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는 참 명작입니다.
20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서 살아있네요.
이제 주홍글씨 사건이 진정되어 가니
우리 사회는 이를 복기해봐야 합니다.
1. 소년범의 범죄 이력은 공개되어야 하는가
현재의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으나
대중은 범죄 이력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는 법보다는 도덕이 우선이라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는 법보다는 도덕이 중요한 사회를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건마다 둘 중 하나를 취사선택하는 것일까요?
법과 도덕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은 인지 능력 상의 한계라서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2. 여느 사건과 달리 왜 이리 파장이 컸는가
학교폭력, 성인이 된 이후의 폭행 등의 사건으로
공식 은퇴하거나 사실상 은퇴한 이들이 없던 것도 아닌데
유독 이번 주홍글씨 사태는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소년 범죄 이력이 주요 원인인 듯 합니다.
만약 소년 범죄 이력이 법에 따라 보호되어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대중도 이를 몰랐다면
오직 성인 시절의 의혹에 대해서만 보도되었다면
다른 결과가 펼쳐졌을 수도 있습니다.
다수는 범죄에 포커싱을 했고
소수는 소년에 포커싱을 했습니다.
성숙한 사회라면 소수의 의견을 들어봐야 합니다.
소수는 그를 옹호했습니다.
근데 그는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닌
소년 시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대표하는
대명사로써 옹호된 것입니다.
만약 소년범이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면
소년범이 된 시점부터 사회로부터의 격리나
더 나아가 지구로부터의 격리를 곧바로 하면 됩니다.
그렇개 하지 않는 이유는 갱생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는 각자의 견해와 인식이 다르겠으나
0%는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 오류 가능성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지구에서의 추방을
폐지하거나 실질적으로 폐지한 것도
가능성이라는 키워드에서는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소수의 옹호의 목소리는
범죄 내역에 대한 옹호가 아닌
수많은 소년범 중 갱생하여
사회의 일원이 될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주홍글씨 사태는 2025년의 한국인들이
법과 도덕, 인권과 알 권리, 갱생과 격리 중
어느 곳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가는지 보여준
실증적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미래에 대한 논의입니다.
앞으로 또 다른 주홍글씨가 나타났을 때
소년 시절의 범죄에 대한 단죄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지
오직 성인 시절의 행동에 대해서만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지
건전한 토론을 통해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디 무슨 래퍼들이 그랬으면 아무도 관심 없었을거에요.
왜 수 많은 과거 속에서 반성하지 않고 이번 이슈에서 유난을 떠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그 소수의 옹호를 보내시는 분들은 밀양 건에서는 침묵을 지키신 것일까요?
조씨가 2찍 진행에서 얼굴을 비추던 사람이면 과연 옹호했을 수 있을까요?
제가 제일 어이없는건 이 조씨라는 인간은 은퇴 선언할 때조차
'주변 분들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라고만 했지
본인 때문에 고통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인간을 옹호해야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소년 시절이 아닌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폭행, 음주 운전 들의 사건 사고 이력이 존재하고요.
이런 인간 말고 다른 반성의 행동을 보여준 좋은 예시를 찾는게 좋지 않을까요?
과거 잘못을 늬우치고 반성하고, 봉사 활동하고, 좋은 행동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친 그런 사람을 말이죠.
아주 솔직히 말해서요. 전 이렇게 논란이 계속 되어서 조씨 과거가 들추어질 때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친했던 지인이 음주 사고 당하고 작고해서 굉장히 혐오하는데 이 양반같은 사람이 다시 스크린에서 안보였으면
하거든요.
한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간 사람과
숨기고 살아간 사람이 각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명확하게 비교하고 있는데요.
참고로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간 여인은
한 평생 지켜온 겸손과 선행으로 차츰 존중을 받았고
피해자도 말하죠, 그녀에게 복수할 생각이 없다고.
그 가슴의 주홍글씨가 대신해 주고 있으니까.
반면 죄를 숨기고 회피하려던 목사는
피해자의 증오에서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줄자가 편하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