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불법계엄령이 선포된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천리 절벽으로 추락할뻔 했던 한국 민주주의는 극적으로 회생했습니다. 극우세력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불법계엄이 성공했더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50년 이상 후퇴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2024년 12.3 계엄령이 1980년 선포되었던 5.17 계엄확대조치를 참조했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12.3 계엄령을 주도한 자가 12.12 쿠데타세력이 구축한 5공을 미화했기 때문입니다. 12.3 불법계엄 주도자는 5공 주도세력이 정치를 잘했다고 평가한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12.3 계엄령이 성공했더라면 5공식의 정치가 펼져졌을 것입니다.
과거 시행된 계엄령을 보면 계엄령에 의한 통치는 1년 남짓 지속되었습니다. <서울의 봄>을 군화발로 짓밟은 12.12 쿠데타세력은 자신들의 집권에 저해가 되는 정치인을 대거 체포, 구금했습니다. 정치인에게 내란혐의를 뒤집어씌워 극형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쿠데타세력에 적극 동조했습니다.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고자 수많은 공무원들을 해직시켰습니다. 군인들을 국회, 학교, 관공서에 주둔시켜 집회를 원천 금지시켰고 거리에서 불심검문을 자행했습니다. 시국을 비판하면 구속영장없이 연행하여 무참하게 인권을 유린했지요. 국민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소연할 곳도 없었습니다. 국민을 대변할 국회,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법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언론도 모두 독재자의 손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12. 12 쿠데타주도세력은 국회를 해산하고 자신들이 전권을 행사하는 초법적인 특별 기구를 창설하고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동시에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자 언론통폐합을 자행했습니다. 숱한 방송국과 신문사들을 폐지시켰습니다. 남은 언론에는 혹독한 검열을 가했습니다. 살아 남은 것은 쿠데타세력을 찬미하는 언론들이었습니다. 어용 언론들은 민주 집회에 대해 시민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고 대서특필하며 민주화운동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또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하자 폭도를 진압한 것이라고 두둔했지요. 신군부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완전 봉쇄한 상황에서 헌법개정안이 담긴 국민투표를 자행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5공화국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권력형비리를 자행했지요. 계엄령치하를 살았던 한 국민으로서 계엄령 통치때는 물론 계엄해제 이후에 자행되었던 독재정치하에서 하루하루 분노에 떨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2.3 계엄령이 성공했더라면 지난 1년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내란세력은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을 통제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완전 봉쇄했을 것입니다. 이 시기 내란세력이 계획했던 정치구상을 착착 실행했을 것입니다. 내란주도세력이 전화로 명단을 통보한 정치인들의 체포, 장관들에게 준 메모지와 전직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담긴 요인 제거 계획 등이 실행되었다면 이 나라는 피로 얼룩졌을 것입니다. 국회를 장악하고자 진짜 부정선거를 강행했겠지요. 자유로이 의견을 교환하는 인터넷은 철저하게 통제되었을 것입니다. 선진 정치의식을 드러내는 클리앙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이어 국회 해산, 정치인들의 구속, 집회 금지, 언론 통제, 거리에서 검문검색의 일상화, 대학 휴교 등이 잇달았을 것입니다.
또 내란세력의 입맛대로 개헌을 자행했을 것입니다. 6개월전에 실시되었던 대선투표에서도 내란에 관여했던 정당의 후보자가 40%를 상회하는 득표율을 올렸었지요. 삼엄한 통제하에 여론 조작이 더해졌더라면 개헌은 쉽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과거 국민투표가 그랬듯이 말이지요. 내란세력은 수단방법을 가리자 않고 여소야대정국을 여대야소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특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법들을 속속 통과시켰겠지요. 외교도 국익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사익에 포커스를 맞추었겠지요. 그러는 사이 국민들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하지요. 아찔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중은 계엄령을 저지했습니다. 12. 3 밤에 목숨걸고 국회로 달려갔던 분들이 한국을 구한 것입니다 . 이분들이 없었으면 한국은 지금 비상계엄하에 있었을 것입니다. 민중의 국회 집결이 군인들을 움찔하게 만들었습니다. 격렬하게 저항하며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할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계엄해제 가결 이후에도 국회에 남아 2차계엄을 저지했습니다.
줄기차게 내려온 민주주의운동도 12.3 계엄령을 막았습니다. 과거 독재정치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숱한 민주주의 수호 집회들의 축적 경험들이 12.3 민주화운동의 베이스에 깔려 있었습니다. 문화예술인의 민주주의 수호 노력도 국민들에게 영감을 불러넣어 주었지요. 2023년 11월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영화 <서울의 봄>은 쿠데타의 속살을 보여주었으며,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의 소설은 쿠데타세력의 학살에 맞선 소년의 용기를 보여주었지요. 이러한 한국민중의 민주주의 염원이 군인들에게 전해졌지요. 일부 군인들은 진정으로 계엄에 협력했습니다. 일부 특공대는 국회 지하로 가서 계엄해제를 막고자 본회의장의 전원을 내리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군인들은 내란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은 한국의 민중입니다. 12. 3 밤에 국회로 달려갔던 분들, 이후 엄동설한에 개최되었던 탄핵 집회에 동참한 시민들이 한국을 구한 것입니다 이분들이 한국 민주주의가 50년 이상 후퇴하는 것을 막은 민주주의를 지킨 등불이기도 합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한국 민중이 만행을 저지했습니다. 한국의 민중은 불굴의 용기로 계엄령을 저지하여 세계인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한 한국 시민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을만하지 않을까요. 정부에서도 이분들을 민주유공자로 포상하기를 기대합니다. 정부여당에서 12월 3일을 민주화운동일로 제정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분들이 명예를 기대하고 국회에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가에서 이분들의 명예를 기리는 것은 미래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12.3 계엄령이 성공했더라면 한국은 지금 칠흑같은 어둠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50년 이상 후퇴했을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민중이 피땀으로 일군 한국 민주주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젔을 것입니다. 인권의 유린은 물론 국제사회의 조롱도 감내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실로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12.3 불법계엄령을 저지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이 날을 기념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민중을 칭송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