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장제스가 도왔다, 카이로선언에 조선독립 명시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했다... 라고 말씀하시면, 장제스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이나 공격적으로 반응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사실, 지금 2010년대 이후로는, 공산 중국 조차도 장제스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복합적이고 오히려 애국자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가끔 중국에서 나온 역사드라마를 보는데요. 보다가 좀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어서 적어봅니다.
예전엔 중국 쪽 콘텐츠에서 장제스 하면 거의 무조건 ‘반동’, ‘매국노’, ‘악당 보스’ 같은 이미지였잖아요.
근데 최근 드라마들을 보면, 생각보다 장제스를 꽤 우호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물론 영웅으로 찬양하는 건 아닌데,
“악마”라기보다는, 항일전쟁을 진지하게 수행한 애국자 하지만 시대 흐름을 못 따라간, 한계가 분명한 인물?
이런 식의 묘사가 많아서 좀 놀랐습니다.
그래서
“왜 요즘 중국에서 장제스를 이렇게 다르게 평가하지?”
이게 궁금해져서 좀 찾아봤는데, 대충 정리해보면 이유가 몇 가지 있는 것 같아요.
1. 중공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는 점
예전에는 국민당이랑 중공이 “누가 중국의 정통이냐”를 놓고 싸우던 시기라
장제스를 악마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컸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솔직히 말해서
중공 입장에서 국민당이나 장제스는 더 이상 위협적인 경쟁자가 아니죠.
그래서
“장제스는 애국자였지만, 결국 역사의 선택은 우리였다”
이런 식의 여유 있는 서사가 가능해진 거죠.
이건 비판을 철회했다기보다는, 도덕적 악인에서 역사적 패배자? (천명이 떠난 지도자같은 느낌.. 초한지에서 항우 vs 유방에서 항우느낌?)로 위치를 바꾼 느낌에 가깝다고 봅니다.
2. ‘어쨌든 하나의 중국’ 서사에 쓸 수 있는 인물
이게 꽤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장제스도 결국 입장은 다르지만, 중국 통일을 주장했고 (국민당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일본에 맞서 싸웠고 (분명한 건, 당시 압도적인 국력의 일제의 강화회유에도.. 불리했어도, 끝까지 투쟁을 고집했으니)
“하나의 중국”이라는 국가 개념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잖아요 (그 하나의 중국이 자기쪽 입장의 중국이긴 해도). 그래가지고, “서로 다른 길을 갔지만, 다들 중국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
이런 식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국공내전조차도 “같은 중국인들 사이의 노선 투쟁” 정도로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고요.이 흐름 안에서는 장제스가 완전한 악당일 필요가 없는 거죠.
3. 지금의 대만 국민당과도 묘하게 맞물림
현재 대만 국민당은 강한 반공보다는 현상유지, 독립보다는 중화민국 정통성, 역사적 중국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지는 않는 입장 (민진당은 그냥 대륙중국과는 역사 끊고, 중화민국 이전의 섬나라 대만에서 정통성 찾으려고 함) 이런 성격이잖아요.
중공 입장에서 보면 국민당은 “완전히 적대적이라기보다는 흡수 가능한 서사”에 가깝고,
민진당 쪽이 훨씬 더 골치 아픈 존재죠. 그런 이유 때문에 장제스에 대한 중국의 평가도 바뀌어 가는거 같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나온 매체에서 나오는 장제스에 대한 느낌은 "애국자이지만, 시대를 따라가지는 못한 엘리트적 영웅" 이정도 인거 같아요.
또, 지금 현대 중국은 1949년 이전까지의 중화민국을 계승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1949년 이후 국부천대 이후 대만으로 간 그 중화민국 말고요.. 그래서 중화민국이 한 외교 등들도 대부분 계승한다고 함) 그냥 좀 흥미로운 포인트여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냥 지금 중국조차도 장제스에 대해 무조건 악마화를 하는 것은 아니니, 민감한 문제이긴 해도, 장제스에 대해 한중관계를 생각해서 너무 까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 글을 적었습니다. 또, 중국 (약간 뭉뚱구려서... 1949년 이전의 중화민국도 계승한다고 했으니)이 임시정부를 지원했으니, 자기네가 임시정부를 지원했다고 하고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장개석에 대한 아쉬움과 칭찬이 입에 마르도록~ ㅎㅎ 그래서 저도 장개석 좋아합니다. 대만 중정기념당 가서 꽤나 먹먹했더랬죠.
장제스는 루스벨트와의 면담에서 한국의 독립 문제를 공식 거론했습니다. 당시 영국(처칠)은 자국 식민지(인도 등)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특정 국가의 독립 명시를 꺼렸으나, 장제스는 이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 결과, 12월 1일 발표된 카이로 선언문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포함되었습니다.
"앞으로 적절한 과정을 거쳐(in due course)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된 상태로 만들 것을 결의한다."
장제스가 임정과 한국 독립의 은인 맞습니다
고수들은 상대를 더 높여서...
그런 높은 상대를 이긴게 나다 라고 자랑한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