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작성한 가벼운 웹소설 풍 글이니, AI 글이 불편하신 분은 읽지 않으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1월의 늦가을 밤. 강남구 삼성동, 화려한 빌딩 숲 사이 뒷골목은 묘하게 스산했다.
[국민은행] 11월 대출 이자 2,450,000원이 미납되었습니다.
휴대폰 화면 위로 뜬 알림 메시지가 강민수의 동공을 찔렀다. 3년 전, ‘퇴직금 올인’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야심 차게 오픈한 ‘깐부치킨 삼성점’. 하지만 지금 남은 건 튀김기 기름때처럼 눌어붙은 3억 5천만 원의 빚뿐이었다.
“하… 이번 달도 마이너스네.”
민수는 텅 빈 홀을 둘러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삼성동 한복판, 임대료는 살인적이고 경쟁은 전쟁터였다. 맛? 자신 있었다. 서비스? 간도 쓸개도 빼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 지 오래였다.
‘오늘도 공치면, 다음 달엔 정말 가게를 내놔야 한다.’
그때였다.
따르릉-.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 예약 전화일까? 아니면 또 빚 독촉일까. 민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깐부치킨 삼성점입니다.”
-사장님 맞으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하고 정중했다. 기계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감정이 배제된 톤.
“네, 제가 사장 강민수입니다만.”
-오늘 저녁 7시, 홀 전체 대관하겠습니다. 인원은 3명입니다.
3명인데 전체 대관? 민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장난 전화인가 싶었지만, 상대방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손님, 저희 가게가 50석 규모입니다. 3분이서 대관하시기에는 대관료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돈은 상관없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보안이 최우선입니다. 가게 내 CCTV는 전원을 꺼주시고, 서빙은 사장님이 직접 하셔야 합니다. 다른 직원은 모두 퇴근시키십시오. 입금은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대관료 천만 원이면 되겠습니까?
천만 원.
민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한 달 순수익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의심보다는 본능이 먼저 반응했다.
“계좌번호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입금 알림이 울렸다.
[입금] 10,000,000원 (법인).
보낸 사람 이름이 없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거, 혹시 조폭들 회합이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빚쟁이에게 쫓기나 조폭에게 맞으나 매한가지다. 민수는 서둘러 아르바이트생을 조기 퇴근시키고 홀을 정리했다.
시계바늘이 정확히 7시를 가리키는 순간.
끼이익-!
가게 앞 좁은 도로에 검은색 세단 세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제네시스 G90 두 대, 그리고 그 사이를 호위하는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
차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도열했다. 빗속을 뚫고 가게 문이 열렸다. 딸랑, 하는 경쾌한 종소리가 오늘따라 장송곡처럼 무겁게 들렸다.
첫 번째 남자. 은테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지성이 번뜩이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두 번째 남자. 단단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민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대한민국 재계 1, 2위가 내 가게에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이게 꿈인가? 몰래카메라인가?
하지만 진짜 충격은 마지막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가죽 재킷. 백발에 가까운 머리카락.
“Hello.”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이었다.
‘미친… 이게 무슨 조합이야?’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세 거인이, 고작 15평 남짓한 동네 치킨집에 모였다. 민수는 쟁반을 든 손이 떨리지 않도록 꽉 쥐었다. 그들은 구석진 창가 자리에 앉았다.
경호원들이 가게 입구를 철통같이 막아섰고, 가게 안에는 민수와 세 거인만이 남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웅성웅성…
이상했다. 그들의 입 모양은 분명 움직이고 있는데, 민수의 귀에는 마치 물속에 잠긴 듯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1급 보안 사항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 청각에 이상이 생긴 걸까?
그때였다.
[띵-!]
허공에 투명한 푸른색 창이 떠올랐다. 민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재용 회장도, 젠슨 황도 그 창을 보지 못한 눈치였다. 오직 민수의 눈앞에만 선명한 텍스트가 타이핑되듯 나타났다.
