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에서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선언하면서 한국이 독립 되었고, 그 무조건항복을 미국이 받아내었다라는 수준에서의 표현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저 것을 미국이 한국을 '독립시켜줬다'라는 문언적 표현이 되려면, 미국의 전쟁 수행 목표 중 하나로 '조선(대한민국)의 독립국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치에게 점령당했던 폴란드를 2차대전 말기 소련군이 진군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보통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공산화했다' 혹은 '소련이 나치 점령지였던 폴란드로 진군했다'라고 표현하지, '소련이 폴란드를 나치에서 해방시켜줬다'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당시 모스크바에 송출되던 라디오나, 소련의 지원으로 바르샤바를 장악하던 폴란드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표현했을수도 있겠네요.
미국과 일본의 전쟁 결과 한국이 독립국 지위를 얻은 것과, 미국이 한국을 능동적/시혜적으로 독립시켜준 것은 문언적으로 엄연히 다릅니다.
장제스는 조선을 독립시킨 후 전후 중화민국 군을 주둔시켜 영향력을 확보하고 중국 통일 후 한반도도 삼킬 생각이었습니다.
독립 발언을 한건 고마운 일이나.. 이게 김구 선생님과 의리 때문에만 한 말은 아닙니다.
이 속내를 알고 반발한게 루즈벨트였구요. 루즈벨트가 장개석에게..
"당신은 만주, 펑후 제도, 대만을 가질 수 있지만 한국은 가질 수 없소."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죠.
그래서 중화민국이 개입 못하도록 막아버린게 루즈벨트입니다.
사실 장제스는 전형적인 중화민족주의자 입니다. 그래서 대만의 한국에 대한 우월의식이 그리 심하기도 했던거고..
그러다가 그게 열등감으로 바뀌어서 열폭도 했던거고..
좋게만 볼 인물은 아니죠.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중화민국군대 파견해서.. 중국 본토로 밀고 올라가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설사 장제스가 자기 나름대로 속셈이 있다손 쳤더라도 애초에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독립을 유일하게 지지해서 만든건 역사적 사실이고 이게 정론 아닌가요?
장제스의 이뤄질지 안이뤄질지 모르는 속뜻으로 해석을 바꿔버리는거 같아서요. 장제스가 국공내전이든 그후 대만행보에서도 못난놈인건 맞지만 애초에 조선의 독립국화를 강하게 주장한 사람인건 맞죠.
또 한국전쟁때 중국 본토까지 올라가려고 한놈이 장제스만 있었던것도 아니고 그 유명한 맥아더는 핵을 쏴야된다고 했잖아요. 전 맥아더나 장제스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영웅화할필요는 없지만 억지로 악마화 할필요도 없죠. 독립을 주장했던 사실은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이후 멍청한 행보는 그거대로 비판하면 됩니다.
좀더 찾아보니까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가 역사비평에서 한 말을 근거로 삼은거 같은데 이게 역사적 정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장제스 나름대로 계산이 있어서 독립국화를 주장했겠지만 어찌됐든 그거 아니였으면 조선은 애초에 잊혀졌을거라고 생각되서 큰 역할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만 쪽 기록과 달리.. 미국 쪽 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FRUS·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의 기록에 의해 이미 학계에서는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1943년 11월 22일에 카이로에서 식민지 관련 논의로 루즈벨트와 처칠이 다투고..
1943년 11월 23일에 쑹메이링의 통역에 의해 장제스와 루즈벨트가 카이로에서 단독으로 이야기를 하죠.
1943년 11월 24일 기록을 보면.. 이날 루즈벨트가 처칠을 만났고.. 여기서 처칠에게 전날 장제스와의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There was no doubt that China had wide aspirations which included the re-occupation of Manchuria and Korea.
( 중국이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한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또 중화민국은 한국의 임시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적이 없습니다.
고스(Clarence E. Gauss) 중국 주재 미국 대사가 이게 이해가 안되어 이에 대해 당시 임정 외교부장인 조소앙 선생님에게 물었는데..
조소앙 선생님이 그 때 일본 패전 후 한국을 중국의 종주권(宗主權·Suzerainty) 아래 두려는
중국의 욕망(desire)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기록도 되어 있죠. 이게 1942년 2월 12일 기록입니다.
