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에도 본인 돈은 쓰지 않는 풍족한 인생이였겠지만
내란에 성공했다면 그 이상의 베네핏을 누리며 떵떵 거리며 살았을 겁니다.
아마 건강하게 백세 백십세를 넘겼을지도 모르지요.
그가 누리게 될 풍족한 삶은 과연 누구의 피와 살이 갈려 나가 이루어 지겠습니까?
또 얼마 있지 않으면 법조인들이 나와서 한덕수가 받은 구형의 법리적 정당성을 달달 읊어 주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왜 항상 민주 진보 정치인들은 그 법조 이론의 최대치가 적용되고
기득권 카르텔들은 법조 이론의 최소치만 적용 될까요.
두 개 다 같은 이론인데
왜 최소치와 최대치의 격차가 이리도 큽니까?
성공 했으면 백세 천세 떵떵거리고 살 인간인데 왜 실패 했을 때 90세 노년의 위험을 걱정 해줍니까?
사회 정의가 바로서지 않고 부조리가 사람들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갈 때 사람들은 공적 정의 보다는 사적 정의를 추구하고 염원하게 됩니다.
자꾸 시민들의 감정을 구석으로 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면 윤석열 구형이나 선고도 기대할 게 못되게 되네요.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