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심지어 많은 20대 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많이 들은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독립한 이유는 사실 2차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해서일 뿐, 우리나라 독립운동은 별 상관 없었다. 독립운동하시느라 고생하시고, 그 좋은 뜻은 알겠는데, 독립운동은 아무런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별 의미가 없었다."
저는 완전히 반대로, "일본의 2차대전 패배는 독립의 시기를 결정했을 뿐이지, 우리나라의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으로 인해 이미 우리나라의 독립은 사실상 거의 결정되었고,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토론을 통해 반박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정리를 할 겸 글을 올립니다.
정치경제학으로 분석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대부분의 전쟁과 정복은, 정당하지 않을 경우... (또는 정당하지 않게 시작한 전쟁이라도, 차후 정당성을 얻지 못할 경우) 지속가능한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속되더라도, 수십년이나 지속되거나, 길게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백년 단위를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당하지 못한 전쟁을 할 경우, 수십년 단위에서는 국제 여론 (저 나라는 어떻게 저런 전쟁을 벌이지? 어떻게 저렇게 반발을 하는데, 이런 식민지를 가동하지? 야만적이다) 또는 경제/군사적이유 (반발 때문에, 경제 군사적으로 유지하는 것보다, 독립시키는게 더 유리.. 왜 우리가 돈을 써서, 이 나라 식민지 유지를 위해 경찰력을 동원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군대를 동원해 이 나라를 지켜야 하지? 이 나라 사람들은 원하지도 않은데.), 또는 세대가 지속되면서 (우리가 왜 굳이 저 나라를 지배하면서 욕을 먹어야 하는가?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는 이랬지만, 우리까지 이래야 하는가?) 일어나는 효과 등이 있죠.
(물론 해게모니를 좌지우지 가능한 초강대국이나 그에 준하는 나라의 경우, 또는 이러한 반발에도 재정적,정치적으로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요... 중국-티베트와 같이...)
정말 몇가지 예시만 제시한다면...
1. 한국전쟁: 북한이 대한민국을 전면 침공함으로써, 국제적으로는 '침략'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고, 북한은 국제적으로도, 침략딱지가 붙어서, 이는 결과적으로 UN군 파견을 불러 일으키고, 심지어 중국도 대놓고 참전하지는 못하고, 인민지원군 (우리나라가 직접 참여한게 아니라, 인민들이 지원해서 간거다..)이라는 간접적 형태로 참전했죠. (실질적으로는 정규군이나 정규군 대장이 참전했찌만요). 또한,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침입을 환영하기보다는 침략자로 인식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점은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좌절시켰죠.
몇몇 학자들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그런 식으로 침입하기보다는, 차라리 전면전 대신에 마오쩌둥이나 베트남처럼 스멀스멀 언론플레이를 하고, 어느정도 국민에게 먹히는 정치를 하면서, 침략자 낙인이 찍히는 전면전 대신에,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왔다' 등 이런식으로 캐치프라이즈를 하는 상태에서, 차후 찾아올 대한민국의 위기 (예를 들어,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를 이용하며 내전을 벌였따면 (국제법 상으로 침략과 내전은 큰 차이... 한국전쟁은 내전이 아니라 침략으로 규정됨),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죠.
2. 인도: 인도의 독립은 1945년,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식민체제 유지가 불가능해지면서 한 게 직접적인 결과라고
단편적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현재는 많은 학자들이, 인도의 독립의 간디의 비폭력 저항을 비롯한 전국적 저항이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보고, 이미 인도의 독립은 시간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간디를 비롯한 인도의 독립운동 이후, 영국의 국민, 그리고 양심적 지식인들 내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죠.(우리가 이렇게 비폭력적으로 항쟁하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는게 옳나? 이들이 정말 원하는데, 우리가 왜 억지로 이들을 지배해야 하나? 우리는 문명국 아닌가?) 또, 국제적인 여론도 인식하게 되고요. (초강대국이라는 대영제국이, 이렇게 야만적인 행동을 하다니, 이들은 신사의 나라가 아니고, 앞뒤가 나른 나라이다...)
