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흉폭한 귀신이 딱히 많지 않은 이유







산중희호도(山中戱虎圖), 수묵담채, 87.3x229.2cm, 조선 말기
이 그림에 그려진 호랑이는 총 78마리이며
점박이 맹수는 사실 표범인데 한반도엔 호랑이 표범 둘 다 살았고 (한국표범 또는 아무르 표범)
섞여살아서 조상님들은 줄무늬가 수컷 호랑이, 점박이가 암컷 호랑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 그림은 상상도입니다.
호랑이는 사자와 달리 개인생활을 하는 맹수고 표범과도 당연히 영역이 달라 어울릴리가 없죠
무엇보다 저걸 눈으로 보고 그린다는거는 말이 안됩니다.
그러나 조상님들은 도대체 이 끝없이 죽여도 죽여도 어디선가 나와 사람을 물어가는 호랑이라는 맹수가 조선 팔도 천지에 가득하고
저런식으로 모여 살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심지어 호랑이가 많이 사라진 19세기 인데두요
구한말의조선을 방문한 서양인 누군가가 중국인들에게 듣기로
1년의 여섯 달은 조선 사람이 호랑이를 사냥하러 다니고, 남은 여섯 달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하러 다닌다" ' 웃으며
하는 말을 들은건 적었는데
이렇게 살면 사는 것 자체가 빨리빨리 살수밖에 없음요.
일본은 지진 화산 쓰나미 지만
조선은 호환입니다.
심지어 모든 호랑이 종 중 가장 큰 시베리아 호랑이.
1900년대 초에 태어나셨던 작고하신 할아버지가 어릴때 동무하던 친구들 중에 호랑이 물려간 친구가 있다는 말을 하시던게 기억나네요







호랑이 표범에다가
스라소니까지..

그 먼 길 왕복만 해도 담력 체력이 이미 합격인데요 ㅎㅎ
개멋있네요
SUV 만했을까요?
/Vollago
즉 우리가 호랑이라고 부르는 건 범이고
호랑이라는 건 그런 맹수들을 가리키는 말이라던데
맹수 자체가 많았던 걸까요
잔인하고 기괴한 일본인들이네요...
산골 사람들의 목숨을 빼았던 짐승들입니다.
여기에 깃들어 사는 산짐승 수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많은 개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라는 먹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어떤 근거로 나무가 없었다고 하시는 지 모르겠으나, 화목으로 주로 사용하기는 했으나 정부에서 간섭도 했고 인구 증가 폭이 그리 크지 않았던 시기는 별문제가 안됐죠.
인구 증가 폭이 컸던 후반기는 화목 수요로 인해서 문제가 크게 발생한거구요.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는 먹이감이 줄어들면 그 수가 자연히 감소합니다.
인간은 군집생활을 하기에 다른 먹이감보다 사냥이 쉬운거도 아니구요. 물론 무기도 사용하구요.
조선시대 나무 풍성했습니다. 임진왜란때까지만 해도 풍성했다고 기록이 있는데요.
조선후기부터 황폐화가 되기 시작했다는데 그건 인위적인 이유라고 나옵니다. 조선시대 전체를 아우르면 안된다고 봅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먹으면서 번식했다는건 근거가 없어 보여요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7209
나머지 반은 사람이 호랑이를 사냥했다고...하더군요;
엉켜들었으나, 주변 사람을 의식해서,
넘어뜨리기만 하고, 도망가던 영상이
있더군요.
조선시대 호랑이 사냥은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며, 두꺼운 가죽옷을 입고서,
긴창을 들고, 단독생활하는
호랑이를 사냥했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