[히든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명: 세 거인의 입맛을 만족시키십시오.]
[설명: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세 명의 거인이 극비 회동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수조 원의 가치를 지닌 1급 정보입니다. 하지만 보안 등급이 너무 높아 당신의 레벨로는 청취가 불가능합니다.]
[해제 조건: 그들이 원하는 완벽한 '소맥'을 제조하여 만족도를 100%로 끌어올리십시오.]
[성공 보상: 청각 차단 해제 및 S급 정보 '엔비디아 차세대 칩 독점 공급 계약' 미리보기]
[실패 시 패널티: 가게 폐업 및 영구적인 가난.]
민수는 멍하니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게임? 소설? 아니, 이건 현실이다. 눈앞에 있는 이재용 회장이 메뉴판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 상황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사장님.”
정의선 회장이 손을 들었다. 민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다가갔다.
“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 가장 한국적인 술을 대접하고 싶은데. 젠슨이 소맥(Somaek)을 궁금해하더군요.”
정 회장의 눈빛이 민수를 꿰뚫듯 응시했다.
“단순히 섞는 게 아니라, 황금비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해서, 술맛이 분위기를 깨면 곤란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그 순간, 상태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번쩍였다.
[상세 레시피 가이드 활성화]
- 타겟: 엔비디아 젠슨 황
- 선호 스타일: 탄산의 청량감과 알코올의 단맛이 조화된 '테슬라(테라+참이슬)'
- 필수 조건 1: 소주와 맥주의 비율 정확히 3:7
- 필수 조건 2: 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 두께 2cm 유지
- 필수 조건 3: 숟가락 스냅을 이용한 탄산 폭발(Tornado) 시전
민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실패하면 폐업. 성공하면 인생 역전이다. 3년 동안 닭을 튀기며 수천 번도 넘게 말아본 소맥이다. 하지만 상대는 젠슨 황이다.
“맡겨주십시오.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한 소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민수는 냉장고에서 가장 차가운 테라와 참이슬을 꺼냈다. 잔은 미리 냉동실에 넣어두어 표면에 하얗게 성에가 낀 상태였다.
세 거인의 시선이 민수의 손끝에 집중되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탁.
소주잔 두 개를 겹쳐 맥주잔 안에 넣는 겉멋 든 퍼포먼스는 배제했다. 이건 쇼가 아니라 비즈니스다.
민수는 눈대중이 아닌, 손의 감각으로 소주를 따랐다. 정확히 잔의 30%.
이어서 맥주를 붓는다. 거품이 너무 많이 생기지 않도록 잔을 45도로 기울여 벽을 타고 흐르게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수직으로 세워 거품 층을 만든다.
치이익-.
미세한 탄산이 터지는 소리가 빗소리와 섞였다. 거품의 두께, 정확히 2cm.
마지막 단계.
민수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잔의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캉-!
청명한 파열음과 함께 하얀 거품이 회오리치며 솟구쳤다. 맥주와 소주가 분자 단위로 섞이는 찰나의 순간. 민수는 지체 없이 젠슨 황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드시죠. 한국의 기술력입니다.”
젠슨 황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회오리가 아직 잔잔하게 남아있는 황금빛 액체. 그가 망설임 없이 잔을 비웠다.
꿀꺽, 꿀꺽, 꿀꺽.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도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봤다. 민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젠슨 황이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으며 눈을 크게 떴다.
“Fantastic.”
[띵-!]
[조건 달성! 대상의 만족도 100%.]
[보안 등급이 해제됩니다. 지금부터 '세 거인의 대화'가 들립니다.]
마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뺀 것처럼, 세상의 소리가 선명해졌다. 웅웅거리던 소음이 사라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고막에 박혔다.
“젠슨, 그래서 이번 H200 칩 물량 말입니다.”
이재용 회장이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본론을 꺼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TSMC 쪽 라인이 꽉 찼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우리 삼성 파운드리 3나노 공정 수율, 지난달에 85% 넘겼습니다.”
