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는 거의 문외한이라 그래도 익숙한 가수들은 장윤정이나 이미 고인이 되신 현철이나 송대관 가수 정도인데 우연히 본 트롯 경쟁 프로그램-현역가왕3 에서 들은 트로트 들은 생경해서 락이나 재즈 국악들과 비교해도 즐기는데 너무 진입 장벽이 높네요.
재밌고도 슬픈 일은 국악쪽 시장이 너무 좁다 보니 국악 하셨던 분들이 트로트쪽에 상당 수 진입하셨거나 시도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하는 지방 행사도 많고 골수팬이나 시청률이 적지 않은 편이니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들이 편성되는 것 같긴한데, 좀 더 강렬해진 뽕끼에 댄스나 기타 여러 요소와의 어설픈 퓨전, 점점 저렴해지는 가사 등 전체적으로 씬 전체의 산출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트알못에게는 근래 트로트는 매우 생경한 쟝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곡들은 평균 이상의 곡들도 있고, 몇몇 가수들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쟝르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긴 하더군요. ㅎㅎㅎ.
그러다 일제 강점기, 또는 5, 60년대 트롯은 뽕끼 하나도 없이 악보에 충실하게 부르다가,
나훈아, 남진 조차 초기에는 악보에 충실하다가.... 슬슬 소위 뽕짝으로 넘어 갔다가,
지금 경연 뭐시기의 뽕짝은 여러 장르의 곡에 뽕끼만 살짝 넣은.... 이게 뽕짝인가? 아닌가?
변종인가?.... 상당 혼란스럽던데, 어느 방향이던, 정립이 되리라 봅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행사만 하는 트롯?? 가수?? 들이 수만명은 될 것 같습니다.
일본의 엔카가 7,80년대에 재즈, 라틴 등과 결합해서 점점 난해해지는 바람에 한국에서 흉내낸 트롯이 오히려 엔카를 잘 게승했다는 얘기도 있었죠. (트롯은 4/4 박자로 대표되는 음악 용어)
일본 엔카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가 한국계라는게 알려졌어도 일본 사람들은 인정! 하면서 아직도 엔카의 여왕으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용필의 "친구"라는 노래는 전통 엔카를 현대적으로 가장 잘 계승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두환때 트롯을 우리의 전통음악이라고 억지부리면서 대대적으로 유행시켰는데, 결과는 디스코, 묘한 전자음향, 유치한(생활밀착형) 가사 등과 결합한 뽕짝 디스코로 발전했고, 장윤정의 "어머나"란 노래가 정점을 찍었습니다.
뽕짝 디스코계의 대표적인 가수인 현철은 여기에 민요적인 요소를 잘 녹여서 한국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트롯으로 재평가 되고 있고, 국악인들이 트롯에 입문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이런 한국 음악인들의 창조적 크로스오버 재능이 온갖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녹아낸 쟝르를 만들어냈고,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는 K-POP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엔카의 아버지? 란 사람이 자신은 한국 경기 민요의 영향을 받았다, 라고 밝히기도 했죠.
최초 창작 신 가요라는 낙화유수, 일명 강남 달은 이게 엔카? 의 영향?.... 전혀 모르겠더군요.
아마 두번째 창작 가요가 제 외할배가 작사 작곡한 암로(어둔 길)이 아닌가? 싶던데....
이 곡도 엔카의 냄새는 전혀 없고, 소위 옛날 뽕짝의 느낌도 없더군요.
낙화유수, 암로.... 둘 다 동명 영화의 주제가였습니다.
또 영화 암로의 제작, 감독, 출연, 주제가 작사 작곡, 다 제 외할배 작품입니다.
덧.... 한 20년도 더 되었지? 싶은데, 경향 신문 1면에 대운짝만하게....
최초의 무성 영화 아리랑의 필름이 발견 되었다고....
실제 필름은 아니고 일본 아베란 사람이 초기 무성 영화 13편을 가지고 있다는 목록의 발견인데,습니
그 목록 속에 아리랑과 더불어 제 외할배의 지하촌 필름도 있더군요.
