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컴퓨터과학 교수였기에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했던 소년은
스탠퍼드에 진학 후 전설의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을 만들어 동료였던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구글을 창업합니다.
예전에도 구글에 관심 있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래리 페이지는 경영 일선에 항상 있던 것이 아니라
20대 초반에 에릭 슈미트에게 CEO를 맡깁니다.
사실 그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에릭 슈미트 또한 능력 있는 사업가였고, 또한 래리의 뜻에 반하는 무언가를 하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무섭게 성장하는 기업의 CEO로 에릭 슈미트가 투자자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면까지 감안하면 그의 역할은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구글은 기성 기업과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고,
이는 비엔지니어가 엔지니어를 관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래리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물론 끝까지 그런 생각을 이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CEO를 맡고 있지 않던 시절에도,
안드로이드를 5천만 달라에 인수한다는 결정을 내릴 정도로
구글의 방향을 제시하고 큰 틀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나 더 합니다.
바로 그가 CEO를 역임하고 있을 당시 딥마인드가 구글의 미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는 확신하며,
데미스 하사비스...제가 AI관련 글을 쓸 때 늘 '대사비스'라 부르는 딥마인드 창업자의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수용하며
인수 협상을 지휘-성사 시켰고, 그의 이러한 결정은 현재 구글이 AI의 선두에 있게 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구글 창업 당시에는 시대를 앞선 시야를 가지고, 직접 그 시대를 주도할 기술을 개발하였고,
그 이후로는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며 그 자리에서 미래를 쥘 기술을 파악하고,
안드로이드와 딥마인드를 인수 하며 오늘 날의 구글이 있게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기조는 구글 문화에 많은 부분 반영 되어,
대사비스는 구글에서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 껏 펼치게 됩니다.
구글이 기상관측 모델, 알파폴드 1,2,3을 만들게 된 배경 스토리를 들어 보면,
대사비스가 품은 뜻이 사업에 반드시 좋으라는 보장이 없어서,
미래를 기술로 대비하고자 하는 구글의 기업 문화가 아니었다면,
알파폴드는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래리 페이지가 만들어 놓은 이 구글의 엔지니어 기반의 기업 문화는
과거에도.. 지금도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나 실은 구체적인 실무를 맡지 않을 뿐
구글 이사회를 이끌며 구글의 미래 전략을 이끌어 가던 래리페이지.
그렇다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긴 롱텀의 관점에서 가져가던 그는
AI를 이용한 설계 분야에 다시 뛰어듭니다.
사실 구글과 같은 기업은 다시 나타나기 힘들 정도의 운과 때가 맞아야 하므로,
무리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기 보다는 AI 시대에 자신의 몫을 일부 하려는 정도로
보이지만... 이런 행보는 눈에 띄는 것이 아니어서
전면에 드러나진 않으니 지금도 조용히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