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홀로 있을 권리’를 파괴했는가
By Tiffany jenkins
미국인들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을 열성적으로 지우기 시작했다.
1973년, 방송 최초의 리얼리티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우드 가족은 방송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제작자는 그러한 비전보다 미국 중산층 가정 생활에 더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7개월의 촬영 끝에 이 가족은 헤어지게 되었고,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일방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부르주아적 산물인 ‘사생활’은 18세기 리버티적 개념에 뿌리를 두었고, 1900년 초 홀로 있을 권리로 인정받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그러한 개념은 무너지고 있었다.
라우드의 부인은 이후에도 그 방송 출연을 옹호했고, 한 가정에 사생활이나 비밀 같은 것은 문제라며 오히려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공개가 더 좋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전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자신의 책 고독한 군중에서 교회, 가족, 사회적 위계 같은 전통적인 권위가 대중 교육과 TV, 라디오 같은 미디어에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사람들이 타인과 원만하게 일하고 즐기는 서비스와 영업 위주의 순응주의자들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스먼은 이러한 변화가 세상을 내부 지향적에서 타인 지향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고, 미국인들이 전통적인 권위나 내면 세계보다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타인 지향적 인간형을 발달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리스먼은 그러한 인간형이 존경보다는 사랑받기를 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1979년 크리스토퍼 라쉬는 나르시시즘의 문화라는 책에서 나르시시즘적 자아를 말하면서, 그러한 자아는 사생활의 자아를 점점 더 타인의 찬사를 위해 공개하기까지 한다고 썼다.
사회학자 토드 기틀린은, 1980년대 오프라 윈프리나 필 도나휴가 출연하는 고백형 TV 토크쇼의 유행과 맞물려 버클리 대학의 학생들이 사생활과 공생활의 구분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60년대 내내 사회운동단체 SDS를 이끈 기틀린도 진정성을 정치화함으로써 개인적 경험과 정치적 행동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나르시시즘 적 자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1962년 SDS는 창립 선언문에서 개인적인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직면하는 정신을 찬양하면서, 좌파 정치를 계급적 연대보다 개인주의적 문제로 전환하려고 했다. 실제로 신좌파는 개인의 경험과 성장에 기초한 정치를 옹호하였고 사적인 것을 공적 영역으로 가져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생활의 붕괴에 대한 결정타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었다. 기존의 페미니즘이 법 제정이나 직장 개혁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반면, 급진적 페미니즘은 삶에서 나온 증언들을 공유하고 고민들을 듣는 것으로부터 사회를 분석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자유주의 전통이 공적 생활과 달리 사적 생활을 자유로운 성소로 남겨둔 것을 겨냥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것으로 비판했다.
정치와 개인적인 것마저 오락의 일종이 되면서 진정한 자아와 내밀한 고백이 담론의 주류가 되었고, 더 나아가 위선은 현대의 치명적인 죄악이 되었다. 공적 생활에 사적인 것들(울음, 범죄, 고백 등)이 들어오고 정중함과 형식적인 예절은 사라졌다. 삶과 죽음의 본질적인 논의조차 감정의 문제가 되었고 개인적 경험이 우선시되었다.
오늘날의 사생활 개념이 데이터 보호라는 좁고 빈약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생활의 붕괴에 대해 오늘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희생양으로 삼는데, 이미 우리는 60년대부터 시작된 포스트-프라이버시의 세상에서 살고 있고 있는 것이고 디지털 혁명은 정체성의 노출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디지털 디톡스나 플랫폼 규제만으로는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없고, 모든 것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자체를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해체했는지 먼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직접 요약)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6/01/07/privacy-internet-loud-family-politics/
글자가 2000자를 넘쳐서 댓글에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