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했고,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일본은 빨리 개방하고, 조선은 늦게 개방해서였다고.. 학창시절에 간략하게 배운 것 같은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비전문가로서, 여러 교양서적을 배운 지식을 토대로, 제 머리를 정리할 겸 (또 주변의 일베-조선 비하 세력과의 다툼에 대비하기 위해...) 글을 적습니다.
먼저 국력비교나 여러가지 측면에 들어가기 앞서서.. 주로 다루고 있는 시대가 전근대 시대이기 때문에... GDP와 같은 계량적인 국가생산량 평가가 존재하는 현대와는 달리, 전근대 시대는 인구가 국가의 국력과 굉장히 상관관계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대부분의 국가는 멜서스 트랩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기근이 되면, 인구가 엄청나게 줄고, 풍년이 들면 인구가 늘어나고.. 하는 식으로 국가의 생산량 (더 나아가 국력)이 인구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죠.
1. 전체적으로 봤을 때, 조선 전기 까지는 일본의 국력보다 한반도 통일 정권의 국력이 더 강하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올린 작은 다른 스레드에서, 이유를 간단히 나열했었지만, 인구 면에서 일본의 인구가 (당시 일본이라고 부르던 지역은 현재의 일본 판도보다 훨씬 적은 본주,시코쿠,규슈만을 보통 포함했고, 훗카이토나 일본열도 북부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쇼군의 정식 호칭이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 즉, 이민족을 정벌하는 대장군)이라고 불리는데, 일본 정부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정벌하는 장군이라는 뜻을 가졌었죠.) 약간 많거나 조선과 비슷했죠. 즉 현재의 한반도 인구 vs 일본인구 (8천만 vs 1억2천만)과는 달랐습니다. 일본이 오키나와나 다른 지역만을 제외하고 일본 본토만을 봤을때도, 현재의 일본 영토가 된 것은 19세기 이후이고, 이 전에는 일본이 영향력을 미치는 곳은 일본 본토만을 봤을 때도 훨씬 적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경우는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매우 낮았고, 관료제의 효율성이 조선시대나 동시대 한반도에 있었던 중앙정권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에, 동원가능한 병력은 한반도 국가에 크게 미치지 못했죠. 조선전기는 물론이고, 이전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일본 중앙정부가 한반도 정권의 국력은 초월한 적은 거의 없었죠.
2. 도쿠가와 막부의 안정기 vs 조선의 세도정치
학창시절에는 국력이 차이나는 분기점을 19세기라고 간단히 배웠던 것 같은데... 이 시기는 사실 국력차가 확실하게 드러난 시기이고, 사실은 국력차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도쿠가와 막부가 자리를 잡은 이후라고 많은 연구자들이 추론합니다.
조선이 성립하던 당시에, 일본은 여러 지방 번들이 난립하던, 전국시대였습니다. 당시 조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적으로는 "농본주의"+쇄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고, 일본도 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란시기였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농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번이 다른 번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감적으로 상업이나 도시 발달도 각 번의 국력에 영향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업이 중요하긴 하지만, 상업을 등한시하면 우리 번은 망한다라는 것을 체감적으로 알게 되었겠죠. 전국시대 당시에는 워낙 전란이 심했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큰 힘을 가지기는 어려웠지만.
17세기 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안정되게 되면서... 일본은 200년 넘게 일본 역사상 전례없는 평화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데올로기 상으로는 여전히 농본주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시대의 경험을 통해... ) 상업, 금융을 묵인하게 되었죠.
반면, 조선의 경우는 세도정치가 들어서서, 전근대 사회의 기준으로도 매우 부패하고 (매관매직 성행), 군역붕괴, 국가의 재정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했죠.
3. 일본의 지방분권화. vs 조선의 중앙집권화
아무리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 일본의 사실상 제1인자라고 하더라도, 사실은 일본에는 많은 영주(다이묘)들이 존재했고, 많은 경우에 다이묘들끼리 경쟁을 하기도 하고, 서로 다투기도 하였죠. 또한, 조선처럼 중앙정부 위주의 조세제도, 물류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지방의 특산물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상업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죠. (극단적인 예를 들어, 어떤 번들의 경우는 거의 광산만 있었기 때문에, 상업이 없이는 주민들이 살기도 어려움)
또한, 다른 경쟁 '번'들보다 국력상 우위에 서기 위해, 아무리 중앙정부에서 '쇄국' 또는 "관리된 제한 개방"을 주장하더라도, 서양과 각 번들이 무기를 수입하기도 하고, 무역을 하는 등 각 지역별로 차근차근 세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 번들이 당연히 자신들의 권력이나 국력을 위해 큰 도시를 발전시키기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죠.
