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믿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교화되고 갱생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비율이 극악의 확률로 미미하다 생각하죠.
교도소 내에서 범죄자의 인권문제 때문에 골치 썩는 걸 보고있자면
더더욱 그런 심증은 굳어집니다.
아주 미세한 확률로 오판으로 발생한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 때문이라도
인권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다뤄지기도 합니다만,
그 미세한 확률을 떠받치기 위해 발생하는 거대한 사회적 비용과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범죄자 인권에 대한 문제는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범죄자는 범죄자 답게 다뤄져야하지 않겠습니까?
조만간 내란 범죄자로 넘쳐 날 교도소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쓸데없는 곳에 국력을 낭비하고 심리적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충분한 법적처벌과 사회적응과정을 거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적지않은 인구 수가 범죄자로 남아있기 때문에 관리감독하는 것에도 비용도 많이 들고, 사회적 피로도 드는 것이죠.
그리고 제대로 교화를 시켜줘야 교도소 안의 공간도 생기는 것이고, 사회도 다시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근데 자기 스스로 철저하게 반성하는 경우에만 가능할거에요
진심은 감추고 규칙은 지키도록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모양새는 만들어 질 수 있을거 같아요
타고난 본성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70의 선의와 30의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100의 악의로 가득한 환경이 주어졌다면? 그 사람에게 100의 선의로 가득한 환경이 주어졌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요?
물론 악의가 100인 사람은 기회를 또 줘도 다시 범죄를 저지르겠죠.
그러나 다른 환경이 주어지면 다른 선택을 할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 교화란 그런 의미라고 봅니다.
교화는 어렵지만 격리하고 관리해서 나이 먹고 늙어가면 범죄 역량이 쭉쭉 감소합니다.
이렇게 무력화된 사람에게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겠죠.
범죄자를 가혹하게 다루면 악한 인간들이 더 포악해지는게 진짜 문제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그걸 잘 보여주고 있고요.
범죄자라도 어느정도 잘 대해줘야하는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범죄자 전부 무기징역 보내거나 사형시키는건 그 어느나라도 불가능합니다.
이 말은, 범죄자는 무기징역급 범죄자가 아닌 한 결국 언젠가 세상에 반드시 나온다는 거지요.
100세 시대에 그들이 감옥간 기간보다 그들이 우리와 길거리에서 같이 걷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깁니다.
1. 사람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2.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다.
이 두가지 말은 일단 지금까지는 전혀 틀린 적이 없네요
아주 미세한 확률의 오판 문제를 말해주셨는데, 현실은 항상 양 극단 사이의 중간입니다.
완벽한 오판이 미세한 확률이라면, 반론의 여지 없이 완벽한 악행도 그리 확률이 높지 않아요.
대중이 관심없는 범죄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참작할 여지가 있는 복잡한 사건이 대부분입니다.
예를들자면 원한이 깊어 사람을 반죽음으로 만든 범죄자가 있지요.
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인생을 영원히 망친 원수가 있어서 그자를 반 장애인으로 만들어서 감옥갔다거나...이런 범죄가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살인까지했다면 무조건 감옥에 가겠죠
이런 사람도 범죄자니까 범죄자답게 다루는것이 옳을까요.
정말 확실하고 명확하며 감옥가는게 당연할 범죄자조차 어느정도 동정받을 사건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범죄자는 범죄자답게 다뤄야한다는 법을 만들면 이런걸 구분할 수조차 없습니다.
거기에 이런 사람도 악마처럼 다루면 감옥에서 악마가 되어 사회에 튀어나와 우리와 같이 살아야합니다.
이것말고도 문제가 많습니다.
인권 문제가 아닙니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실질적인 많은 문제를 흐리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길고 짧은 엇나가는 시기도 있죠.
그런 경우가 없는 사람이라도,
크고 작은 오해를 받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해요.
(저희 세대는 학창 시절만 봐도, 자신의 잘못과 무관하게 혹은 억울하게 벌을 받은 경험이 흔하고 흔할 겁니다.)
이런 모두를 비켜갈 수 있는 놀랍게 운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저는 확률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어렵게 변한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합당한 일일 수 있죠.
달라져도 기회조차 없다면, 누가 변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차갑고 차갑다면 그것도 문제일 거 같고요.
그러나 실수인 경우도 있고, 본성은 그대로 일지라도 학습으로 변화되는 친구도 있더군요.
늘 예외가 있다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