미국쪽 해석은 처음들어봐서 몰랐었네요.
여튼 미국은 그렇게 해석한것이고 어떤 행동에 대한 해석일뿐이죠. 제가 쓰레기를 줍는다는걸 주변에서는 깨끗한걸 좋아하는구나 라고 볼수도 있고 착한척 하는구나라고 볼수도 있는거처럼요.
그래서 그런 속뜻이 있어서 조선이 카이로 회담때 잊혀지는게 맞나요?
지금 1을 건너띠고 3으로 가는거 같아서요. 카이로 회담때 조선독립국화를 말하지않고 잊혀졌으면 그 이후 일본의 주장대로 조선반도가 일본국화 되는상황이 제일 유력한 상황 아니였나요? 전쟁이후 끝까지 일본은 한반도는 제발 남겨달라고 원했잖아요.
조선문제를 꺼냈기때문에 그런 해석이 나올수 있는거라서 애초에 1를 건너띨 필요가 없다는뜻입니다.
루즈벨트는 이미 1942년 2월 23일 라디오 담화에서 한국의 처지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Look at the people of Korea and Manchuria, who now lived in the condition of slavery and are being used as forced labor in the Japanese war machine."
(현재 노예 상태에서 살고 있으며, 일본의 전쟁 기계를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있는 한국과 만주의 국민들을 보십시오.)
대영제국 유지를 위한 처칠과 달리 루즈벨트 자체가 이미 식민지 처리에 대해서는 처칠과 다른 입장이었고
영국의 식민주의를 경멸했던 사람이에요. 한국에 대해서는 원래 호의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장제스의 언급으로 인해 테이블에 올랐다고만 보는 것도 무리라는거죠.
그래서 역사에 고맙거나 밉다거나 하는 사적감정을 과하게 실으면 미스가 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장제스에게 고마워하는 것이나,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키고 방어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나, 다 가치를 배제하고 보면 주판알 튕긴 결과인데 어느 쪽이든 감정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루즈벨트는 별 관심이 없었고 처칠은 아예 독립국화 삭제하자고 까지 했는데 다른 말씀하시는거 같네요. 오히려 중국이랑 대만이 조선독립국화를 강하게 주장했죠. 그중에 장제스가 가장 큰 역할을 했구요. 루즈벨트가 조선 독립국화를 강하게 주장했다는걸 알려주신다면 저도 새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하나 더 붙이면 그때 카이로 회담당시 장제스가 회담에 들어오게 된게 루즈벨트의 호의 때문이고 사실 장제스가 어떤걸 요구할정도로 그 회담에서 큰 지위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생각해보시면 중국 즉 청나라는 그때까지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뜯어 먹힌 존재였지 강력한 패권국이 아니였기때문이죠. 심지어 스탈린과 처칠은 회담에 들어오는걸 싫어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장제스가 설사 다른 의도때문이라도 조선독립을 말한건 우리 임시정부의 외교력과 독립군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평가하면 되는거죠. 임정의 외교력과 친분으로 장제스가 조선독립을 주장했고 설사 딴 생각이 있더라도 일단 독립국화 조항을 얻어내는게 중요했으니까요.
당시 장제스가 조선/임정에 대해서 독립에 도움을 준것은 맞구요
세상일이 다 장제스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미국이랑 쏘련이 있었거든요.
뇌를 파먹힌 벌레같은 것들과 함께 살고 있네요.
일본의 항복이 5일 정도만 늦게 나왔어도 독립이 아니라 승전국이 되었을텐데
패전국 지위 면하고 특별상태국 지위 된게 천만다행인데요
당시 일본은 미군에게 해전에서 대패하고 본토까지 털리는 상황이었고
누군가 그토록 올려치기 했던 관동군은 8월 폭풍 작전으로 소련에게 개털렸습니다
병력과 물자가 부족해서 모든 자원과 병력을 차출한 상태였었고
5일 정도만 늦게 항복 했어도 국내 진공작전으로 인해 자주독립이 가능한 상황이었어요
만약 정말로 실행 되었다면 당연히 승전국 지위로 인정받는거죠
프랑스가 왜 승전국 대우 받는지 한번만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데요
왜 미쏘놈들 반띵 놀이 하면서
일본으로 부터 해방된 나라에서 자국민들끼리 이데올로기로 백의사, 김구, 여운형, 송진우 등등 서로 암살하게 만들었습니까. 이 사람들 다 이데올로기 전에는 그냥 조선 독립밖에 없던 사람들인데
미국, UN군이 독립운동가를 돕기 위한 주목적으로 한국에 온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우선 목표는 소련과 중공의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 것이고,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 전쟁에 참전한 것이 팩트니까요.