다시 우리나라 3-1운동 시점으로 돌아온다면, 그들로서 일본으로서는 한반도 병합의 명분은... "조선은 미개국가였고, 우리는 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나 식민사관자, 극우들은 조선을 더 비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요..) 라는 식민지 지배의 논리였죠. 그러한 정당성을 직접적으로 깨뜨린 것이 3-1운동이었죠.
그러한 시점에서, 비폭력적인 민족자결을 내세운 전국적인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 운동은 일본 정부 뿐 아니라, 일본 내부의 지식인, 언론, 기독교계, 자유주의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몇몇 예를 든다면, 일본의 민본주의자인 요시노 사쿠조는 "조선인의 민족적 의사를 무시한 지배는 정당화할 수 없다"라고 했고, 기독교 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는 조선인 탄압을 기독교 윤리와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로 규정하였죠. 많은 서방 여론은 한반도라는 나라에 무지한 경우가 많았고, 동아시아는 아직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당시 뉴욕 타임스는 3.1운동을 비폭력 민족운동으로 소개했고, 일본의 강경 진압을 비판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물론, 당장은 미국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 (일본도 1차대전 승전국이니..)를 고려해 신중 또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취했죠.
또한, 중국 같은 경우는 거의 2달 후 일어난 1919년 5-4 운동에 직접적인 자극이 되었죠. 중국의 대부분의 언론을 통해 3.1운동을 대서특필했고, 국민당-공산당, 이념을 떠나서 모두, 일본제국주의와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로, 31운동을 사용했었죠. 또한, 3-1운동과 그 이후 일어난 여러가지 항일운동, 독립투쟁 등을 근거로, 국민당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직접적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장제스는 카이로회담과 카이로선언에서 '조선 독립'을 명시하게 되죠. 참고로, 일본이 연합국에 의해 무너진 이후, 무조건 항복 이후 이행해야 했던 것은 '식민지 해방'이나 다른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포츠담 선언'의 무조건적 이행이었습니다. 이 '포츠담 선언'에는 '카이로 선언'의 무조건적 이행이 들어 있었고요.
물론, 여러가지 가능한 질문에 대한 저의 생각
1. 장제스가 조선 독립을 주장한 이유는, 우리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일본의 대륙진출을 막기 위해서다?
=> 네. 당연히 그런 측면이 있죠. 그런데, 국제 외교라는게, 어떤 도움이나, 군사적 도움, 외교적 도움에 대해서도, 당연히 자기 이익을 위해 생각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의 경우에도, 우리나라를 돕는 것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거점, 냉전 당시에는, 공산권의 해양진출 저지 등의 실익도 있었죠. 그러나, 이러한 국제 현실 속에서, 서로 윈윈인 경우는 많습니다. 장제스가 이를 원했다고 했더라도, 그게 우리나라에 의미가 없다는 논리로 이어져서는 안되죠. 다시 독립운동의 의미로 돌아온다면, 장제스가 조선 독립을 주장할 때, 다른 연합국 수뇌부가, 이를 받아들였던 것은, 조선이 독립을 원했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다는 것이 (즉, 지속적인 독립 요구.. 독립운동이나 독립전쟁),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2. 우리나라가 독립한 것은, 일본이 추축국에 속했고, 세계대전에서 패배했기 때문이지,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독립전쟁이 원인이 아니다.
=> 직접적인 시기 (1945)를 결정한 것은, 일본의 패배가 맞지만, 저는 시간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일본이 줄을 잘 타서, 승전국이었다고 하더라도, 시대가 바뀌었다면, 이는 시간문제였다고 봅니다.
일례로, 포루투갈이 유럽 지역의 단체 (NATO라든가)에 가입할 때, 아직도 아프리카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큰 비판을 받았고, 결국 이는 식민지 독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이 승전국이었다고 하더라도 G7이나 다른 국제단체, 그리고 선진국으로서 서방 주축에 끼려면,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벌어진다면...) 한반도 독립은 어느 순간, 거의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일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이런 국내외적인 여론의 변화로 일본이 결과적으로 선택가능한 것은 (승전 패전 여부에 상관없이),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거나 (완전한 독립이나 캐나다-영국처럼 사실상 독립),조선에게 일본과 같은 참정권을 허락하는 것 (하와이 처럼... 하와이는 미국이 정당하지 못하게 점령했지만, 미국의 동등한 한 주가 되었고, 참정권이 허락되었죠)이었는데, 일본제국과 일본 정서상 후자는 불가능하니,, 결국에 독립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3. 세계 대전 이후, 국제질서가 이미 식민지를 허락하지 않지 않나?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독립을 했을 것이다.