반면, 조선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했기 때문에, 밀무역이나 정부가 허락하는 공무역을 제외하고는 상업발전에는 큰 한계가 있었고, 농본주의 정책이 이데올로기로서만 존재한게 아니라, 직접적인 국가 전반에 실제로 적용되는 이념이 되었죠.
이러한 묵인된 상업과 상업발전+도시발전 (일본)vs 상업억제 (조선). 차이에서 17~18세기를 지나 19세기에 돌입하게 되면, 지방재정의 총합이나 일본의 경제포텐셜이 조선을 크게 초월하게 됩니다.이러한 경제규모(?)의 차이는 근대화 시기에 큰 차이를 불러 일으켰죠.
4.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의 개혁 세력 vs 조선의 개혁세력
메이지 유신 당시, 주축이 된 세력은 지방 세력인 사쓰마번, 조슈번 등입니다. 도막(막부를 무너뜨림) 세력이라고 불리웠죠.
이 도막 세력들은 막부의 정통의 취약성을 적극 이용했죠. 당시 도쿠가와 막부의 기형적인 정치 체제는... 쇼군이 실권자이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덴노의 신하였고, 덴노를 대신해 나라를 지배하는 특이한 구조였죠.
그런데 도막 세력들은 막부가 아니라 덴노를 섬긴다는 논리를 폈고, 이를 통해 오히려 정통성에서 우위를 질 수 있었죠. 또한 앞서말한 이유로, 각 번들은 이미 메이지 유신
이전부터, 서구식 무기를 들여화 군대를 양성할 수 있었으니... 개혁세력 또는 도막세력은 군사력은 막부보다 당장은 부족해 보일 수 있더라도, 유교적 정통성 측면에서도 오히려 우위를 점할 수 있었죠.
반대로 조선에서도 개혁운동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 등이 일어났지만, 이들이 일본과 비교해서 지방영주 세력의 군사력도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정통성 자체도 조선 왕과 정부에 있기 때문에, 정통성이 크게 밀렸죠.
이런 이유로
유교적 관점에서 (당시의 메이저 이데올로기는 조선이든 일본이든 유교였으니)
일본의 도막세력은 오히려 덴노를 무시하는 막부를 '역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조선의 경우 개혁세력 (동학세력, 갑신정변 당시 김옥균 등 세력)이 역적이 되었죠.
5. 개혁당시 시대적상황
또한 일본은 운이 좋았습니다. 미국의 페리제독이 개항을 요구하며 일본에 들어왔고, 당연히 이권도 침탈하려고 했겠지만..... 때마침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1860년)이 발발해버렸죠. 개항시킨 당사자인 미국은 일본에서 이권을 취할 그런 틈도 없었고, 이 타이밍에 일본은... 비교적 외세의 간섭없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조선의 경우,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하던 시절에는, 이미 일본이 근대화에 어느정도 성공했고, 다른 열강들을 모델로 해서, 자국 외 식민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죠.
즉 일본의 근대화 성공은 '개방의 시기'가 아니라 '개혁 세력이 권력을 이미 쥐고 있었는가'의 문제였고.. 일본은 기반이 갖춰졌었고 운도 좋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런 파운데이션이 되었는가의 문제였고.. 안타깝게도 조선은 그 조건을 끝내 갖지 못했다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공자도 아니고, 교양수준에서 쓴 글입니다. 새로운 포인트나 관점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시면 즐겁게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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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건, 명분을 떠나 사츠마번 죠슈번의 동맹이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죠. 사츠마번은 1601년부터 류큐를 지배하면서 류큐를 통한 밀무역으로, 죠슈번 또한 쓰시마를 경유하는 밀무역으로 매우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군사력 또한 충분히 강력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각각의 군대는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 해군, 육군의 기반이 됩니다.
존왕양이는 명분이라는 양념일 뿐이었지만, 막부의 실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이만한 명분이 없었을거에요. 막부의 거듭된 삽질로 인해 민심이탈과 권위실추가 쿠데타의 성공가능성을 더욱 끌어올린거죠.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는 쇄국정책 일변도로 문잠그기 바빴고, 일본과는 다르게 지방권력이 따로 없는 중앙집권화된 구조 때문에 반기를 들만한 세력의 성장이 불가능했어요.