“오, 제이(Jay). 수율 데이터는 봤어요. 하지만 퀄리티 테스트가 남았잖아요.”
젠슨 황이 젓가락으로 치킨 무를 집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죠. 현대차의 자율주행 데이터 센터, 그리고 삼성의 HBM3E 독점 공급.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해결된다면, 나는 차세대 GPU 물량의 40%를 한국으로 돌릴 생각입니다.”
민수는 행주로 테이블을 닦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GPU 물량 40%? 이건 단순히 주가가 오르는 수준이 아니다. 한국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뒤집히는 뉴스다.
“정 회장, 현대차 쪽 서버 증설 계획은 확정된 겁니까?” 젠슨 황이 물었다.
정의선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부지 선정 끝났습니다. 엔비디아 칩만 들어오면, 내년 상반기에 테슬라 FSD를 뛰어넘는 자율주행 레벨 4 상용화 발표할 겁니다.”
[S급 정보 습득!]
1. 삼성전자, 엔비디아와 HBM3E 독점 공급 계약 체결 임박.
2. 현대차, 엔비디아 기반 자율주행 레벨 4 상용화 선언 예정.
3. 공식 발표 시기: 내일 오전 9시 개장 직전.
민수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내일 오전 9시. 지금은 저녁 7시 15분.
아직 장은 닫혀 있지만, 시간외 거래나 미국 주식, 아니면 내일 시초가 공략. 방법은 많았다. 아니, 당장 선물 옵션을 건드려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던 그때, 상태창이 다시 한번 번쩍였다.
[연계 퀘스트 발생!]
[퀘스트 명: 투자의 귀재]
[내용: 10분 내에 가용한 모든 자금을 동원하여 관련 주식을 매수하십시오.]
[보상: 주식 매수 자금 대출 (한도: 1억 원, 무이자, 24시간 내 상환 조건)]
미쳤다. 시스템이 돈까지 빌려준다.
민수는 주방으로 뒷걸음질 쳤다.
“치, 치킨 금방 튀겨 드리겠습니다!”
주방으로 들어온 민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증권 앱을 켰다.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지만, 시스템이 제공한 ‘히든 계좌’에는 정확히 1억 원이 꽂혀 있었다.
‘삼성전자는 너무 무거워. 수익률이 드라마틱하지 않아. 현대차도 마찬가지고.’
그때 젠슨 황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 그리고 이번 계약의 핵심 부품인 ‘냉각 시스템’ 말인데… 한국 중소기업 중에 ‘케이쿨링’이라는 곳 기술력이 꽤 좋더군요. 이번에 벤더로 등록할 생각입니다.”
케이쿨링.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다. 민수는 미친 듯이 검색창을 두드렸다.
[케이쿨링] 시가총액 800억. 코스닥 상장사. 현재 주가 4,500원. 거래량 바닥.
‘이거다.’
엔비디아 벤더 등록? 이건 점상(점 찍고 상한가) 3번은 기본으로 갈 재료다.
민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1억 원. 전액 매수.
시간외 단일가 거래가 끝나기 직전이었다. 매도 물량이 조금 남아 있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보유 종목: 케이쿨링 / 매수금액: 100,000,000원 / 평단가: 4,520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치킨 반죽을 묻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기름 솥에 닭을 넣는 순간,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젠슨 황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아침 8시, 엠바고 풀고 보도자료 배포하죠. 한국 시장이 발칵 뒤집히겠군요.”
민수는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내일 아침, 대한민국 주식 시장은 피바다가 되겠지만, 나의 계좌는 불기둥을 뿜을 것이다.
그때, 이재용 회장이 주방 쪽을 보며 소리쳤다.
“사장님! 여기 소맥 비율이 기가 막히네요. 한 잔 더 부탁합니다. 이번엔 ‘구름처럼’ 비율로!”
[띵-!]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퀘스트 명: 재벌 총수의 까다로운 취향]
[성공 보상: ??? (히든 정보 오픈)]
민수는 튀김 젓가락을 내려놓고 비장하게 웃었다.
