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항상 여기에서 유래한다.”
오구라 기조(58) 교토대 교수가 최근(*2017년 기사입니다) 발간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모시는사람들)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조선시대 형성돼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적 전통에 대한 해석은 늘 ‘제 논에 물대기’였다. ‘유교 자본주의’가 한 예다. ‘동아시아 4마리 용’ 시절에는 한국인의 저력,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자랑스러움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 시절엔 혈연ㆍ지연ㆍ학연으로 짜고 치는 적폐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좋을 때는 ‘덕분’이고, 나쁠 때는 ‘탓’이다. 오구라 교수는 8년 동안 서울대에 머물면서 한국철학을 공부한 지한파 지식인. 이 책에는 오랜 공부와 관찰 끝에 그가 정리한 ‘한국, 한국인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명과 암, 두 개의 얼굴이다.
오구라 교수가 보기에 한국에서 성리학, 주자학은 그냥 옛 이론이 아니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고 “한국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자학”인 곳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오직 하나의 완전 무결한 도덕, ‘이(理)’로 모든 것이 수렴된다는 원칙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외교관 출신 그레고리 헨더슨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사회를 두고 자율적 부문 없이 그저 중앙정치권력으로 모든 게 휘감겨 돌아가는 소용돌이 사회라 평했다면, 오구라 교수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이(理)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의 이( ) 함유량, 곧 ‘도덕 함유량’에 따라 평가한다. 도덕의 영역과 무관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예외 없다. 뛰어난 운동선수나 가수라 해도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다. 누가 먼저 더 높은 도덕적인 위치를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올바르다ㆍ제대로ㆍ바람직하다와 같은 질서를 지향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대량으로 소비”되는 사회다. 이런 이( )의 사회는 이( )의 함유량으로 1등에서 꼴찌까지 한 줄로 사람들을 쭉 늘어 세울 수 있는, 철저하게 위계적인 사회다. 첫 만남 등에서 나이ㆍ지위ㆍ학력ㆍ가문ㆍ고향ㆍ부(富) 등 상대방의 이( )가 드러나는 지표를 단번에 파악하고 그에 맞게 잘 모시는 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동시에 극도로 반항적이며 혁명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오직 하나의 완전무결한 이( )만이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곳에서 권력 투쟁이란 곧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니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 된다. 상대의 도덕을 싸잡아 비난할수록 ‘훌륭한 선비’가 된다.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 등 그간 정권교체 때마다 ‘민족중흥’ ‘정의사회구현’ ‘보통사람의 시대’ ‘신한국 창조’ ‘제2건국’처럼 우리 정권이야 말로 이전 정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슬로건들이 연달아 태어나는 이유다.
오구라 교수가 보기에 이런 기질은 한국인에게 축복이자 저주다. 자신의 이( ) 함유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던져 넣는다. 자신의 출신 성분, 학력 등을 감안해 이 정도면 괜찮다며 적당히 체념하고 만족하고 사는 일본인, 혹은 서구인과 다르다. 한국인들은 나의 이( ) 함유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단적으로 일본의 천민집단 ‘부라쿠민’은 지금도 가끔 사회문제화되지만, 한국의 천민집단 ‘백정’은 이런 강렬한 상승욕구에 힘입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의 급성장은 이런 열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한국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살아가는 존재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정서라는 ‘한(恨)’이란 이 열망이 좌절됐을 때 생겨난다.
(중략)
첨단이라는 21세기 한국 사회도 변하지 않았을까. 탈민족주의, 세계화, 다문화주의에다 최근의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가치가 비록 조금씩이라 해도 퍼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구라 교수는 단호하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 구조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 )’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이다.” 누가 더 탈민족적이냐, 누가 더 다문화적이냐를 두고 경쟁을 벌일 뿐 경쟁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한국사회는 좋게 말해 다이내믹하고, 나쁘게 말해 투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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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씨에 대한 격론을 보니 찬반을 떠나 이게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실드글이 아닙니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그러하다는 것은, 안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인데, 바뀌는 걸 어떻게 저떻게 넘기는 사람으로 볼 수 있겠지요.
누가 더 맞다라고 볼 수는 없는, 그런 성향적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라고 개인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 탈레반 국가에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숨 막히는 사회죠.
1 아니면 2 밖에는 답이 없는 사회구요. 모든 이슈에 대해 긍정 / 부정 밖에는 반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양성이 거의 없는 전체주의 사회에 가깝습니다.
예전에도 읽었던 글인데.. 분석에는 동의하는 면이 많습니다.
주자학이 500년을 지배한 나라이고.. 명나라 멸망 이후 대략 250년은 정말 강렬했죠. 명나라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많았구요.
송시열 이후는 뭐 거의 끝판왕으로.. 진짜 소중화 그 자체가 되어버리니..
그로 인해 올바른 역사도 파악하기 힘들정도로..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극으로 달린 느낌이죠.
뭐 원래 대의명분이란 건 대충 끼워 맞추는 거니까요. "범죄와의 전쟁" 영화에서도 김판호를 치러가는 명분을 위해 최익현이 먼저 맞을 짓(?)을 하죠.
일본만 해도 귀족주의,정치세습 사회이고 한국은 전쟁이후 모든게 리셋되며 모두가 같이 출발했고, 미국의 경우도 자본주의적,인종적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죠.