아직 그 실물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엔카의 영향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대중가요(pop) 시장이 활성화 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다는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여러 갈레가 있어서 모든 우리의 가요가 엔카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상업적인 주류 시장에서 엔카의 상당한 영향은 분명 존재합니다.
배호, 이미자, 나훈아의 노래는 당시 일본 주류 음악시장에서 호환 가능한 음악으로 여겨졌을 정도였습니다.
이 당시 한국 가요계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박춘석 선생은 일본 엔카를 일본인 보다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작곡가로 유명했습니다.
엔카로 대표되는 일본의 묘한 멜로디라인과 분위기는 7,80년대 재즈, 뉴웨이브, 락, 헤비메탈에도 영향을 미쳐서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냈고, 소위 "일뽕"이란 유행과 패션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이미지가 좋든 나쁘든 그런 현상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Queen은 일본에서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다시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진출한 그룹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 음반시장이 막강하여 많은 그룹과 가수가 이런 경로로 유명해졌던...)
일본에서의 성공에 보답하는 의미로 일본어로 된 엔카풍의 곡도 발표할 정도였으니까요. (A Day at the Races 일본 발매판)
대중문화는 역사적, 지리적 배경에 따라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의 소화해서 자기것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바로 문화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우리나라 국민이 이런 능력은 특출하다고 생각합니다.
낙화유수, 암로, 입니다.
엔카의 아버지인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유년 시절을 조선에서 보내며 한국의 정서와 가락에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선린상고를 졸업하는 등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던 사람입니다.
본인 자체가 "큰형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흥얼거리는 조선 가락을 날마다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으며,
이것이 자신의 음악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큰 밑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어요.
죽기 1년 전 인터뷰 등에서 "유소년 시절을 조선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좋은 곡들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죠.
그의 음악이 한국 대중가요(트로트) 형성에 영향을 주었던게.. 뭐 그의 음악에 우리 입맛에 적합한 음악이었을 수도 있죠.
일본은 섬나라 특성상 내륙의 정서와 다른 독특한 정서가 있고, 이것과 결합한 묘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원천은 우리에게 영향 받았지만 섬나라의 독특한 분위기와 결합하여 소위 "일본풍"을 만들어 냈다고 봅니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기괴하기까지한 이런 분위기가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해서 침투력이 상당합니다.
고흐, 모네, 드가, 마네, 고갱 등 19세기 많은 화가들이 자포니즘에 빠져있기도 했구요,
박정희때 본인은 일본 문화에 흠뻑 젖어 살면서도 국민들은 물들지 말아야 한다고 일본 문화를 막은 것도 사실이구요.
역으로 우리도 그런 영향을 받은건 분명한 사실이고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K-컬쳐의 시대입니다.
초창기 신 가요, 뽕짝의 시작은 민요의 영향이 맞는 것 같긴 합니다만,
소위 말하는 뽕짝, 김정구 류의 뽕짝 등등, 뽕짝의 전성기에는 엔카의 영향이 많았으리라 봅니다.
그렇다고 뽕짝의 시초 조차 엔카의 영향이었다고 보기엔 좀....
뽕짝의 시초가 우리민요라는 주장으로 뽕짝, 트로트가 아닌 "전통가요"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시절 "민족문화 계승"을 모토로 여의도 관장에서 대규모 공연인 국풍81을 개최했는데, 이 이후부터 전통가요 외에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엔카, 뽕짝, 디스코뽕짝, 트로트...등등으로 다양한 장르를 얘기하지만 그 시절엔 그냥 전통가요였습니다.
엔카는 엔카대로, 뽕짝은 뽕짝대로 같은듯 다른듯...일본풍인것도 있고, 민요풍인것도 있고, 그냥 디스코인 것도 있고 갈레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단지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시장이 활성화 되는 단계에서 일본풍의 영향은 당연히 있었고,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