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관악구 신림동에 살며 중·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1980년대 서울에서 손꼽히는 산동네에 판자집이 있던 동네였습니다.
이해찬 님은 서울대 입구 동네, 동네 사람들이 289 종점이라고 부르는 동네에서 서점을 하셨죠. 제가 대학 갈 때쯤에는 아마 동생분이 하고 있었던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서울대 다니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그저 그 동네 산 너머 사는 사람이어서 잘은 모릅니다.
신림동은 난곡(낙골)이라는 깊숙한 산동네가 있고 그 산동네 뒷산(남강고 옆을 지나는 길)을 넘어가면 서울대와 그 주변 동네가 있었어요. 서울대 앞에 미림여고가 있었는데 저희 누나가 거길 나왔습니다. 저는 그 동네는 아니고 신림사거리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구요. 중학교도 신림동 주변 학교를 나왔는데, 선생님들이 대부분 서울대를 나온 초임교사들이었어요. 오늘 동생(여동생이 중학교 동창입니다. 남녀공학이어서)과 같이 밥을 먹었는데 중학교 시절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나중에 전교조 핵심들이 된 선생님들 덕분에 그 엄혹한 시기에 거의 매를 맞지 않았어요. 그러다 사립고등학교 가서 교사들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시대인지 알게 됐죠. 그때 그 선생님들도 이해찬 님과 이런저런 인연이 다들 있는 분들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이 이해찬 님 학생운동 후배셨을테니 말이죠.
1987년 저희 반지하집이 물에 잠겨 어쩔 수 없이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를 가서 그다음해 총선에서 이해찬 님이 제가 살던 관악을(신림동이 관악을, 봉천동이 관악갑이었더라구요)에서 당선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동생이 계속 신림동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이 신림동에 많이 살아 선거 소식을 접했었습니다. 이해찬 님이 당선돼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대학교 가서 제 정치적 성향은 전혀 달랐지만. 저희 아버지가 김대중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기에 특히 기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청양 출신에 세종시에서 마지막 국회의원을 하셨기에 충청권 의원으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청년, 중년을 모두 관악구에서 지낸 그를 추모합니다. 한동안 이웃 주민으로 살아서 무척 좋았고 든든했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귀한 기억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