대한제국도 전차도 먼저 도입하는 등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근대화에 성공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네요. 보통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한 것은... 다른나라의 식민지나 외세의 영향력이 있기 전에, 강대국 반열에 오를 때 성공한다고 보지만...
따지고 보면, 일본도 결국 제국주의 시대로 이어져, 망했으니.. 롱텀으로는 성공한건가 생각이 들긴 하네요.
롱텀으로 본다면 일본이 성공했다고 볼 수능 없겠찌만.. 조선이 실패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일단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 비해 국력차가 훨씬 부족하게 되었고, 일본에 먹혔고, 일제시대를 겪게 되었고, 이 일제시대가 이후 분단까지 이어지게 되니깐요 (일본의 무장해제를 이유로 미군과 소련이 각각 남북에 주둔하게 되었으니깐요) ㅜㅜ
일본의 침략에 당했기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한거라고 하시는건가요? 청나라, 러시아와의 전쟁에도 이긴 일본인데요.
일본에 점령당하기 전 이미 철도/전기/도로 등의 사업을 미국회사들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계속 개발과 발전을 거듭했겠지요.
근대화에 늦은 이유를 찾는다면 모를까, 실패한 이유는 일본의 침략외는 없는것 같습니다.
토막파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주축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조슈번 출신일 것입니다) 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일본 정치세력의 본류(?) 같은 느낌이죠. 아베신조의 아버지도 조슈나 조슈 지방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정권교체가 가능한 환경이었는가
두가지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조선시대는 상업을 워낙 천시해서... 교역을 통한 선진문물의 도입이 어려웠죠. (괜히 방곡령을 국사시간에 배우는게 아닙니다. 내다 팔만한게 쌀밖에 없었다는 뜻...)
그리고 워낙 오랜기간 중앙집권 국가였기 때문에 몇차례 민란이 있었지만 구 시스템을 바꿀만한 동력도 없었고요....
1.상업에 대한 태도
일본도 상업 종사자에대한 태도는 비슷했다고 볼 수 있었다고 봅니다. 사무라이도 죠닌들을 천시하기는 마찬가지 였었죠.
다만 에도막부시기 내내 지방 다이묘들에 대한 견재책으로 참근교대를 시행하였는데 지방에서 에도로 다이묘들이 왕래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막대한 물류의 이동이 제도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그 일을 죠닌들이 맡게 되고 물자의 교류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상업이 커진 면이 있었습니다.
사쓰마 쵸슈 등 번의 밀무역으로 외부와의 교역도 역할이 컸지만 이미 참근교대로 인해서 내부적으로 전국적인 상업 부흥이 일어났죠.
2. 상업을 천시했던 거는 일본도 마찬가지였지만 국가 통치 시스템이 의외로 조선의 경우 꾀나 치밀했었다고 봅니다. 중앙 집권화된 체계적인 시스템이 존재했었죠. 물론 세도정치 등 대가리가 썩어 버리니 지배체제의 치밀함도 소용이 없었죠. 어쨌든 지배체제가 그러하니 반동세력이 커질 수가 없었구요.
하지만 에도시대에도 막부의 지배력은 한계가 있어서 지방 번에 대한 통제력이 에도시대 후기에 와서 많이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참근교대가 오히려 상인들의 힘을 키워줬고 이를 이용해서 사쓰마나 쵸슈같은 번들이 밀무역 등으로 힘을 키우게 되고 보신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막부가 폐망하죠.
그런데 이게 개화파의 승리라고 단순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도막파들이 단순히 개화론자들이라고는 말하기가 곤란하죠. 어떻게 보면 얘네들도 권력 한번 잡아보려고 어찌하다보니 개화를 하게 된 거지 지들 권력잡는데 쇄국이 유리했으면 도막파들도 뒤도 안돌아보고 쇄국했을 넘들입니다.
역사가 필연이란 게 저 단어로 보이는 거 같아서요. 일본은 전국시대 등 여러세력이 경쟁하니 무역이든 뭐든 할 동기가 분명했어요.
하지만 조선은 중앙집권화로 잘 살던 나라라 그럴 동기, 동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금이나 은광산이 없던 게 아니지만 개발을 안 하고 그걸로 외부와 교역도 안 했죠.
그리고 이런 시각으로 보게 되니 누군가의 무능과 부패로 근대화를 못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정해진 역사적 결과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선의 근대화 이전에 서구문명에 대한 필요성이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조선에는 없었거든요. 필요성이 있을 이유도 없었고요.