==> 네. 충분히 일리 있는 포인트입니다만, 반드시는 아닐 수도 있고, 반쪽짜리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같은 경우는 1930년대에 반유대운동 등의 운동 (지속적인 유대인 유입에 대한 반대) 등은 벌였지만, 이 운동은 우리나라와 달리, '독립'에 대한 포커스만이 있지는 않았죠. 결국, 전 후 연합국에 대한 신탁통치로 이어졌고, 이러한 상태는 팔레스타인의 의사와 달리, 신탁통치 기간동안에, 자국 영토의 일부를 이스라엘 에게 줘서 독립시키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죠. 지금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면 아시다시피 시궁창이고요... 3-1운동 이후 벌어진 독립운동과 독립전쟁, 그리고 이후 조직들이 1945년 이후에도 이어져서,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반탁 운동을 벌였고, 독립이 이뤄졌죠. 전국적인 반탁 운동이 그냥 있던 게 아니라, 독립운동으로 인한 국민 정서 (신탁통치라는게... 결국에 일본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또다른 식민 통치 아니야?)와 독립운동 이후 이어진 조직들과 인물 (심지어 이승만도 (어떻게 했느냐는 놔두고더라도), 독립운동을 하며 국제적으로 알려진 사람이었죠..)이 주축이 되었죠.
4. 뭐 신탁통치를 했어도 나쁜건 아니지 않냐? 강대국이나 선진국들이 운영했을 것이고, 뭐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 바로 반박하기보다는, 1945년 이후 신탁통치를 받았던 나라들을 리스트 할게요.
팔레스타인, 카메룬, 토고, 르완다, 부룬디, 사모아, 파푸아뉴기니 등
지금 이 나라중에 잘 살거나, 산업화-민주화가 잘 된 나라가 있나요?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신탁통치를 한다면...문제가... 먼저, 지배하는 나라 입장에서 굳이 이 나라를 엄청 발전시킬 동기가 별로 없죠. 그냥 욕만 안먹고, 유지 정도만 하면 되겠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점령지보다 자국에게 유리하게끔, 이득을 취할 수도 있고요. 또한,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한게, 어느정도 모험적인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민주화 등인데, 이들이 이렇게 할 동기가 전혀 없죠. 또한, 점령지의 우수한 인재들을 점령국이 빼앗는 경우도 굉장히 흔합니다. 또한, 나라의 발전이라는게,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수정해나가는데... 뭐가 잘못된 경우 우리 잘못이 아니라, 다스리는 나라가 잘못해서다. 이런식으로 책임회피도 가능하니, 자기수정이나 가지발전도 매우 느려지죠.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과는 별개로, 독립운동의 다른 큰 의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죠. 북한과 대한민국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통성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3-1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고, 지지 유부를 떠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 (이승만 김구 등)이 대한민국의 주축이 되었고, 이는 북한과의 정통성 대결에서도, 플러스가 되었죠. 비슷한 이유로, 이승만 자신조차도, 해당 년도를 표시할 때, 공개적인 연설이나 장소에서 민국xx년이라고 말했고, 민국원년은 1919년이었죠. (자기들이 국부라는 이승만 조차도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생각하는데... 1948년 건국절 주장하는 극우들은 참...)
