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세계대회가 1988년이라 그 이전은 서로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90년대 초반까지는 세계랭킹이랄게 없다시피 했습니다. 몇일전 타계한 중국 섭위평(녜웨이핑)도 80년대 후반에는 일본최강 기사들 상대로 연전연승해서 최강자로 꼽혔죠. 이창호도 91년쯤부터 국내바둑 1인자가 됐지만 세계대회에서는 신통찮았습니다. 요다란 천적도 있었고. 물론 나중에는 다 극복하지만요
@anotherK님 뭐 그때 까지야.. 일본은 중일슈퍼대항전은 그냥 이벤트 성격의 대회로 생각했습니다. 일본 내수 기전의 2일 바둑이 아니면.. 별로 인정을 안하던 일본 분위기도 있었고.. 일본이 워낙 최강의 바둑국가여서.. 중국에 바둑 보급을 목적으로 한 거였죠. 섭위평도 최상급 기력이었지만.. 80년대 1인자라면.. .1인자는 80년대 초반은 조치훈(한국 국적이라 중일 슈퍼대항전은 참가도 못했죠.), 고바야시 고이치, 80년대 후반은 조훈현(실력에 비해 소속 기원 핸디캡으로 저평가 받던..)중 한명이라고 봐야죠.
그 당시는 세계대회는 별로 없었지만 압도적 최강자는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것 같습니다. 조훈현은 다케이야에게 연전연패, 대신 다케미야는 조훈현 제외 이창호등 국내기사들에게는 호구나 다름없었고. 섭위평은 일본기사들은 잘 잡는데 전성기가 지난 임해봉한테 여러번 발목 잡히고... 물고 물리는 관계 비슷했었는 듯. 세계대회서는 부진했지만 평소에 꾸준하게 잘 두는 고바야시도 있었죠.
그 시절 다른 기사랑은 차원이 다른 기사였죠. 당대 최고수들을 마치 아기 다루듯이 다뤘달까요. 바둑이란게 고비도 있는데 그런게 별로 없었어요. 유리하면 그대로 밀고가서 평범한 수 만으로 반집이라도 쉽게 이기고 불리할 때 뒤집는 승부수가 발군이었죠. 이창호가 바둑을 두면 질 것 같지 않은 안정감이 들었죠. 지금 최강이라는 신진서에게서도 느끼지 않을 그런 편안한 아우라를 가진 기사였습니다. 기사들이 처음 알파고를 보고 괜히 이창호 같다고 한게 아니겠지요.
로보95
IP 39.♡.50.2
01-21
2026-01-21 0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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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아리님 바둑을 잘 모르지만 신산이라고 불리던 이창호 다음을 이세돌이 제패했던거 보면 왜 이세돌이 AI를 이긴 유일한 사람이었나 하는게 얼핏 이해가 되네요
누렁황소
IP 210.♡.207.233
01-20
2026-01-20 12: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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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조훈현을 보고나서 저는 바둑을 잡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폴라티
IP 218.♡.81.150
01-20
2026-01-20 13: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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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황소님 특정 분야의 기능인이죠.
DSCi
IP 211.♡.172.53
01-20
2026-01-20 13: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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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넘사벽이었네요. 이창호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쭈쭈
IP 106.♡.52.156
01-20
2026-01-20 1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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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최택이 안보이네~~
IP 210.♡.78.9
01-20
2026-01-20 1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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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알파고 나온 다음... 신진서 도 대단하네요~ ㄷㄷ
오리날다고
IP 121.♡.20.188
01-20
2026-01-20 14: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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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창호 시기에는 한중일이 바둑에 미쳐돌아갈때였죠... 내노라하는 인재들이 바둑에 다 몰리던 시절 시대를 지배한...
Rick
IP 125.♡.108.76
01-20
2026-01-20 14: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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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 최택6단 파이팅!!! .. 그러나 이 시기의 바둑이 끝내기에 너무 약해서(신경을 안써서) 이창호의 집요한 추궁을 떨쳐내지 못했죠. 이국수의 끝내기에 당해서 폐인(?)이 된 기사도 여럿이라지요. 중반 이후 '어어어?' 하다가 던지게 되는, 아주 고약한 바둑이었습니다.
카이바시
IP 220.♡.39.1
01-20
2026-01-20 16: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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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도 특이하네요. 업 다운 업 다운 업
.gerad33
IP 106.♡.77.53
01-20
2026-01-20 17: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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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네요. 30여년동안 한국이 1위
새생새사
IP 59.♡.65.100
01-20
2026-01-20 17: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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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까지 신진서가 중국인으로 알고 있었네요. 대단 합니다.
따불로
IP 210.♡.233.1
01-20
2026-01-20 17: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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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이라고 불렀었죠. 이창호는 일반인이 따라할 수 있는 기풍이 아니라 감상용이었죠. 저는 유창혁 기풍을 좋아했습니다.
HARO
IP 106.♡.184.187
01-20
2026-01-20 17: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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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처음 들었는데 7년이면 이세돌보다 오래네요...
pluto248
IP 211.♡.162.75
01-20
2026-01-20 2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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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이번에 다시 AI에 도전한다는 그분 아니신가요? 어떻게 진행 되고 있는 지 궁금하긴 합니다.
uncertainty
IP 125.♡.171.159
01-20
2026-01-20 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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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중 41년.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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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가진 땅이 작으니
땅따먹기라도 잘해보자라는??
뭐 그때 까지야.. 일본은 중일슈퍼대항전은 그냥 이벤트 성격의 대회로 생각했습니다.
일본 내수 기전의 2일 바둑이 아니면.. 별로 인정을 안하던 일본 분위기도 있었고..
일본이 워낙 최강의 바둑국가여서.. 중국에 바둑 보급을 목적으로 한 거였죠. 섭위평도 최상급 기력이었지만..
80년대 1인자라면.. .1인자는 80년대 초반은 조치훈(한국 국적이라 중일 슈퍼대항전은 참가도 못했죠.), 고바야시 고이치,
80년대 후반은 조훈현(실력에 비해 소속 기원 핸디캡으로 저평가 받던..)중 한명이라고 봐야죠.
특이한 자세(?)로 책을 보고 있어서 처음엔 누군가 했네요. ㅎ 나중에 알고 보니 나랑 동갑..@..@
당대 최고수들을 마치 아기 다루듯이 다뤘달까요.
바둑이란게 고비도 있는데 그런게 별로 없었어요.
유리하면 그대로 밀고가서 평범한 수 만으로 반집이라도 쉽게 이기고 불리할 때 뒤집는 승부수가 발군이었죠.
이창호가 바둑을 두면 질 것 같지 않은 안정감이 들었죠.
지금 최강이라는 신진서에게서도 느끼지 않을 그런 편안한 아우라를 가진 기사였습니다.
기사들이 처음 알파고를 보고 괜히 이창호 같다고 한게 아니겠지요.
왜 이세돌이 AI를 이긴 유일한 사람이었나 하는게 얼핏 이해가 되네요
그러나 이 시기의 바둑이 끝내기에 너무 약해서(신경을 안써서) 이창호의 집요한 추궁을 떨쳐내지 못했죠. 이국수의 끝내기에 당해서 폐인(?)이 된 기사도 여럿이라지요. 중반 이후 '어어어?' 하다가 던지게 되는, 아주 고약한 바둑이었습니다.
이창호는 일반인이 따라할 수 있는 기풍이 아니라 감상용이었죠.
저는 유창혁 기풍을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진행 되고 있는 지 궁금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