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직후 미국 뉴욕에 갔다 왔습니다.
뉴욕에서 유명하다는 아폴로 베이글에 갔었습니다. 1호점은 좌석이 없어서, 영하의 날씨에 밖에서 베이글 샌드위치를 들고 먹는 것은 좀 처량하지 않느냐는 제 우려가 받아들여져서, 맛은 살짝 떨어진다고 하지만 좌석이 조금 있는 2호점에 갔습니다. 이번 뉴욕 방문 중 많은 장소가 자리가 없어서 이내 다 먹고 일어설 것으로 보이는 좌석 주변을 맴돌다가 찬스를 잡아 앉아야 했습니다.


베이글 샌드위치는, 제 미국 시골 동네에 비해 50%정도 비싸긴 한데, 자른 베이글 양쪽에 모두 토핑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베이글 샌드위치 두 개를 받는 셈입니다. 게다가 자른 솜씨와 사용한 재료의 품질이 가격이 아깝지 않습니다.
토마토 베이글의 경우 올리브유가 약간 뿌려져 있고, 그 위에 뭔가 양념이 또 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북작북작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친절합니다. 붐비는 서울 명동칼국수에서 손님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점원하고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냅킨이 더 필요해서 두리번 두리번 하며 돈 받는 카운터쪽을 둘러보자 카운터 너머 점윈이 알아서 여기 있어요 하고 웃으면서 내 줍니다.
라이온킹 뮤지컬을 보러 간 지역은, 알고 보니 뉴욕에서 가장 복잡한 지역이었더군요. 주말 저녁이라서 사람이 꽉꽉 차서 점심은 필리핀에서 유래한 치킨집인 졸리비(Jolibee)에서 먹었습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30분간 기다리면서, 움직이기도 불편하게 꽉 찬 식당 내에서 자리가 날 것 같은 테이블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한명 한명씩 앉아나갔습니다. 식사 과정이 너무 혼잡해서 졸리비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저녁은 덜 혼잡한 다른 곳에서 먹고, 택시나 우버/리프트(lyft)를 타고 뮤지컬 극장으로 올 걸 그랬습니다.
거리는 이런 분위기입니다. 염화칼슘을 왕창 뿌려 놓았기 때문에 건널목은 슬러시로 꽉 차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밀치거나 하지 않고 잘 기다리면서 복잡한 사거리 건널목을 잘 다니더군요.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이번으로 네번째인데, 캣츠처럼 별로인 것도 있었지만, 오래전에 봤던 마마 미아는 배우의 육성 노래 솜씨가 장난이 아니어서 감동받았고, 이번에도 무대 연출과 배우의 노래 솜씨가 훌륭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뮤지컬을 보고, 제 시골 소도시에서도 뮤지컬을 보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잘 하는 뮤지컬 가수, 그리고 연출가들이 경쟁하는 대도시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뮤지컬이 끝나고 10시 30분에 지하철을 타고 강 건너 롱 아일랜드 시(市)에 있는 호텔로 돌아오는데, 지하철은 늦은 시간에도 불안한 느낌이 없습니다. 클리앙 회원 중에는 뉴욕 지하철이 흉흉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한국도 사람 통행이 드물고 금방이라도 망할 듯한 가게와 공장들이 포진한 동네가 있는 것처럼, 뉴욕도 이상한 동네에 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가는 동네와 코스는 안전했습니다. 저는 이번이 다섯번째 뉴욕 방문입니다.

뉴욕 지하철은 프랑스 파리 지하철처럼 빈곤한 이민자가 핸드폰을 날치기해간다던가 하는 치안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소매치기나 날치기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요.

마치 미국 영화에서 봤던 조연 배우들이 앉아 있는 분위기입니다.
지하철 역은 2022년 방문과 비교해서 깨끗해졌습니다. 냄새도 줄었고요. 소변 냄새가 나는 지하철 역은 딱 한 개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주로 롱 아일랜드 시(市)와 연결하는 M, F 노선을 이용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2022년에는 호텔이 시내에 있어서 오래전 건설된 노선들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버스도 깨끗하고 멀쩡합니다. 낙서 같은 것도 없고, 사람들은 우리 일행이 붙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주기까지 합니다.