참고로 31운동의 독립선언문은 ‘장차 독립하겠다’가 아니라 ‘이미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독립은 그냥 세계대전 이후 뚝 떨어진게 아니라, 이미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독립전쟁 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요구가 세계에 많이 알려질 때, 이미 어느정도는 결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패망은, 사실 거의 시기만을 결정했고요. 또한, 독립운동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의 정통성에도 큰 역할을 하고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부족한 부분, 틀린 부분이 있다면 즐겁게 공부하며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가:
정당성이 크게 무너진 정권의 경우, 그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부의 몰락을 확신하셨자고 합니다. 어떤게 트리거가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요.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의 전횡이 노골화 되면서, 유시민 작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미 윤석열 정부의 몰락을 직감하고 예고했습니다. 다만 어떤 게 트리거가 될지는 몰랐지만요..
지금의 도덕기준급은 아니었지만, 31운동의 무자비한 탄압 이후, 독립운동이 지속되는 한, 우리나아의 독립은 이미 언젠가는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기의 문재익 뿐…
그리고 김일성의 침공은 ... 사실 정당성 없는게 뽀록날거라서 ... 그런게 아닌가 하구요
독립운동이 없어도 독립이 가능했는가?
라는 질문은 저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독립이 가능했는가?라고 하면 마찬가지 아닌가요? 물론 그렇다고 독립운동의 영향이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결국 모든 별개의 사건들이 이어져서 독립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의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독립에 가장 큰 역할이 된 요소나 사건은 아마 대부분이 일본의 세계대전 패전을 먼저 언급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 역시도 해당 사건이 가장 큰 역할이 되었다고 보고 있고요.
한반도가 일본에 완전히 병합 된 채로 항복만 했을 가능성이 있다. 라는 겁니다.
우리의 독립은 포츠담회담에서 장제스에 의해 .. 일본의 영토를 본래 일본의 부속도서로 한정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겁니다.
예를들면 일본과 같은 추축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소말리아는 .. 1960년에 독립했습니다. 즉, 독립운동에 의해, 특히 장제스와 김구선생님 협력적 관계가 일본패망 직후 독립에 전혀 영향이 없었다 말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보아도..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계승하는 정통성이 있는 겁니다.
괜히 헌법전문에.. 3.1운동 정신이 있는게 아니죠.. 그래서 북한은 사실 정통성이 1도 없는 괴뢰정부이구요.
그래서 위댓글에 김일성 이 부관참시 할 민족반역자 놈이 남침을 한 이유가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서두른 것 같다 고 한 것이구요
일본의 패망이 우리 독립의 필요조건은 맞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소말리아는 1960년대가 되서야 독립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폄하 하려는것은 아닙니다.
“카이로 선언의 조건들이 이행될 것이며 일본의 통치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그리고 우리가 결의하는 부속 도서로 제한될 것이다”
이거인데, “부속 도서”라는게 참 불명료한 부분이 있어, 우리나라의 경우는 카이로 선언에 담긴 것도 의미가 큽니다. 이
https://koreajoongangdaily.joins.com/2019/02/17/politics/Resistance-in-Tokyo-encouraged-the-March-1-Movement/3059530.html
대충 chatGPT에게 물어도 길게 대답해주네요. 요약하면..
한국: 임시정부, 독립군, 외교 조직 존재
오키나와:독립 선언 없음,임시정부 없음,무장 독립 세력 없음,국제 로비 조직 없음
전쟁 직후 연합국이 판단한 것은 단순했습니다.
“이 지역을 넘겨주면 누가 통치하지?”
오키나와에는 ‘넘겨줄 주체’가 없었습니다.
당장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경위가 반미감정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국이 오래 주둔하면서 당초 독립을 바랐던 주민 여론이 점점 불안이 거세져 차라리 일본으로 복귀하는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어, 시위 방향도 일본 복귀 요구로 바뀌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무시하고 그냥 독립국화 시키는 것도 방편이지만, 이러면 요충지에 반미국가를 만드는 꼴이니 얌전한 일본으로 돌려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오키나와 주민들이 마지막까지 독립 요구를 관철했다면 정말 독립국이 될 수는 있었겠지요.
이런 면에서, 오랜기간 지속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은 것입니다.
냉정하지만 중요한 한 문장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으로 해방된 나라”라기보다
“세계사적 전쟁 결과 속에서 해방된 식민지”에 가깝다.
그건 제3자로서의 관점인데 님은 우리나라 국민이라 그런 관점으로 주장하는건 적절하지 않죠.
