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이게 과연 능력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입지 사회", 즉 어디에 사느냐가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로
이미 굳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양질의 일자리, 상위권 대학, 의료와 문화 인프라, 정보 접근성
행정 권력까지 중요한 자원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그 결과 개인의 노력보다 거주지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정확히 짚지 않은 채 나오는 정책과 담론은 늘 비슷한 결말로 끝나 왔습니다.
출발부터 정직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은 효과 없는 처방이 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대부분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이라는 하나의 구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동산은 이미 주거 수단의 범주를 벗어났습니다. 자산이자 신분 유지 수단이 되었고
불평등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노동으로 번 소득보다 집값 상승이 인생의 방향을
더 크게 좌우하는 사회에서, 교육·결혼·출산 같은 선택이 왜 왜곡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수도권 진입에 실패한 청년들은 좌절하고, 학군과 대학, 직장 접근권을 둘러싼 경쟁은 끝이 없습니다.
지방 소멸 역시 더 이상 경고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그동안 수도권 문제를 주택 공급, 교통 확충, 기업 이전 같은 방식으로 풀어보려 했지만, 결과는 분명합니다.
잘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도 명확합니다. 수도권 집중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은 부동산이나
일자리가 아니라 교육, 그중에서도 명문대와 특목고로 이어지는 서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강남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계기를 떠올려 보시면 답이 보입니다. 주택 정책이 아니라
명문 고등학교의 이전이었습니다. 학부모와 사교육 자본이 이를 따라 이동했고, 인구와 자산이 자연스럽게 몰렸습니다.
이 구조는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확장되었고, 지금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 체계가
수도권 집중을 계속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문대가 서울에 남아 있는 한, 청년과 중산층이 서울을 떠나기 어렵다는 건 사실상 자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수도권 문제를 논의할 때 유독 이 교육 서열만큼은 늘 건드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지난 수십 년간 정책이 반복해서 실패한 핵심이라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종종 나오는 해법이
바로 서울 수도 이전입니다. 상징성은 분명 크고, 정치적으로도 매력적인 카드일 수 있습니다.
다만 비용과 효능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의문이 남습니다. 수도 이전은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는 반면, 교육·산업·자산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수도만 옮긴다고 집중이 해소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종시처럼 수도 기능 일부를 이전했던 사례에서도, 교육과 기업이 그대로인 상태에서는 인구와 자산의 중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명문대와 특목고, 기업, 연구기관, 공공기관을 기능 단위로 분산하는 방식은 비용 대비 효능 면에서
훨씬 직접적입니다.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서도, 인구 이동의 가장 강력한 동기인 교육과 진로 경로를
동시에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수도를 옮기지 않고도 수도권의 중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겁니다.
이게 한국만의 특수한 발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비슷한 선택을 해왔습니다.
프랑스는 엘리트 양성 기관을 수도에만 몰아두지 않고, 공학·이공계 중심 대학을 산업 거점 도시에 분산시켜
인재가 지역에 남도록 설계했습니다. 일본은 도쿄대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제국대학 체제를 통해
지역 거점 국립대를 키워, 지역에서도 충분히 엘리트 경로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중국 역시 최고 대학을 유지하면서도 연구·산업 거점을 다핵화해 인재가 한 도시로만 빨려 들어가지 않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교육을 혼자 떼어놓지 않고, 산업과 행정과 함께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같은 아이비리그 사례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이 대학들은 수도도, 정치 중심지도 아닌
보스턴과 뉴헤이븐에 자리 잡고 있지만, 미국의 법·정치·행정 엘리트를 지속적으로 배출해왔습니다.
이는 핵심 기능과 인재 양성이 반드시 수도 한복판에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오히려 일정한 거리와 독립성이 있을 때, 권력과의 유착이 아닌 비판적 재생산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위 논리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그래서 해법은 단순한 ‘이전’이 아닙니다. 패키지로 움직여야 합니다.
명문대는 통째 이전이 아니라 단과대학·학부 단위로 전략적으로 분산해야 합니다. 공과대학은 산업 거점 도시로
의과대학은 권역 의료 중심지로, 농생명·환경 계열은 농촌이나 기후 대응 거점으로 보내는 식입니다.
이는 대학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고등교육의 중력을 서울에서 전국으로 나누는 선택입니다.
여기에 특목고와 자사고도 함께 가야 합니다. 상위 대학만 움직이고 입시 관문이 수도권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특목고–명문대–연구기관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해야 학부모와
중산층의 실제 이동이 시작됩니다.
기업 이전 역시 필수입니다. 대학 졸업 후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 구조라면
교육 이전은 잠깐 머무는 이벤트에 그칩니다. 산업 클러스터와 연계한 기업 본사와 연구소 이전
지역 채용과의 연동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정부기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상징적 이전이 아니라 기능 단위 분산이 필요합니다.
정책 결정 권력과 행정 접근성이 계속 서울에만 남아 있는 한, 지역은 늘 주변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산업·행정이 한 지역 안에서 순환하지 않으면 구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명문대와 교육 서열만큼은 끝까지 건드리지 않으려 하는 걸까요?
이 질문을 끝내 외면한다면,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건 미래가 아니라 익숙한 구조일 뿐일 겁니다.
말씀하신 내용들은 이해관계가 만들어지기 전..경제개발 초창기 박정희 시절의 독재때나 가능한 이야기고.. 이제와서 그렇게 한들..
지방이 생각처럼 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대한민국에 딱 하나있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메가시티만 날려먹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카이스트 포항공대 있는데요
명문 고등학교, 명문 대학 옮기고 정부기관 옮기고 기업 옮기면 당연히 인구 분산되지 않나요? 게다가 문화시설도 많이 확충하고 교통 물류 잘 해 놓으면 더 좋구요.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닐거라고 보입니다^^
대학교는 모든 대학교 다 옮기는게 가능하다면 효과 있을거 같은데 요즘시대에 어렵죠... 자발적으로 지방 갈 대학은 더더욱 없을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