빚더미 인생? 이제 안녕이다.
나는 오늘부터, 치킨 튀기는 재벌이 된다.
“네, 회장님! 지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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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지며 통유리창을 때렸다. 빗소리는 마치 거대한 튀김기 속에 세상이 잠긴 듯 소란스러웠지만, 가게 안은 묘한 적막과 달그락거리는 얼음 소리만이 감돌았다.
민수는 숨을 죽인 채, 자신이 제조한 두 번째 작품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구름처럼(Cloud-Like).’
소주와 맥주를 1대 9의 극단적인 비율로 섞되, 맥주를 따를 때 낙차를 이용해 미세한 기포를 극한으로 생성시킨다. 그리고 그 위에 살얼음 낀 슬러시 소주를 티스푼으로 조심스레 얹는다. 입술에 닿는 순간 구름처럼 포근한 거품이 먼저 느껴지고, 목 넘김 뒤에야 알코올의 단맛이 치고 올라오는 마성의 비율.
“이거… 모양새부터 다르군.”
이재용 회장이 잔을 들어 올리며 감탄했다. 하얀 거품 층이 조명 아래서 진주처럼 빛났다.
“건배하시죠. 우리의 파트너십을 위하여.”
이 회장의 제안에 젠슨 황과 정의선 회장이 잔을 부딪쳤다. 쨍- 하는 맑은 소리가 신호탄이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잔을 비웠다.
꿀꺽.
목울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정적.
“캬아…!”
이재용 회장의 입에서 진심 어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평소의 신사적이고 절제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었다.
“이거 뭐지? 술이 아니라 크림을 마시는 것 같은데? 정 회장, 이거 맛봤어?”
“허, 거참. 사장님 기술이 보통이 아니네. 알코올 냄새가 하나도 안 납니다.”
정의선 회장 역시 빈 잔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젠슨 황은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우더니, 빈 잔을 민수 쪽으로 내밀었다.
“One more.”
[띵-!]
[히든 효과 발동: ‘무장해제’]
[설명: 완벽한 비율의 소맥은 뇌의 전두엽을 마비시켜 이성을 허물고 본심을 끌어냅니다. 대상들의 ‘사회적 가면’이 벗겨집니다.]
민수는 상태창을 보며 안도했다. 분위기는 최고조다. 이대로 기분 좋게 취해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내일 아침 ‘케이쿨링’ 주식은 상한가로 직행한다. 내 인생에도 볕 뜰 날이 오는 것이다.
하지만 민수는 간과하고 있었다.
사회적 가면이 벗겨진다는 건, 그들이 억누르고 있던 ‘진짜 감정’이 튀어나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제의 발단은 세 번째 ‘구름처럼’이 돌았을 때였다.
“근데 형님.”
정의선 회장이 붉어진 얼굴로 이재용 회장을 불렀다. 넥타이는 이미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셔츠 단추도 두 개쯤 풀린 상태였다.
“왜, 의선이.”
“아까 반도체 수율 이야기하다 생각난 건데… 사실 말이야, 그때 그 땅. 삼성동 한전 부지 말입니다.”
민수의 귀가 번쩍 뜨였다. 2014년, 대한민국 재계를 뒤흔들었던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입찰 사건. 감정가 3조 원짜리 땅을 현대차 그룹이 10조 5,500억 원에 낙찰받아 승리했던, 단군 이래 최대의 베팅.
이재용 회장의 잔을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취기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났다.
“그게 뭐.”
“솔직히 말해봐요. 그때 형님네, 얼마 썼습니까? 우리가 10조 지를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야, 정 의선. 너네가 미친 척하고 지를 줄 누가 알았겠냐? 우리가 가져갔어야 했어. 거기가 원래 삼성타운 확장의 핵심이었다고.”
이재용 회장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우리가 그거 놓치고 서초 사옥에서 얼마나 답답하게 지내는 줄 알아? 너네는 양재동도 있으면서 욕심도 많지.”