그렇게 남의 힘으로 독립했다고 믿는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자주성과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겁니다.
1️⃣ “전혀 상관없다”는 주장이 왜 성립하지 않는가
이 주장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독립한 것이지
독립운동이 일본을 이긴 것도 아니고
국제정치에서 결정권도 없었다
여기까지는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 맞는 부분
• 독립운동이 일본의 패전을 직접 초래하지는 않았다
• 해방의 직접 원인은 일본의 세계대전 패배
❌ 틀린 부분
• 그래서 독립운동이 **“전혀 상관없다”**는 결론은 논리 비약
⸻
2️⃣ “해방”과 “국가의 귀속·형성”은 다른 문제다
이게 핵심입니다.
🔹 해방 (liberation)
• 일본이 패전 → 식민지 지배 붕괴
• 이는 외부 요인
🔹 그 다음 문제
❓ 그럼 이 땅은 누구에게 넘어가는가?
❓ 누가 통치 주체가 되는가?
여기서 독립운동의 역할이 등장합니다.
⸻
3️⃣ 독립운동이 실제로 한 결정적 역할들
① “조선은 일본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정치적 증거
• 임시정부 존재
• 독립군 활동
• 지속적 외교·선전
→ 연합국 입장에서
“해방 후 넘겨줄 명분 있는 주체”가 존재
📌 이게 없었다면?
• 오키나와
• 대만
• 사할린
• 만주 일부 지역
처럼 전혀 다른 경로를 밟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
② 카이로 선언의 ‘독립’ 문구
“적절한 시기에 조선을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로 한다”
이 문장은 공짜로 나온 게 아닙니다.
• 중국(장제스)은 임시정부와 직접 접촉
• 김구·임정은 연합국에 “독립국”을 지속적으로 요구
• 최소한 조선을 일본의 잔여 영토로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은 형성됨
👉 이건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등장하기 어려운 문장입니다.
⸻
③ “전혀 상관없다”면 설명 불가능한 질문들
이 주장에 대해 이렇게 물으면 반박이 됩니다.
• ❓ 왜 조선은 **신탁통치 대상 ‘국가’**로 논의됐는가?
• ❓ 왜 조선은 일본의 일부로 유지되지 않았는가?
• ❓ 왜 오키나와·대만은 독립국 논의조차 없었는가?
👉 답은 하나입니다.
독립을 주장해 온 정치적 주체의 존재 여부
⸻
4️⃣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 틀린 극단
• “독립운동으로 일본을 이겨서 독립했다”
• “독립운동은 전혀 의미 없었다”
⭕ 역사적으로 가장 정확한 표현
“대한민국의 해방은 일본 패전의 결과였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성립할 수 있었던 조건에는
독립운동이 분명히 작용했다.”
이건 미화도, 자학도 아닙니다.
교과서적 균형점입니다.
몽족이나 쿠르드족 생각하면 어이쿠...
몽족은 미군이랑 베트남에서 열씸히 싸웠지만 결국 자기나라는 못세우고 고초를 겪고 미국으로 이민가고 그랬으니까요...
그 상황에서 60년대 아프리카 처럼 독립하는건데, 60년대의 상황은 냉전체제 아래 미,소 특히 미국의 강력한 의지에 의한 구체제의 해체 과정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미,소가 독일과 일본을 압도적으로 이긴 거대한 질서 속의 흐름이지, 문명화되고 민주화된 세계 여론의 질타에 밀린 영,프 등의 호의가 아니었다는거죠.
중일전쟁을 일으켜서 이겼거나(어휴..), 혹은 안일으키고 국제질서에 잘 편승한 일본이 한반도를 순순히 독립시켜주는 시나리오는 좀 상상이 안됩니다.
사실 뭐 일본의 군부 독재 자체가 1930년대 이후 전쟁을 바탕으로 한거라, 일본의 파쇼체제가 무너진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봅니다.
일본이 자치권을 허용했을리도 없고,
오키나와의 사례를 보면 완전히 일본화 했을 겁니다.
30년대 이후 일본은 일선동조론이나 내선일체 등을 내세워 일본화하려고 했죠.
