는 그러한 반발심리가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 같아도 죽음이 아니라면 그런 선택을 했을것 같습니다.
장 그르니에가 그의 저서 <섬>에서 그런 말을 했지요.
세상에서 자신을 숨기기 가장 좋은 곳은 도시라구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까요.
일견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추세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저를 비롯한 중년의 남자들은 70대가 되면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거나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하는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대의 개똥같은 이야기는 무슨 말인가.
저도 답이 없습니다.
다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죽음과 심지어 자살에 관해서도
그리고 우울과 사회의 문제에 관해서도 더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공론화 해야 합니다. 수백만의 자살 유가족이 쉬쉬하고 살고 있으면서
제 2,3의 죽음의 도미노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집값은 매일같이 오르고 우리는 35년 대출의 노예가 되어 70대에 비로소 대출의 끝을 보게
되겠지요. 하지만 삶이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하여 차시간이 임박한 지금 아무도 읽지 않을 이 글을 써 봅니다.
유연성이 없어 리바운딩이 불가능함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그래서 발전해가는 우리의 사회가 조금은 더 두렵습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욱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이지만 죽음과 마이너리티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높이는 더디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자작시를 써보며 글을 마칩니다.
삶도 죽음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을 말이지요.
<간절히>
오늘도 하염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너에게
삶이란 알 수 없지만
그 끝도 마찬가지
애써 생을 불태워
오늘 내일 절명하려는
그대를 보며
어제까지의
내를 떠올리곤
얼굴이 붉어졌네
순간과 영원은
고통이라
부처가 말씀했지만
그것은 말일 뿐
당신이 사라질
이유는 되지 않지
우울의 힘은 무섭다지
한계가 없으니까
사마천이 말했다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그저 나를 위해
들꽃으로 살아가길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나
꽃을 피워내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으로
그대여
우울도 죽음도
우린 막아줄 수 없네만
태어난 이유가
그것만은 아닐 것을
문장력이 좋으시네요
아무쪼록 마음의 평안을 찾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있는 세상의 판단들은 내 판단이 아님을...
본문에도 적으셨지만, (도시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심이 적어지는 것이 자살을 늘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 요즘 어떻게 지내냐? 밥은 잘 먹고 있어?"라는 말로 대표되는 관심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누군가 나를 봐 주고 있다는 생각은 내 행동을 다듬도록 하는 동기가 되고,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긍정적인 모습을 갖추려고 하는 동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나에게 호감을 가지는 동료가 있으면 신경써서 차려입고 출근하고, 상체도 좍 펴고 멋있게 걸으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게요.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너무 촘촘하게 얽혀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다루는 법을 모르고, 삶의 형태도 획일적입니다. 좀 더 느슨해져야 하는데, 지나치게 응집된 삶이 오히려 사람을 갉아먹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병’이고 삶이여서 뭐라 말씀 드리기가 힘드네요 부디 마음에 평안을 찾길 바라봅니다
40이 훌쩍 넘어 삶의 방향이 그전과는 살짝 바뀌어 가는걸 느낍니다.
적극적으로 살아가는것 처럼 느끼다가도 요즘은 살아낸다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지독하게 현실만 보고 살자고 생각하지만
늘 후회는 과거에서 집어오고
불안은 미래에서 당겨오는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참 힘들어지는 시기인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이 곳에 좋은 글 쓰면서 잘 견뎌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시는 자작시인가요?
조금씩 조금씩 글을 쓰시고 모으셨다가, 책으로 출간해서 보다 많은 분들에게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목표를 한번 가져보심이 어떨지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단지 자신과 비슷한 그늘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분들을 위해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진심의 응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