순간 정의선 회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형님, 아직도 그 이야기입니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죠. 돈 더 낸 놈이 먹는 게 자본주의 아닙니까. 그러는 형님은!”
정 회장이 테이블을 쾅 내려쳤다. 튀김 바구니가 들썩였다.
“그때 우리 그룹 순환출자 고리 끊으려고 엘리엇이랑 싸울 때, 내가 지분 방어 좀 해달라고 했잖아! 그때 쌩하니 거절한 게 누군데!”
“도와주려고 했지! 이사회에서 반대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리고 자네 선대 회장님께서 내 제안 먼저 거절하신 거 기억 안 나?”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었다. 시베리아 허허벌판 같은 한기가 15평 치킨집을 덮쳤다. 재계 서열 1위와 2위가 초등학생처럼 옛날이야기를 꺼내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Hey, hey!”
그때, 상황 파악이 덜 된 젠슨 황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Jay, Euisun. Stop it. What is going on?”
젠슨은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감지했다. 그는 재킷을 챙겨 주섬주섬 일어났다.
“우리는 미래(Future)를 이야기하러 왔어. 과거 타령(History lesson)은 지루해(Boring). 난 갈 거야. 계약 이야기는 나중에 맨정신으로 해.”
덜컥.
민수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젠슨이 나간다? 계약이 미뤄진다? 그럼 내일 아침 엠바고 해제는?
‘케이쿨링’ 주식은?
내가 빚까지 내서 박은 1억 원은?!
“안 돼…!”
민수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정의선 회장이 젠슨 황의 옷깃을 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 재킷 뒷덜미를 낚아챘다.
“Sit down! 앉아, 이 양반아!”
정 회장이 영어로 쏘아붙였다. 그의 눈은 이제 이재용이 아닌 젠슨 황을 향해 이글거리고 있었다.
“너도 문제야, 젠슨. 그래픽 카드 가격 그만 좀 올려. 우리가 호구야? 어?”
“What?”
“자동차에 들어가는 칩셋 가격, 작년보다 30% 올렸지? 그러면서 공급은 찔끔찔끔 주고. 내가 치사해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너네 진짜 그러는 거 아니야. 우리가 테슬라 잡으려고 얼마나 피똥 싸고 있는지 알아?”
젠슨 황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It’s simple supply and demand! (단순한 수요와 공급 문제야!) 기술이 없으면 돈이라도 더 내야지!”
“뭐? 기술이 없어? 야! 우리 수소차 기술력 무시해? 니네 GPU, 전기 없으면 고철 덩어리잖아! 전기 누가 만드는데!”
아수라장이었다.
이재용 회장은 “그러게 적당히 좀 받아먹지…”라며 혀를 차고 있었고, 정의선 회장은 젠슨 황에게 삿대질을 하고, 젠슨 황은 “Crazy Koreans!”를 외치며 나가려 발버둥 쳤다.
민수는 튀김기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까다로운 소맥 비율 맞추느라 진땀을 뺐는데, 돌아온 건 세계 3대 기업 총수들의 포장마차 진흙탕 싸움이라니.
이러다 테이블이라도 엎으면 대관료고 뭐고 다 끝장이다. 아니, 내일 아침 내 계좌가 휴지 조각이 된다.
‘막아야 한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경호원들이 밖을 지키고 있지만, 안에서 회장들이 싸우는 걸 말릴 수는 없다. 끼어들었다가 뺨이라도 맞으면 산재 처리는 될까?
그때, 시스템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눈앞에 나타났다.
[긴급 돌발 퀘스트 발생!]
[상황: 세 거인의 감정 조절 실패]
[원인: 과도한 알코올 섭취 및 묵은 감정의 폭발]
[경고: 이대로 파국을 맞을 경우, ‘엔비디아 독점 공급 계약’은 무산되며 당신의 주식은 -30% 하한가를 기록합니다.]
