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또는 임정의 대한광복군의 규모가 2천명이라 별 의미가 없었다?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일베에 물든 후배친구나, 몇몇 20대 친구들에게요. (클리앙에서도 심지어 엊그제 저의 포스트의 댓글에서 직간접적으로 들었네요)
먼저 이 독립군 2천명 가량의 규모가 설립하던 배경/상황을 생각해보면...
1. 망한 지 수십년, 타국에서 결성
이미 국권 상실 후 30년 이상 지난 시점입니다. 자국 군대는 아예 무장해제, 해체되서 (그것도 수십년 전에) 자국군대나 병력은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도 없고... 해외 한인 사회도 지금에 비해 훨씬 소수거나 분산되어 있었죠.
2. 상해 임시정부의 안정성
우리가 흔히 상해 임시정부라고 무슨 엘에이 한인타운 안전한 동네 안전한 건물/기관에서 운영하는 느낌 정도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를 서포트한 국민당 정부 (또 그를 따라다녀야 했던) 는 일본에게 많이 밀려서, 여러번 수도를 3~4번이나 옮기는 등 위기. 대도시는 일본이 이미 장악. 조선-일본간 주요 교통이나 육로, 항로는 일본이 통제. (사실 상해 임시정부라고 말하지만, 상해-베이징-텐진-난징 등 도시는 일본이 점령중인 시기가 대부분이었죠... 국민당은 사실상 도망다니며 정부를 구성). 주요도시 항시 폭격 위협... 위험한 건물들은 폭파 굉장히 흔함. 일본 육군이 대부분의 대도시를 점령중이고, 위협 단체나, 인물은 언제든 보복,사살 가능. 즉 안전한 망명정부가 아니라...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외국 땅에서 결성된 군대죠.
레지스탕스로 유명한 샤를 드골 자유프랑스군과 비교해도... 드골은 영국 본토 (영국 본토를 독일이 점령한 적은 없었죠)에서 그래도아직은 남아있던 정규군 중심에 플러스로 더했던 망명군이죠. 즉 조건의 난이도가 차원이 다릅니다.
3. 또 2천명이라는 숫자
이게 적은 숫자가 아닌게, 본국에 있던게 아니라, 타국에 존재했던 다른 나라 저항 세력과 비교해서도 작지 않았습니다.
찾아보니, 체코,폴란드,노르웨이 망명군도 천명대 단위였고, 이는 멸망한 직후... 정규군이 와해한 직후 vs 나라가 망한지 수십년인 상황과 비교하면 그 조건차이는 명확하죠.심지어 드골의 자유프랑스 군도 영국에 망명해서 레지스탕스를 구성할때, 초기에 수천명 단위였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점으로 본국의 호응을 받으면서 급격하게 증가했지요.
4. 이전과 동시대의 독립군 결성의 제한 요소들
이미 이전의 대규모의 무장 독립군은 자유시참변이나 남한대토벌 작전으로 대부분이 날라갔고, 일본이랑 소련은 일소 중립조약을 맺어서,, 소련 영토하의 독립군들은 소련이 거의 강제 이주시켜버렸죠. 괜히 소련 영토하의 독립군이 일본 자극하거나 공격했다가 소련이 곤란한 상황 처할까봐. 예를 들어, 잘 아시는 홍범도 장군과 그 세력도 당시에 중앙아시아로 사실상 강제 이주당했죠.
원래 독립군이나 레지스탕스 자체가... 본국으로 들어갈 경우, 호응하는 세력을 염두에 둔 소규모의 세력인 경우가 많죠.
그런 상황 속에서... 확실하지도 않은 수십년전에 망한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을 건 2천명 정도의 군대였습니다.. 이런 독립군을 같은 한국인이 '객관'이라는 잣대로 별 영양가 없고 의미없었다라는 식으로 비하한다는게 저는 참 슬프고 안타깝네요.
2천명으로 뭐 어떻게 하냐, 의미 없는 것 아니냐 하고 그것이 실제로 기여한 바가 있음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단정하는 것 말입니다.
다만 20대만 그런가 하면 절대 아니고.. 비슷한 성향은 30대 이상의 청년, 중년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하고는 좀 다른 문제더군요.
책을 봐야하는데.. 책보다는 유튜브에서나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데, 오염된 정보가 너무 많죠.
이미 조선은 망해 없어졌고, 조국, 우리나라 이런 개념을 살아 생전 경험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합니다.
낙성대 뭐시기나 뉴라이트인지 레프트인지.... 얘네들은 좀 반성해야 합니다.
진보쪽에서 우리의 자주독립만 크게 강조해서 그런의미로 쓰신듯 합니다.
30년대 이후로 군사작전이 거의 없었고,
특히 국내활동은 거의 전무하죠.
좌파계열은 그나마 보천보 전투라도 있지만...
원문처럼 국내 호응하는 세력을 염두에 두었다면,
소규모라도 국내작전은 지속적으로 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또한 1930년대에는, 독립군 입장에서도 재앙이 생긴게, 많은 군대들이 연해주라든가 소련 영향하에 있었는데, 자유시 참변이나, 강제이주를 당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하기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있었죠. 게다가, 중일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중화민국군이나 중공군에 항일에 한해서 직접적으로 가담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조선의용군도 그런 케이스이고요.
또한, 미국에서는 이승만, 서재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외교전에 더 강하게 돌입했고요.
또한 국내작전이라...? 드골의 자유프랑스군도, 연합군이 노르망디작전 이후 상륙을 하고 나서, 더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광복군도 한반도 진입계획이 있었고 1945년 중에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죠. 진입못한게 안타깝기는 하죠.
누가 뭐래도 임시정부 소속의 정규군이었다는건 부인할수없는 사실입니다
그 뉴라이트 식민사관에서 하는 말이 망명정부는 영토도 주권도 없으니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국가 수립일은 1948년이지 임시정부 수립 해인 1919년이 아니다라는 말하고 같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