뉴욕 관광에서 느끼는 점은 사람들이 주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는지 관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와 집사람이 지하철에 앉으면, 우리 둘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흑인 아저씨는 약간 옆으로 이동하면서 "우리가 남이가!"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지하철 역에 들어가서, 구글 맵이 안내한 지하철편이 없는 것을 보고 당황할 때, 지나가는 아줌마가 우리가 M인데, 여기 안 서나봐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지 연말에 M 노선은 밤에 정차 안 해요 라고 말해주고 갑니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친철하다고 하는데, 뉴욕 시만들도 그런 K-문화를 배운 것 같습니다.
한국의 넥센 타이어가 뉴욕 아이스하키팀 레인저스의 공식 파트너군요.

크리스마스에 록펠러 센터 빌딩 앞에 세워진 트리입니다. 굉장히 큰데, 저것을 생나무로 운송해 왔다니 대단하네요.

인파가 극히 혼잡하긴 한데, 사진을 찍을 공간씩은 다 양보해 줬기 때문에 트리가 보이는 가족사진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 센터 뒤편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 줄 서는 거리)에는 차가 돌진하지 못하도록 중(重) 바리케이드를 구축해 놓았습니다. 두꺼운 철 구조물로 만든 문이 장착되는 받침은 묵직한 콘크리트/철제 구조물이고, 그 옆에도 차가 통과하지 못할 정도 간격으로 콘크리트 덩어리를 내려 놓았습니다.

이제는 뉴욕시 지하철 도착 현황판도 서울을 본떠 TV 화면으로 나옵니다.

뉴욕시립 발레단이 매년 크리스마스에 편성하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는 시립 발레단 극장에서 공연합니다.

저는 1층 (orchestra level) 중간쯤에서 봤습니다. 더 가까웠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가 가격과 몰입감에서 좋은 균형인것 같습니다.
발레가 뮤지컬보다 좋은 점이, 영어 대사가 한개도 없다는 점입니다...... 무성 영화입니다. 저처럼 영어 리스닝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딱 좋습니다.
오케스트라 생음악을 들으면서, 고급 무대 연출과 인체의 모션 제어 능력에 놀라면서 봤습니다. 인간형 로봇이 궁극적 완성을 이루는지 평가하는 것은 발레를 잘 할 수 있겠는지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레 무용수 신체의 정교한 가감속과 정교한 균형, 그리고 외부 음악에 정교하게 동기화된 움직임(시작 시점 및 변위)은 놀랍습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 우스개 소리로 이화여대 무용학과가 남자 발레 학생을 뽑는데 그 역할은 여자 발레 학생을 공중으로 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 발레에 남자 발레 무용수(발레리노)와 여자 발레리나와 함께 출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발레리노의 많은 부분은 발레리나를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들어주는 역할'도 굉장하더군요. 절제된 힘과 박자감, 그리고 발레리나가 기동할 때 쌍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은 그저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이라고 볼 것이 아니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할 수 있겠나?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발레리나를 들어주는 부분이 다 끝난 후 발레리나가 들어가고, 남자 발레리노가 솔로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순간적인 힘이 장난이 아닌 기동이 연속됩니다. 우와....... 저 공돌이에게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뉴욕 시립 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공연은 1막은 발레가 없고 서사 부분입니다. 그 1막의 주인공은 금년 11살의 Dessa Lynn Turfs가 선발되어 출연했습니다. 2년간 발레를 배웠다고 합니다. 1막에서 연기를 한 후, 2막에서 코스튬을 입고 다른 여러 아동들과 함께 조연으로 약간의 발레를 합니다.