민수의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렸다. 하한가. 그 단어가 뇌리에 박히자 공포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안 돼, 절대 안 돼.
[해결책: 알코올을 통한 원시적 유대감 형성]
[퀘스트 명: 세 거인의 러브샷(Love Shot)]
[조건: 세 사람이 서로 팔을 엮고 동시에 술을 마시게 하여 ‘도원결의’ 버프를 활성화하십시오.]
[제한 시간: 3분]
러브샷?
지금 서로 멱살 잡기 직전인 아저씨 셋을 데리고 러브샷을 하라고?
시스템이 미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민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3분 뒤면 젠슨 황은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갈 것이고, 내 인생은 다시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민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래, 쪽팔림은 한순간이지만 가난은 영원하다.’
그는 냉장고 문을 거칠게 열었다.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주 세 병을 꺼냈다. 병목에는 살얼음이 하얗게 껴 있었다.
민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장님! 여기 계산해! 기분 잡쳤어!”
정의선 회장이 카드를 꺼내 들며 소리쳤다. 젠슨 황은 이미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민수는 대답 대신, 쾅!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소주병 세 개를 내려놓았다.
쾅-!
엄청난 굉음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민수에게 쏠렸다. 민수는 깐부치킨 유니폼 앞치마를 고쳐 매며, 여태껏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던 ‘갑’의 눈빛을 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가게의 주인은 그들이 아니라 나다.
“못 나갑니다.”
민수의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What did he say?” 젠슨 황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계산 못 해 드립니다. 그리고 손님, 아직 주문하신 코스가 안 끝났습니다.”
민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소주병 뚜껑을 따기 시작했다. 따닥, 따닥, 따닥. 경쾌한 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우리 가겠다잖아!”
“이재용 회장님, 정의선 회장님. 그리고 젠슨 황 CEO님.”
민수는 세 사람을 차례로 노려봤다.
“대한민국 재계를 이끄시는 분들이, 고작 술 몇 잔에 삐쳐서 이렇게 헤어지십니까? 삼성동 땅? GPU 가격? 그게 지금 여기서 멱살 잡고 싸울 일입니까? 밖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민수의 일갈에 이재용 회장이 흠칫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 모습이 찍히기라도 하면 주가 폭락은 물론이고 망신살이 뻗칠 일이다.
“비즈니스 하러 오셨다면서요. 수조 원짜리 계약하러 오셨다면서요. 그런데 고작 과거 타령이나 하면서 판을 깨시겠다? 저는 못 봅니다. 제가 만든 치킨과 술이 아까워서라도 못 보냅니다.”
민수는 빈 잔 세 개에 소주를 콸콸 따랐다. 섞지 않은, 순도 100%의 깡소주였다.
“한국에는 오래된 전통이 있습니다. 싸운 놈들끼리 화해할 때, 그리고 생사고락을 함께할 동지를 만들 때 하는 의식이죠.”
민수는 잔 세 개를 테이블 중앙으로 밀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 아시죠?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했던 거. 오늘 세 분이 여기서 그걸 하셔야겠습니다.”
“도, 도원결의?”
이재용 회장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네. 러브샷입니다.”
“러브… 뭐?” 정의선 회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세 분이 팔을 엮고, 이 잔을 한 번에 비우십시오. 그거 못 하시면 계산 안 해 드립니다. 문도 안 열어 드릴 겁니다. 경찰 부르시든가요. 어차피 경찰 오면 내일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나겠네요. ‘재벌 총수들, 치킨집에서 난동 피우다 연행’이라고.”
이건 협박이었다.
일개 치킨집 사장이 글로벌 기업 총수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셈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빗소리만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피식.
먼저 웃음을 터뜨린 건 이재용 회장이었다.
“하하… 허허허. 이거 참. 살다 살다 치킨집 사장님한테 훈계도 들어보고. 내가 졌습니다. 정 회장, 우리 너무 추태 부린 것 같지 않아?”
정의선 회장도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형님이 먼저 땅 이야기 꺼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쪽팔리게 진짜.”