조선인은 2등 국민이어서 전쟁에 참전시키지 않았다가...
30년대 후반 부터는 징발도 시작하죠.
당연히 전후에는 인구에 비례할 정도로 의석을 내주지는 않았겠죠.
당장 우리나라도 인구수를 반영해서 국회의석을 정하기는 하지만, 인구수대로 의석을 배분하지는 않는데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달랐다기에는...
당시 일본어 썼고, 독립 후 현재까지도 일본 문화의 잔재가 남아있을 정도인데요.
식민지랑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고, 인종적으로도 다르던 유럽 열강들과 그 식민지들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죠.
오키나와를 보면 2차대전 직후에는 독립열망이 높았지만, 지금은 독립열망은 거의 사그라들었죠.
40년대에 독립 못했으면... 중국의 공산화와 동서냉전 체제하에서 과연 독립이 가능했을까 의문이네요.
일본이 승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만 인정 받았더라도...
이후 냉전체재에서 독립운동은 팔레스타인 처럼 전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졌을 겁니다.
다시 전제로 돌아와서 '독립운동이 계속되었다면'? 입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모르지만, 일본이 자신들의 일부로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한, 어떤 식으로든지 긴장감이나, 평등함 또는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 있었을 것이고... 롱텀으로 일본의 선택지는 일본과 동일한 참정권을 주든지 vs 독립시키든지 vs 캐나다-영국처럼 영국 국왕 형식상 군주로 받들지만 사실상 독립 (지금은 아무도 캐나다를 영국의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죠)... 밖에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내외적으로 조선은 오키나와와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독립운동이 있었죠...
롱텀으로는 동일한 참정권을 주는 방향으로 갔을거라 봅니다.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다들 섞여서 살아갈테고... 차별하는 게 사회적 비용이 더 클텐데요.
냉전 체재하에서 일본에 편입된 채로 독립운동이 계속되었다면 중국이나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일본, 미국과 싸워야하는 형국이 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을까요?
이스라엘이 전후에 생겼으니... 당연히 1945년 이전에는 독립운동이 없는 거구요.
강대국들이 짜놓은 세계질서에 반하는 세력일 뿐이니 지지하는 세력도 없는 거구요.
식민지를 유지함으로서 얻는 이득이 과거의 경제 체제보다 훨씬 줄어들어서라는 건 유럽의 타 대륙 식민지들 얘기구요.
한국-일본의 관계는 구소련의 연합국이나 완전 점령에 더 가까운 형태라 서구 열강의 식민지와는 다르지 않나요?
동서대립으로 소련이 붕괴하지 않았다면 소련 소속 연합국들이 독립할 수 있었을까요?
독립운동이나 테러말씀하시는데,
유지비용 측면에서도 필리핀이나, 베트남 같이 영토 내에서 독립군과 교전 상황이 계속된다면 모를까
군대 동원하지 않고도 경찰력만으로도 독립운동이나 테러에 대응하고 있었는데...
유지비용이 컸을까 싶네요.
이건 뭐 제가 일본이어도 독립열망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로 중앙정부의 정치 개방을 포함한 정책을 펼 거예요.
스코틀랜드나, 바로셀로나 같은 곳도 여러가지 이유로 독립하려고 하는데, 중앙 정부들이 다 막고 있죠.
민족이나 문화의 관점, 주민 의견에 따른다면 독립이 당연한 거겠지만요.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일반적인 서구의 국가에서는 가능하지만.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로 잡혀진 민족주의적인 서사를 공부하다보면, 최소한 일본 체제가 맥아더 이후 군정처럼 천황이 신적인 존재에서 내려오고,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한, 저는 개인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카탈루냐와는 격이 다른 것 같아요. 일본은 국가나 민족정체성이 거의 종교급었으니깐요. 또한 지리적-언어적으로도 비슷하고, 대륙이 접해잇는 카탈루냐-스페인과는 다르게, 반도와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어있으니깐요. 또한 역사적으로도, 카탈루냐-스페인은 어느정도 공통분모 (아라곤 연합왕국 이후. 그리고 수백년 단위에서 지배 지속.)가 있지만, 조선-일본은 그와는 다르니깐요.. 뭐 물론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만...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인들을 자신들과 동일한 주체로 정치에 참여 시키는 건 시대의 흐름이니까요.