에도막부가 지방 번들을 견제하려고 만든 참근교대 제도가 죠닌 계층을 키웠습니다. 다이묘인 번주들이 움직이려면 막대한 물자와 자금이 소모되어야 했고 에도에 고급 대저택인 거처를 마련하고 유지하려면 또 막대한 돈이 들었구요. 그렇게 돈이 쓰이니 그 돈 버는 죠닌들이 성장했죠.
개화파가 개화를 위해 전쟁을 했다기 보다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 참근교대로 유지되는 막부체제가 한계에 봉착한 이유도 있습니다. 참근교대하면서 지방번의 재정이 거의 끝장난 상태였고 어떻게든 빚잔치를 해야 할 상황에 보신전쟁이 터진거죠.
참근교대가 우스운 점이 그렇게 막대한 자금이 쓰이는데 이게 경작지를 개간하고 저수지를 만들고 둑을 쌓는 이런데 쓰이는게 아니라 오로지 체면치레를 위한 여행 집꾸밈 이런데 쓰는 소비성 자금소모라 요즘 말하는 국가의 GDP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 조정은 500년의 짬빠가 있는 근성의 중앙집권 체제 였었고 일본은 이제 갓 200년 된 어정쩡한 봉건제도였었죠.
지배체제의 견고함이 달랐어요. 조선 조정이 철근콘크리트라면 에도막부는 판자집이었습니다.
성리학이 종교수준으로 가면서.. 부드러운 변화는 불가능 했죠.
그래서 저는 지방자치가 거의 타국 수준으로 강하게 이뤄져야한다고 봅니다.
저도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총균쇠에서 중국과 유럽의 역전도 이런 경쟁으로 설명했던 거 같습니다.
실제로 지방자치제도는 경제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특히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렇죠.
말씀하시는 수준의 지방자치가 이미 유럽 중세시대에 있었지만 아시다시피 비효율의 극치였죠.
이게 큰 문제이기는 했지만 당시 조선은 외세의 개입이 없었으면 그냥 그럭저럭 유지되었을 겁니다. 비록 군사력발전이 안되었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부패하기는 했지만 나름 행정체계는 작동을 했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지금 둘로 쪼개져서 남쪽이라도 잘사는 것처럼 수십개로 쪼개져 있어야 향후 변화에 어떤곳은 망해도 어떤곳은 살아남겠죠. 살아남은 것은 다시 퍼져 모두의 번영에 기여할거고요.
국가에 자연선택 진화이론이라고 보시면 될거같습니다.
지금 중앙체계는 기득권이 나라를 이용해먹으면 대처방법이 없어요. 잠깐은 성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필히 망하는 체계라고 봅니다
자연선택 진화이론을 국가 흥망에 적용하는게 맞을 지 모르겠네요.
에도 막부도 일본의 기득권이었고 막부체계가 워낙 허술하다보니 쉽게 깨진 측면이 있었습니다.
500년을 잠깐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사에서는 좀 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봉건체제인 에도막부가 더 수명은 짧았고 폐망은 일순간에 일어났죠.
조선은 일본이 합병하기까지 수십년에 걸쳐 천천히 망했구요.
서양의 과학 기술의 기틀도 결국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싸우고.. 영주끼지 치고박고 싸우고. 종교로 치고박고 싸우고...
그러면서 과학 기술도 발달하고. 다른 문화 곂치면서 호화 사치 예술도 발전하구요..
현대도 미국같은 나라가 국방기술에 돈 쏟아 부은게 신기술들의 기반인처거럼요..
동네에서 농사짓고 편하고 안정되게 잘사는데.. 다른생각이 잘 안나겠죠.. 일본도 유럽과 비슷한 상황이였다 봅니다 ㄷㄷ
진화생물학적으로 비유하면, 강력한 지구의 지배종이었던 공룡이 멸망한 것처럼 조선도 전근대 동아시아 환경에 너무나 완벽히 적응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 변화에 따른 진화 압력이 누적되지 않았고, 서국 제국주의나 산업혁명 등의 외적인 이벤트의 속도가 너무 빨라 중간 적응 단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외국이랑 싸워서 그 힘을 이해하지 못하고 쇄국을 더더욱 했으니
“왜?” 라 의문의 답을 얻는 건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겨우겨우 막아내긴 했지만 조선의 국방력은 망해버렸고....
그상황에서 먼저개항하고 성장한 일본의 운요호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이 맺어버렸죠..
일본도 미국에 먼저 개항후 탈탈 털릴 위기였는데
미국내정이 혼란스러워져서 일본입장에선 기회가 와버린거죠....
