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 이슈만 나오면 꼭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비판하면 안 된다”, “그래도 저 정도면 괜찮지 않냐”, “지금 그 얘기 할 때냐”.
어느 순간부터 특정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성역이 되어버렸습니다.
토론은 사라지고, 질문은 배신이 되고, 비판은 적대 행위가 됐죠.
이걸 존중이라고 포장하는 경우도 많은데, 솔직히 말해 그건 존중이 아니라 사고 정지에 가깝습니다.
생각하기 귀찮아질 때, 혹은 인정하기 싫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건드리지 말자”거든요.
물론 이해는 됩니다. 어떤 정치인은 과거에 분명 성과도 있었고
내 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을 줍니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그래도 저 사람은 믿어도 된다”는 생각은 꽤 달콤하죠.
문제는 그 달콤함이 면죄부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같은 행동을 해도 내 편이면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상대 편이면 “국정 농단”, “도덕적 파탄”이 됩니다.
내가 지지해온 정치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언론이 왜곡했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선동한다”
“그래도 저쪽보단 낫다” 이런 말로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이쯤 되면 정치 판단이 아니라 자기 방어죠.
여기에 권위에 대한 복종, 다수에 휩쓸리는 분위기까지 겹치면 질문은 점점 사라집니다.
정책이 아니라 인물을 믿고, 논리가 아니라 진영을 따르고
팩트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정치 공동체의 자정 능력은 사실상 마비됩니다.
명백한 문제도 “지금은 공격할 때가 아니다”
“우리 편 내부에서 이런 말 하면 안 된다”라는 말로 덮입니다.
비판이 사라진 정치 집단은 필연적으로 썩습니다.
견제 장치가 멈춘 권력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니까요.
그 피해는 언젠가 반드시 지지자 본인에게 돌아옵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앞장서서 방어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가장 크게 분노한다는 겁니다.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건 없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그래도 믿었는데”라는 말은
“그래서 더 배신감이 든다”로 바뀝니다. 지켜주겠다고 쌓아 올린 성역이
결국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그 인물을 무너뜨리는 구조입니다.
정치에서 누군가를 신성시하는 순간, 그건 지지가 아니라 위험한 위임이 됩니다.
어떤 정치인도, 어떤 진영도 질문과 검증의 대상에서 예외가 되는 순간부터 썩기 시작합니다.
존중은 침묵이 아니라 감시에서 나오고, 민주주의는 충성이 아니라 의심 위에서 작동합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문장만 남기자면 이겁니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인은 이미 권력이 아니라, 우상이 된 겁니다.
윤어게인으로 망해가고 있는 국힘의 증명으로도 부족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