일본이 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거 같네요.
대표적인 인종차별국이었던 남아공도
차별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겠지만, 이제 흑인들도 정치에 참여시키고 있죠.
국가적 위기 상황을 택하느냐, 정치 참여를 허용하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민족주의를 고수하기 위해 위기 상황을 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일본이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주변국들의 압박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애초에 조선 정도 체급되는 국가가 1~2차 대전 전후해서 식민지가 된 사례가 거의 없죠.
거의 유일한 사례가 베트남 정도가 아닐까하는데 베트남은 독립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했구요.
말씀하신대로 독립운동이 의미가 없을 수는 없죠.
다만,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을 때 합병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을지 아닐지에 대한 의견은 좀 갈리는 것 같군요.
점령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유지비용 중 어느쪽을 크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차이인 것 같습니다.
독립열망이 없었거나,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독립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유럽이야 2차 대전 이후에 식민지에서 더 빨아 먹을 것도 없었고,
유지할 능력도 안되서 식민지에서 축출되었지만
일본이 미드웨이해전 직후라도 강화회담을 시작했다면
악착같이 우리나라를 가져가려했을겁니다.
우리가 일본 상대로 독립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구요.
광복군 규모는 1천명 수준인데...
당시 한반도 내 일본 경찰만 2만명입니다.
실질적으로 장제스의 한마디를 축소할 필요도 없지만.. 기존의 떠도는 평가처럼 너무 대단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치 그가 이야기 함으로 인해 뭐가 이루어 진 것 처럼..이건 말도 안되죠. ㅋㅋ 그는 그의 일기등을 볼때 본질적으로 한반도는 중화 제국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에요. 그 목적을 위해 일본으로 부터 떨어뜨려 놓으려 한 겁니다.
기록에 따르면 루즈벨트는 그가 왜 그 이야기를 하는지 의도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처칠이야 영국 식민지 생각 안할 수 없었던 거고.. 처칠과 달리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루즈벨트 자체가 이미 식민지를 독립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안창호 선생님이 그 시절에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온 것 같이.. 미국은 당시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외교 무대이기도 하고..독립운동의 돈줄이었습니다. 애시당초 주미한인들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충분하게 인식을 하고 있었어요. 뭐 훗날의 독재때문에 맘에 안들고.. 또 미주독립운동 시에도 분열을 만들기도 해서 맘에 안들지만.. 이승만의 경우도 일본내막기 (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라는 책을 썼는데.. 이게 일본의 전쟁을 예언해서..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영국 장교들에 대한 정훈 교육자료로 쓰이게 되었죠.
또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 전임자가 독실한 장로교도인 우드로 윌슨이었고(젊은 시절 루즈벨트의 정치적 멘토-멘티 관계였죠.), 이 우드로 윌슨이 프린스턴 총장시절 논문까지 손봐주며 박사학위 까지 직간접으로 개입한 제자가 이승만 입니다. 한반도에 대한 기독교 선교관계로 윌슨 가족과 더 친해졌다고 하죠. 이 기독교로 연결된 파이프 라인은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무시못하죠.
이러한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실질적으로 계승한 사람이 루즈벨트였고.. 다른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를 해체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1941년 8월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함께 발표한 2차 세계대전 후 전후 처리를 위한 원칙인 대서양 헌장에 3번 조항으로 "민족자결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버립니다. 이것 때문에 일본이 맹 비난을 하죠. 이후 1941년 12월에 진주만 침공..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전 후 처칠이 미적거리니.. 카이로 회담 첫날 처칠과 다투기 까지 해서 결정짓죠. 그 과정에 한국도 같이 끼어 들어간 것이지.. 장제스의 한마디가 생각지도 않았던 한국의 독립을 가지고 온게 아니라는 거죠.
게다가 루즈벨트는 이미 1942년 2월 23일 라디오 담화에서 한국의 처지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Look at the people of Korea and Manchuria, who now lived in the condition of slavery and are being used as forced labor in the Japanese war machine."