“젠슨, Come here.”
이재용이 손짓하자 젠슨 황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민수는 빠르게 통역 앱을 켜서 들이밀었다.
[이거 마시면 우리는 형제(Brother)가 된다. 그리고 할인해 주겠다.]
‘형제’라는 단어보다 ‘할인’이라는 말에 반응한 건지, 아니면 분위기에 압도된 건지 젠슨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Okay. K-Culture is very… intense.”
민수는 즉시 세 사람의 위치를 잡아주었다.
“자, 회장님은 오른팔을 이쪽으로. 정 회장님은 왼팔을 저쪽으로. 젠슨 님은 두 분 팔 사이로 팔을 넣으세요. 네, 꽈배기처럼 꼬으셔야 합니다.”
쉰 넘은 남자 셋이, 그것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인들이 좁은 치킨집 테이블 위에서 서로의 팔을 엮었다. 꼴사납고 기괴했지만, 묘하게 비장했다.
“자, 구호는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면 ‘깐부다’ 하시는 겁니다.”
“깐부? 오징어 게임?” 젠슨이 아는 단어가 나오자 눈을 반짝였다.
“준비되셨습니까?”
세 사람은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미움도, 경쟁심도 있었지만, 같은 위치에 있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고독감과 동질감도 있었다.
“우리는!”
민수가 외쳤다.
“깐부다!!”
세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들은 엮인 팔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젖혀 소주를 털어 넣었다.
꿀꺽.
식도가 타들어가지만, 동시에 가슴 속 응어리도 함께 타버리는 듯한 짜릿함.
탁.
세 개의 빈 잔이 동시에 테이블에 내려졌다.
[띵-!]
[조건 달성! 퀘스트 ‘세 거인의 러브샷’ 완료.]
[보상: 세 사람의 호감도가 ‘신뢰’ 단계로 상승합니다.]
[특수 효과 발동: ‘취중진담’ 상태가 ‘비즈니스 결속’ 상태로 전환됩니다.]
“크하아!”
정의선 회장이 입가를 닦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형님, 아까 제가 말이 심했습니다. 땅 좀 뺏긴 게 대수입니까. 다음에 더 좋은 거 사면 되죠.”
“아니야, 의선아. 내가 속이 좁았어. 그때 도와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젠슨 황도 덩달아 웃으며 그들의 어깨를 감쌌다.
“Hey guys, so about the deal… I will give you a discount. Just 5%. Only for my brothers.”
“5%? 젠슨, 이 친구 화끈하네! 좋았어, 그럼 계약서 다시 씁시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싸늘했던 공기는 사라지고, 마치 명절날 친척들이 모인 것처럼 화기애애해졌다. 민수는 그 모습을 보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살았다… 그리고 내 주식도 살았다.’
그때, 민수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 완료 보상 지급]
[보상: 3대 기업 총수의 개인 연락처 및 ‘핫라인’ 개설]
[추가 보상: 깐부치킨 삼성점, ‘글로벌 3사 공식 회식 장소’ 지정 버프 획득 (매출 500% 상승)]
그리고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케이쿨링] 시간외 거래 폭등 중. 현재가 5,200원 (+15%).
민수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냅킨을 집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이 분위기를 몰아 완벽한 마무리를 하는 것뿐이었다.
“사장님! 여기 안주 다 떨어졌는데, 서비스 좀 없어?”
이재용 회장의 기분 좋은 외침에, 민수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나갑니다! 이번엔 ‘골드 윙’입니다!”
비 내리는 삼성동의 밤, 작은 치킨집 안에서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의 부(富)가 다시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맥을 말고 닭을 튀기는 강민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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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갔다. 방금 튀겨낸 닭 날개 위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깐부치킨의 숨은 병기, ‘골드 윙’입니다.”
민수가 쟁반을 내려놓는 순간, 간장 베이스의 짭조름한 향과 알싸한 마늘 향이 훅 끼쳤다. 황금빛 튀김옷 위에 얇게 저민 청양고추 토핑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오… 냄새가 아주 기가 막히는구먼.”
