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첩 이후 일본은 그 이후 최종예선에서도 경기를 말아잡숴
카모슈 감독이 내려오고 코치인 오카다 감독으로 첫경기를 치릅니다.
이 한일전을 잡지 못하면 무조건 본선진출 실패인 상황
소마 나라하시 아키타 이하라 가와구치 수비진 그대로
키타자와라는 말총머리 선수가 처음 선뵈입니다.
공미엔 좌우 나나미와 나카타 그리고 수미엔 야마구치
나나미는 현재는 월드컵 국대 코치에 있는거 같더군요
잠실경기장은 도쿄대첩 이후 한일전이라 방송이나 국민들
열기가 2002월드컵 저리 가라할 정도였습니다. 차범근 인기 절정
우린 장대일 노상래 등이 새로 들어왔고
역시 윙백엔 하석주 이기형
윙엔 고정운 서정원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소마에게 왼쪽이 뚫리며 이어없이 5분도 안되 헌납하고
몆십분 지나 똑같이 왼쪽이 털려 동일하게 2대 0으로 마무리
일본은 기사회생합니다
그 다음해 요코하마 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다이너스티 컵에서
일본의 신성 조쇼지(지난달 골때녀 출연)에게 털리고
여론이 급속하게 악화됬죠
98년 4월 빗속의 잠실에서 황선홍이 복귀하며 2대1로 겨우 설욕합니다
한일전 이후 이기형은 내려왔고 고정운도 마찬가지
고종수 넣고 최성용 넣어서 프랑스로 가게됩니다.
이상윤이 주 공격루트로 98년 전술루트가 바뀌었고
아시다시피 이상윤도 본선에선 ㅜㅜ
2010년 박지성이 일본경기장 산책세레모니가 최근에 우리기억엔 시원했던 한일전이지만
한일전은 역시 잠실주경기장 6만 꽉 채울때 분위기가 압권이였습니다.
그 시절 새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