(현재 노예 상태에서 살고 있으며, 일본의 전쟁 기계를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있는 한국과 만주의 국민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문구의 내용 "노예 상태"라는 문구 그대로 카이로 선언에 들어갑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충분히 Korea라는 나라와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고..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2차세계대전 종결 후 전후 재편에서 독립시켜야할 식민지 리스트 안에 들어간 나라였습니다.
글의 주제와 별개로 각자 자신의 생각들을 자신의 생각이라는 범위 안에서 공유하고
다른 분들의 다른 의견도 들어주는 글과 댓글의 분위기가 좋네요.
Korean War 한국전쟁은 외국의 시선에서...
또한 의지만 계승된다면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더라도 임시정부와 같은 대한민국이 오늘날 까지도 이어져 왔을것 같네요.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있지만 우리의 독립운동, 독립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요건중의 하나인건 변함없다 생각되네요.
온전히 독립운동으로 인한 독립도 아니죠
둘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독립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둘다 너무나도 큰 역활을 했는데
서로 내가 큰역활 했다고 따저봐야 끝없는 논쟁밖에 더될까요
마찬가지로 유시민 등, 많은 지식인들이 윤석열의 몰락을 이미 직감하고 예언했죠. 어떤 트리거가 실제 몰락을 가져올지는 몰랐지만요
유일하게 중국만 강력히 주장해서 한국이 독립국이 된거죠.
자세한건 썬킴이 알려줍니다.
결정적인 요소: 일본의 패망
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우리나라 선조가 그렇게 독립을 열망하고 여러 역사를 세웠기에 독립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시절에 내가 살았다면 감히 용기낼 수 있었을까 했던 그 행동들이 독립을 만들어낸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는 1910부터 1945까지 한세대정도의 활동시기를 점령했기에 겨우 그 영향에서 벗어난것이고 두세대 이상을 넘어가면 이해관계와 사회발전 속도와 제도권에 들어간 부역자들과 그에 반해 따라오지못하는 독립운동가의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의 차이로 일반국민들도 어쩔수 없이 신문화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왔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굳건했던 독립운동가조차도 변절한 사람들이 많았으니..일반인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독립운동과 그를 지원해준 중화민국, 일제의 전쟁과 패망, 패망 이후 중화민국의 도움과 미국의 결정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천운을 위해 희생된 독립운동가의 넋을 기립니다
없는 초의 차이
심지=독립운동,자주성
아일랜드
알제리
정도 아닙니까
독립 하긴 했겠네요
일본제국은 중국 급이라서 어려웠을까요
B라는 사건이 A라는 사건 뒤에 일어났다고 반드시 A가 B의 원인은 아닙니다. 해방 후 6.25전쟁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것도 사실이나 그 이후 경제개발과 민주정치발전에는 미국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20세기까지 미군에게 한국땅은 냉전의 최전선에 설치된 벙커나 참호정도죠.
미국은 우리 근현대사의 중요한 대목에 등장은 하지만 언제나 자기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우리나라를 이상향으로 데려다주는 구원자는 당연히 아닙니다. 그걸 해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죠.
때마침 민족자결주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강대국도 식민지 확장을 자제하는 분위기 였으며
미국은 일본의 세력을 최대한 축소 시키길 원했으나 당장의 한반도 독립보단 신탁통치를 통해 강대국간 충돌을 피하길 원했고,
소련도 일본 견제를 위해 한반도를 친소련 국가로 만들 계획이 있었고 미국과의 전후 이권다툼을 피하고 싶어 신탁통치에 찬성했고
중국도 자국 영토 최우선 회복과 함께 일본에 침탈당한 동아시아 영토 해방을 원했고
영국도 기 지배중인 자국 식민지 테클을 피하고, 중국 세력 확장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쉬운점은 당시 독립단체들은 일본의 탄압으로 인해 국외에 있거나, 하나로 결집 되지 못한 단체들로 흩어져 강대국들 사이에서는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나 무장항쟁이든 외교적 노력이든 모두 독립에 도움을 준것은 부정할수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