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 레빈슨 태프트(Hessy Levinsons Taft): 나치 잡지 표지에 실린 ‘이상적인 아리아인’ 유대인 아기
1935년, 독일 잡지 Sonne ins Haus(가정의 태양)의 표지는 ‘이상적인 아리아인 아기’의 사진으로 장식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 아기는 사실 유대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진은 순식간에 아기 옷 광고, 엽서, 심지어 일반 가정의 벽면까지 도배하며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기의 부모는 자신의 딸이 어떻게 잡지 표지에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당황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그들은 이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기로 맹세했고, 그 아기가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비밀로 유지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말: 위험한 장난과 나치의 모순
* 배경: 1934년, 베를린에 살던 라트비아 출신의 유대인 오페라 가수 부부는 생후 6개월 된 딸 헤시(Hessy)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유명 사진작가 **한스 발린(Hans Ballin)**을 고용했습니다.
* 사건: 사진작가는 나치가 주최한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인 아기’ 선발 대회에 헤시의 사진을 몰래 제출했습니다. 당시 나치의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직접 이 사진을 우승작으로 선정했습니다.
* 작가의 의도: 훗날 헤시의 어머니가 항의하자 발린은 "나치 정부를 비웃고 싶었다. 유대인 아이가 가장 완벽한 아리아인으로 뽑히는 것을 보고 내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하고 싶었다"라고 답했습니다.
탈출과 새로운 삶
나치의 인종주의적 유사과학(pseudoscience)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된 헤시의 가족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긴 여정을 떠나야 했습니다.
* 독일 탈출: 1937년 독일을 떠나 라트비아로 돌아갔습니다.
* 유럽 내 피신: 이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으나, 1940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다시 니스(Nice)를 거쳐 쿠바(Cuba)로 탈출했습니다.
* 미국 정착: 1949년 최종적으로 뉴욕에 정착했습니다.
헤시는 학업에 정진하여 바나드 대학교에서 화학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교육 평가 서비스(ETS)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AP 화학 시험을 관리했고, 세인트 존스 대학교에서 화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유산과 사망
헤시 레빈슨 태프트는 2026년 1월 1일,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생전에 이 사건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만약 당시 나치가 내 정체를 알았다면 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인지 보여주는 '기분 좋은 복수'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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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소장하던 잡지 원본 중 하나를 1990년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에, 또 다른 하나를 2014년 이스라엘의 야드 바솀(Yad Vashem)에 기증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