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일당의 재판을 지켜 보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듯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저런 뻘 짓을 했을까?”
이 질문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사례와 비교하게 됩니다.
예컨대 전두환의 쿠데타는 옳고 그름을 떠나, 성공할 수 있었던 구조적 조건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전두환은 청년기부터 수십 년간 함께 생활하고 승진해 온 하나회라는 조직을 기반으로 움직였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부대,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오랜 시간 결속된 집단이었기에
명령이 내려가면 망설임 없이 따를 수 있는 내부 신뢰와 공범 의식이 형성돼 있었습니다.
쿠데타라는 극단적 선택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이런 장기간 축적된 조직 결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반면 윤석열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여주지청장에서 문재인 정권 시절 벼락출세를 거듭하다
진영을 달리한 정치 입문과 정권 획득 이후, 불과 1~2년 남짓 알고 지낸 일부 장성들과
국가 질서를 뒤흔드는 내란을 모의했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너무 가볍고 어처구니없게 느껴집니다.
오랜 이해관계도, 생사고락을 함께한 시간도, 조직적 결속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성공 가능성 이전에 상황 판단 자체가 극도로 단기적이고 충동적이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요.
어제 한덕수의 재판 선고를 보며 얼마 전 의사인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가 겹쳐 떠오르더군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 친구에게서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습니다. 본인은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종종 쓰는 이야기라면서요.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암세포는 결국 숙주인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바이러스와 달리
숙주가 죽는 순간 암세포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암은 멈추지 않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암의 진화 방식 자체가 애초에 장기적인 계산을 못 한다”고 하더군요.
의학적으로는 이를 "근시안적 진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암세포는 인간 전체의 미래 같은 건 고려하지 않습니다.
바로 옆의 정상 세포보다 더 빨리 증식하고, 더 많은 영양분을 차지하는 것이 전부라는 겁니다.
숙주가 나중에 죽을지 말지는, 지금 당장의 세포 경쟁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암을 두고 “세포 수준에서 폭주한 이기적 생존 전략”이라고들 한다고 하더군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설명이 있었습니다. 암을 이해할 때 사람들이 가장 헷갈려하는 지점이라면서요.
암은 ‘사람 전체의 운명’이 아니라 ‘암세포 하나하나의 유불리’만 따진다는 겁니다.
보통 생명체는 몸 전체가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지만, 암세포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암세포 입장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자기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더 늘어나느냐가 전부라는 식이죠.
이건 다세포 생물 안에서 유지되던 협력 구조가 깨진 상태라고도 설명하더군요. 정상 세포들은
몸 전체를 살리기 위해 분열을 조절하고, 필요하면 스스로 죽는 선택도 합니다. 하지만 암세포는
유전자 변이를 통해 이런 ‘암묵적인 계약’에서 이탈한 상태입니다. 통제를 거부하고 규칙을 따르지 않으며
무한 증식을 선택하는데, 그 과정에서 숙주가 죽는 건 목표라기보다 통제 불능의 결과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암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외부 기생 생물은 다른 숙주로 옮겨가야 하니
숙주를 너무 빨리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암은 몸 안에서 생겨난
내부 반란이기 때문에 떠날 필요도 없고 남겨둘 이유도 없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란 재판에 연루된 인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들 역시 국가라는 숙주의 장기적인 생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법과 제도, 사회적 신뢰가
어떻게 무너질지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당장의 권력 유지와 당장의 면책이 판단의 기준인 것처럼 보입니다.
의사 친구 말로는, 암세포가 숙주와 함께 사라지는 길을 택하는 이유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시야가 극도로 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란에 연루된 이들의 행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장기적인 국가의 생존이라는 질문 자체가 판단 테이블에 없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설명한 암세포란 한마디로 전체 시스템의 붕괴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점령과 증식에만 몰두하는
폭주한 이기성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내란 행태 역시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 정치적 암세포 현상으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암 치료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방치할 때라고 하더군요.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 규칙을 무너뜨리며 증식하는 움직임을 외면하면
그 끝은 언제나 숙주와 함께하는 공멸로 이어졌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남아 있는 재판들은
단순한 처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 이상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로 보입니다.
부디 그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가 도출되기를 바랍니다.
사회에 암덩어리는 완전히 도려내고 끊어내야 하는게 도리인 듯 싶어 보입니다.
그러니 사회의 암덩어리도 발생하면 바로바로 없애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영구히 해야 건강한 공동체, 사회가 유지될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적어도 몇십년간은 국짐이 정권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