한국도 자본주의를 추종하여 발전해왔기에 실질적으론 재벌가라는 귀족이 존재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이를 사회적 계급으로 인정하지 않고 평등사회로 포장합니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재벌가에서 깜빵이나 감사의 타겟이 되는건 국민적 여론을 반영한 양상일거고요. 근래에는 재벌가의 입대기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의라 일컬어지는 많은 요소가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지고있습니다. 군대,의료보험,납세(증여등 사유재산)등
나를 지배할수 있는건 자본권력이 아닌 도덕적 우위와 집단에 대한 사명을 실현할 존재...라는 공감대로 움직인다고 봐야합니다. 그 다음으로 존재하는 기준은 나이에 따른 연공서열, 존댓말, 한수 접어주는 등의 양상이 있습니다.(이건 전통적인 대가족 위계에 기반합니다-나이계급)
계급사회를 경험하지 못했고 모든게 리셋되어 같이 출발해온 입장에서
모두가 평등해야하고 돈이 많고적음은 고착된 계급이 아닌 국가운영을 위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계급투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이는 공산화를 막기위한 냉전시대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재벌은 국가를 위해서 더 큰 책임을 짊어진 역할이지 계급화가 아니라는 포장인거죠. 북한은 백두혈통-인민-비혁명대상이라는 계급사회이자 왕조입니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자본계급으로 고착화 되기 시작한건 IMF이후라고 볼수있는데, 그때 살아남은 재벌들은 이제 확고한 귀족의 위치라고 봐야하는거죠. 하지만 표면적으로 사회는 평등을 주장하고 정치인, 군대문제,연예인과 공인의 도덕성 문제등에서 그런 공동체 위에 설수있는 비교우위의 자격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요구하게 됩니다.
남에게 얼굴을 드러내는(영향력을 가지는) 공인은 그런 도덕적 우위를 가져야만 인정받을수 있다는 성향은
계급사회를 부정하는 심리가 근본에 있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리고 국민대다수는 본인을 중산층이라 믿고
하층민이 되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폐달질을 하는중이고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당위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지적하는 상황이라 할수있는거죠
공동체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권력을 갖고, 자본귀족인 재벌은 정치권력에 우호적으로 협조하며, 연예인등 대외적으로 알려진 인물들은 명성과 함께 정기적으로 타겟이 되며,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콜로세움과 처형식의 도파민을 통해 사회정의를 단속하는 상태..가 현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 군사정권 포함해 현재까지는 정치권력이 자본계급을 단속하며 길들여놓은 시점이긴 하지만 향후엔 모릅니다. 자본이 정치권력을 잠식하는 지점에 이미 와있을수있고요-마치 월가로비처럼, 이때문에 주식장의 성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죠. 그런 큰 계급적 알력은 잠재된 요소인 반면, 당장 눈에 보이는 연예인,공인들에 대한 단죄와 전시효과는 공동체가 가진 내면의 발현인것 분명합니다.
웃고 갑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나의 욕망이 다른 이의 욕망을 침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의식하며 살면 큰 문제 될까요
내용에 저는 동의가 안됩니다.
모든 걸 다 유교에 갖다 붙이더군요.
그런데 도덕이 그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거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그런 걸 볼 때마다 극혐하게 된 거 같네요.
정말 이 를 중시한다면
딴따라에게 적용받는 기준과
재벌 총수에게 적용받는 기준과
입법, 사법, 행정부 국가 고위직에게 적용받는 기준이 모두 같아야 할텐데
정작 기득권 카르텔의 그들에겐 관대하고
관심받는 딴따라
기득권 카르텔에 반대하는 정치인에겐 엄격한
그냥 기득권 기준으로 모난돌 때리는 사회입니다.
그게 계급사회건,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한국이 도덕적 규범을 중시하고 이 를 중시한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았음 합니다.
그냥 기득권 카르텔의 나라에서 시민들이 착하고 여론에 잘 선동되는 사회라고 하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시대 이후 우리 문화는 저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단군 시대 이래 근간을 형성하는 무속 문화를 기반으로, 오랜 환란과 재난으로 발생한 생존주의와 실용주의적 주자학에, 근대에 와서 일제가 심어 놓은 프로이센적 군사학과 대륙 성문법과 교육 제도에, 미국이 들여온 청교도적 도덕관념과 자유주의적 사회 경제 시스템이 섞여 있는 용광로에서,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까지 자생한… 세계사 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문화적 사상적 다양성이 만들어 졌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고찰도 없이 자기네가 아는 단면만 보고 판단하면 저런 소리가 나오는 거죠.
정작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처럼 권력 가진 자들은 그 법위에서 놀고 있는데, 그들을 퇴출시켜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죠.
저 글의 희생자는 노무현 대통령이지 조진웅 따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은 어리다고 학폭등 타인을 해치는(특히 인생을 좌우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나중에라도 x된다는 인생교훈을 주고 있는데요.
야만인이 보기에 도덕 떠지는게 신기했나 보네요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그 나라 특유의 생각과 도덕이 있는 거죠.
런데 정치가 도덕적 가치를 담지하지 않고 실용과 이득만 내세우면 그 도달점은 어딜까요. 트럼프?
아동불법촬영물 운영자가 징역 1년 6개월밖에 선고를 못 받는데, 죗값을 다 받았으니 출소 이후에 사회적으로 처벌하면 안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성착취물 운영자로 처벌받은 범죄자 중 미성년자도 있는데. 그들도 법적처벌받으면 뭐든 다 할 수 있겠네요? 미성년자 때 저지른 범죄는 성인이 되면 모두 리셋되는건가요?
평소에는 이런 글이 없다가 입니다.
"해당 사건은 강간 윤간을 한 후 빼앗을 돈이 없자 피해자 한 명을 인질로 잡아두고 다른 한 명을 끌고 성남에서 사당까지 이동해 60만원을 빼앗은 강도강간 사건이다. 인질로 잡힌 고통과 두려움, 자기 집까지 끌려가 돈을 찾아 바친 고통과 수치심, 두려움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했다."
기사내용중 일부 입니다.
저 인질과 윤간 당한 10대 여성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