이 발레도 뉴욕에 오면 볼 만 합니다. 제 경우는 사전에 유튜브에 있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 해설 영상(한국어)들을 몇 개 보고 갔습니다. 저는 생전 발레를 본 적이 없지만, 음악과 조명, 연출, 움직임에 있어서 우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니까요.
점심 중 한번은 유명하다는 L'industrie 피자에 갔습니다. 본점은 뉴욕 밖 브루클린에 있고, 이 집은 2호점입니다. 비가 오는데도 줄이 30m정도 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줄 절반쯤 진행된 상태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 줄 길이가 개점 15분 경과 상태입니다. 며칠 전 근처를 지나갔을 때는 줄 길이가 50m가 넘는 것도 봤습니다.
내부는 좌석이 전혀 없고, 서서 먹는 작은 테이블들 뿐입니다. 그나마도 없어서 밖에 처마밑에 서서 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 일행은 재수좋게 다 먹어가는 사람 뒤에 있다가 그 입식 테이블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좁게 서서 불편하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피자 맛은 좋습니다. 양질의 재료로 적당하게 잘 구웠더군요.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에 와서 굳이 불편한 광장시장을 찾는 이유도 이런 것을 즐겨보고, 정말 유명한 곳은 맛있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뉴욕은 도보로 관광하면 상점과 군것질 거리, 카페들이 초 밀집해서 위치하고 있고, 크지 않은 일행으로만 시도할 수 있는 이런 서서먹는 맛집들이 있기 때문에 (수준이 높지 않은) 단체 관광객이 저절로 지양되고 개인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매력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시장이나 관광지를 현대화하는 것은 이런 매력을 벗겨버리는 결과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뉴욕에도 반지하 주거가 있더라고요.

제가 호텔은 잡은 롱 아일랜드는 우리가 아는 뉴욕에서 작은 강 하나 건너면 되는 곳이라서 교통이 편리합니다. 하지만 롱아일랜드도 지하철역 근처는 오래전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낡고 더럽습니다.
지하철역에서 호텔로 걸어들어오는 곳은 이렇게 공공지원 아파트가 있는데, 그 겉모습은 서울에서 낡기로 1, 2위를 다투는 서소문 아파트, 진양아파트같은 분위기입니다. 쓰레기도 적지않게 있고요.

하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멀쩡하더군요. 2018년이나 2022년에 비해 다니는 사람들의 옷이라던가 정신은 더 또렷해 보입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나, 밤 11시에 위 사진의 동네를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밤 11시에 저 동네의 50년은 더 되었을 법한 구멍가게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보는 사람들은 제가 가게에 들어가려고 하면 연 문을 친철하게 잡아주고, 인사도 해 주는 흑인 청년과 가족들이더군요.
제가 한국에 가면 머무는 곳이 서울역 건너 서울스퀘어 빌딩 (구 대우빌딩) 뒤편인데, 그 동네도 오래된 동네고 소득 수준이 높다던가 청결하게 정비된 동네는 아니라서, 그 동네와 뉴욕이나 롱 아일랜드의 분위기가 흡사하게 느껴집니다. 걸어가는 길에는 남루한 가게도 있고 그 사이에 새로 열은 도전정신 왕성한 가게도 있으며, 조그마한 동네 수퍼에 가 보면 그 동네에 오래 살던 한국인과 새로 이사 온 외국인 노동자 가족이 섞여 장보는 모습도 그렇고요.
제 시골로 돌아오는 길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 사진을 찍었습니다. 터미널이 몇 개 있는데, 스피릿 에어 항공사는 가장 오래된 터미널 A를 사용합니다.


공항 역사가 전시된 게시판을 보니, 왼쪽 아래 사진이 눈에 익습니다. 오늘 제가 찍은 두 장 위 사진과 같은 장소입니다!

이 터미널은 1947년에 개장해서 그 모습 그대로 사용하고 있군요......
제가 미국 건축과 그 내부 시설에서 늘 느끼는 특징은 잘 동작하는 것이라면 굳이 바꾸지 않는 점입니다. 제 동네에 있는 50년 넘은 백화점과 그 내부 에스컬레이터도 그렇습니다. 1947년 개장은 아니지만요.
관광객이 몰리는 역과 그 인근은 어수룩한 관광객 대상 범죄가 벌어지는 것 같은데, 그 관광 명소만 벗어나면 파리(그리고 인근)도 사람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여느 도시와 같더군요.
미국 뉴욕도 대부분 검은색 패딩 일색이네요. 우리나라 특징인 줄 알았는데...ㅎ
(혹시 저것도 K-??)
근데 밤 늦게 타면 이상한 사람들은 있더라구요
밤시간대 뉴욕지하철이 저리 아늑(?)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