참 조선말기는 너무 다이나믹한 시대였고
불과 20년ㅡ 30년사이에 너무 큰 차이가 벌어져 버렸죠..
200년간 이어져온 참근교대로 가장 먼거리의 불만이 쌓일대로 쌓인 조슈번과 싸쓰마번의 신 사무라이들이 서양서 들여온 신식무기로 정권탈취를 위해 반란을 일으켜 성공한거죠. 물론 그 배경엔 메이지유신 훨씬 전부터 상업 성장과 무역에 올인해 반란 자금을 치밀하게 준비한것도 한 몫 했구요. 그 반란의 명분을 요시다 쇼인이라는 작자가 부국강병에 정한론등을 내세워 만들어 준거죠.
(개항을 일본에 의해 당하나 서구권에 의해 당하나 매한가지)
적어도 서구권 국가는 문화코드가 많이 다르고 원거리에 있으니 일본 보다는 덜 사악하지 않았었을까...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저도 전반적으로 동의 합니다. 조금만 제 견해를 첨언하자면...
조선은 전기부터 중기까지 상당히 안정적으로 백성을 위한 국가 운영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국력(군사력, 경제적 생산력 등등) 기준 선진국이라기 보다는 정치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선진국이었던 나라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자체가 '민본주의'를 내세운 고려말 엘리트 집단 '신진 사대부'에 의한 혁명으로 시작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혁명으로 시작된 나라였기 때문에 상당히 '정의로운 지배층'을 가진 나라가 되었죠. 농업 생산력이 강해야 백성을 '목민' 할 수 있었기에 농업을 장려하며, 세금도 크게 높게 받지 않았습니다.
'왕은 만백성의 아버지' 라는 이야기도 사실 왕에게 의무를 지우기 위한 '캐치 프레이즈'에 가까운 표현이어서 왕의 권력을 옥죄는 용도로 주로 쓰였을 정도죠. 뭐 항상 "니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부분은 왕의 권력을 엘리트 집단과 나누는 즉, 왕권이 절대권력이 될 수 없도록 설계된 나라였지만, 당시의 시대상에 너무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왕권이 강할 때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왕권이 점점 약해지면서 조선 후기 철종 때에 와서는 거의 대가 끊어지는 수준으로 무너져가고, 엘리트 집단은 부패해가면서, 이미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니고 "그들만의 리그(세도정치)"가 형성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배 세력'에게 '외세' 라는 것은 위협일 뿐 기회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들의 본질도 송나라의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역성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세운 집단이니, 당연히 또 다른 외세에서 온 세력은 경계 대상일 뿐인 것은 자명합니다.
결국 왕권은 힘을 잃고, 시대를 읽을 눈과 힘을 잃었으며, 엘리트 집단은 부패하면서 수구 세력화 된 것이 조선의 몰락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몰락은 그렇게 되었으나, 조선은 매우 정의로운 정치 철학을 가진 나라였고, 고려 권문세족에게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서 엘리트 집단이 대리 혁명을 일으켜 세워진 나라이며, 그 정신을 거의 400년은 유지했던 나라입니다. 따라서, 조선의 끝이 허망하다 하여도 조선이라는 나라의 가치는 당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멋지고 훌륭한 나라라는 것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의 중앙 집권적 정치 운영이 우리나라 빠른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새마을 운동이야 말로 Top Down 형식의 혁신이었고요.
오히려 현재 우리나라의 구조적 한계는 파편화된 개인주의가 역으로 이익집단화되어 이기적인 주장만 펼치고 있다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남성/여성 간의 혐오 조장 등등 이겠죠.
2. 세도정치
3. 동학농민운동 실패 및 외세 개입
4. 개방 늦음
5. 오페르트 도굴 사건으로 쇄국 명분 강화 등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전부 서구 체제로 완전 변화를 시도한 집권세력덕이 크다고 봅니다.(결국 제국주의 마지막 티켓 확보. 우리나라엔 재앙..)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외국 기술을 위주로 받아들였던 청나라가 그꼴 난걸 보면요.
그 이유를 일본과 친일파들이 백년 넘게 공들여 만든 논리를 답습해 가며 엄한데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은 페리 함대가 들어오자마자 강약약강 보균자 답게 무조건 항복하면서 강제로 근대화가 됐고
조선은 미국, 프랑스를 이겼고
그 차입니다.
미국과 프랑스와의 연이은 혈전으로 강화 등지의 한강 방어진이 와해된 후에
일본이 운양호 앞세워서 손쉽게 쳐들어 올 수 있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