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불꽃은 우리를 한순간에
민주주의의 장으로 데려와주었으나
독재와 권위주의의 모멘텀을 줄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려
우리는 한동안 권위주의의 악취가 나는 민주주의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을 처음으로 타파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건국 이래 최초로 권위를 내려놓은 국가 원수였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도
권위주의는 끈질기게 되살아났고
그 결과 우리는 2번의 탄핵을 통해
민주주의 방어전을 지속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약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지켜낸 결과
우리는 또다시 민주주의를 업데이트할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라는 하드웨어에
심의라는 소프트웨어를 심는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이를 담당하는 총 책임자는 이재명 대통령입니다.
기존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바를
신속하게 관철시키려 애를 썼습니다.
신속함을 좋아하는 인민들이 많은 터라
이런 패턴이 계속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심의 민주주의는 느린 것이 정상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다보면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옆으로도 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아가야할 방향만 지도자가 올바르게 짚고 있다면
결국 우리는 나아가야할 곳에 더 많은 인민을 이끌고 도착할 것입니다.
지지자만 믿고 정치하는 공화국의 반역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공화국 인민의 공익을 위하는 지도자라면
지금처럼 돌다리를 두들기는 것이 맞습니다.
느려서 답답해보일지라도
더 많은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것이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더 높은 레벨의 민주주의로 나가는 중입니다.
폭력적이고 물리적으로 해결하면
사이다고 시원은 하겠지만
같은 일이 또 반복되겠죠…
'심의 민주주의(discursive democracy)'라는 용어에 다소 이질감을 느꼈습니다만. 같은 의미로 쓰는군요.
우리 나라에서는 심의(審議) 라는 말이 '어떠한 권위를 가진 집단이 정책/입안을 재가한다.' 라는 뉘앙스를 포함하여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감 상 저는 숙의(熟議)라는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
discursive democracy의 번역으론 담론민주주의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검찰개혁해야 한다는 의제를 시민사회가 형성케 한다는 게 심의 내지 담론민주주의의 포커스라면, 그렇게 형성된 의제도 시민사회가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며 토론해서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게 숙의민주주의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숙의해야할 때죠. 철저히 감정적 반응은 배제한 채 자료, 근거, 이유 등을 제시하며 상호설득해서 최종 합의를 이끌어야 할 때라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