결과적으로 미국 유엔군이 있어서 지금의 남한 지역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미국이 만든 그 안보의 기틀 위에서, 이를 기회 삼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주도적으로 성장시킨 주체는 한국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인데, 지금의 한국을 완성한 것은 결국 한국인들 역량 덕이 대다수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결국 같은 민족임에도 남북의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 것은, 단순히 어느 팀에 줄을 섰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특정 이벤트 결과로 발생한 그 기회를 활용해 어떤 시스템을 만들고 발전시켰느냐, 는 국가 내부적 선택과 역량의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이건 미국이 본인들만의 여러 목적으로 지원했던 다른 나라들과 한국을 비교하면 알수 있다고 봅니다.
추가 - 국가발전의 핵심동력은 동아시아 문화 그
중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고 봅니다 저의 의견은 이 문화의 바탕에 미국을 비롯한 블루팀에 줄선게 발전의 원동력이라 보구여
참전 용사분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저 역시 깊이 감사하고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피가 우리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저는 결국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이 무엇이었는가“를 질문으로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말씀하신 답변들은 “한국은 언제 기회를 얻었나?” 에 대한 답변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중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고 봅니다 저의 의견은 이 문화의 바탕에 미국을 비롯한 블루팀에 줄선게 발전의 원동력이라 보구여
우리의 역량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미국도 중요한 거의 비등한 역할을 했다가 제 의견 입니다
했다고 봅니다
다만 저는 그 기회를 성공으로 완성한 우리 민족의 실행력이 원동력으로 보고 있고요. 그리고 그 주체도 한국 시민들이었다고 보는거죠. 미국이 다양한 목적으로 전쟁에 참여해서 특정 나라를 지원하기도 했었지만, 그 목적이 그 특정 나라를 단순히 선의의 뜻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이념이나 미국 이익에 따라서 지원을 한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고 (미국 참전용사 등 개인에 대한 평가는 주제 범위 밖입니다) 그 기회를 살려서 변화를 만들어낸건 그 나라 사람들이었다고 봅니다.
님의 의견도 합리성이 있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저도 미국음식 좋아하는데 저정도는 아니거든요ㅎㅎ
우리 근대사가 더 자랑스러워 지나요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 입니다 ^^
인과관계와 상관관계 사이 미묘한 차이도 볼수 있어야하고, 복잡한 맥락도 같이 봐야하는데. 아쉬운 때가 여러번 있습니다
장제스는 회담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을 만나 독립 지원 약속을 나눴고, 회담장에서 미국과 영국의 소극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명시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전후 질서 재편의 최종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보다는 신탁 통치를 구상했으나, 장제스의 제안을 수용하여 카이로 선언에 한국 독립 조항을 포함시켰습니다.
스탈린의 참전으로 결국 나눠먹기 신탁이 되었습니다.
휴먼, 장제스에 깊은 감동을 준 독립투사들에게 감사하세요.
역사는 관점에 따라서 어떤 사실이나 기록을 해석 하는 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저들의 관점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아닌 겁니다.
북한과 교전해도 북한 치려면 미국 승인받아야 포라도 쏠수 있는데 승인 안해주는데 ㅋㅋㅋ.
우리 포탄 맞았어요 떼찌 떼찌 해주세요 하는 나라가 독립이란 표현 창피하지 않아요? 일본의 통치를 벗어났지 독립이라고 하면 아직도 갸우뚱하는데 정말 독립맞아? 우리 의사결정이 빠졌는데?
한반도에 주둔중인 일본군을 쳐부술 병력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그냥 멍하니 잠자고 일어났더니 독립 당한거지요
우리가 예뻐서 독립시켜준게 아니라 패전국 일본에 대한 처벌로 독립당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