방금 전까지 서로 멱살을 잡을 뻔했던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 거인의 표정은 온화했다. ‘도원결의 러브샷’의 효과는 강력했다. 그들은 이제 비즈니스 파트너를 넘어, 동네 호프집에서 회포를 푸는 30년 지기 친구들처럼 보였다.
민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서려 했다. 이제 이 분위기 그대로 굳히기에 들어가면 된다. 치킨을 뜯고, 계약서에 사인하고, 내일 아침 내 주식이 떡상하는 시나리오. 완벽했다.
지잉-. 지잉-.
그때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젠슨 황의 스마트폰이 묵직하게 진동했다. 빗소리에 묻힐 법도 했지만, 스마트폰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유난히 서늘했다.
액정 위에 뜬 발신자 이름.
[Elon]
순간, 가게 안의 공기가 쇳물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하던 온기는 순식간에 증발했다.
젠슨 황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Damn it. 이 양반, 귀신같네. 내가 한국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받지 마. 술맛 떨어져.”
정의선 회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이재용 회장 역시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닭 날개를 내려놓았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수장, 일론 머스크.
엔비디아와는 AI 칩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였고, 현대차에게는 전기차 시장의 절대적인 벽이었다. 삼성에게도 그는 까다롭고 예측 불가능한 고객이자 경쟁자였다. 한마디로, 지금 이 자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었다.
하지만 전화는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끈질긴 진동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걸 인간이야.”
젠슨 황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국 통화 버튼을 슬라이드 했다. 그는 스피커폰을 켰다. 모두가 들어야 한다는 무언의 동의였다.
-Hey, Jensen. 서울이라면서?
특유의 건방지고 여유 넘치는 목소리. 비 내리는 강남의 밤거리를 뚫고 나온 목소리는 명확하고 날카로웠다.
“그래, 일론. 무슨 일이야? 나 지금 중요한 미팅 중인데.”
-미팅? 하! 너 지금 삼성, 현대랑 같이 있다며? 실리콘밸리에 소문 다 퍼졌어. 거기서 무슨 꿍꿍이 중이야?
일론은 마치 이 상황을 CCTV로 보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찔러 들어왔다.
-설마 그 낡아빠진 쿨링 시스템(Cooling System) 계약이나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거 다 구식이야, 젠슨. 액침 냉각? 그거 언제적 기술인데. 우리랑 손잡자니까? 내가 말했잖아. 스페이스X 냉각 기술, 그거 빌려준다니까?
순간, 정의선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젓가락을 쥔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 이재용 회장의 입매도 차갑게 굳어버렸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젠슨 황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K-쿨링이 구식이라고?’
민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젠슨 황이 언급했던, 그리고 민수가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케이쿨링’의 핵심 기술이 바로 액침 냉각 방식이었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한국 중소기업 거? 그거 수율 안 나와. 나 믿고 텍사스로 와.
젠슨 황의 시선이 허공을 배회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기술적인 비판에 민감했다. 일론의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듯, 그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경고: 외부 요인으로 인한 심리적 동요 발생.]
[대상의 ‘신뢰’ 상태가 흔들립니다.]
[계약 파기 확률: 45%... 52%... 상승 중.]
붉은색 경고창이 민수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여기서 계약이 틀어지면, 내일 아침 케이쿨링은 점상은커녕 하한가로 직행이다. 1억 원이 휴지 조각이 되는 건 물론이고, 24시간 내에 갚아야 하는 시스템 대출금 때문에 장기라도 팔아야 할 판이었다.
‘막아야 해. 이 통화를 끊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세계 최고의 갑부들이 통화하는 자리에 감히 치킨집 사장이 끼어든다?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민수의 눈에 들어온 건, 흔들리는 젠슨 황의 눈빛과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두 회장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시스템 상점에 떠 있는 새로운 아이템 하나.
[일회용 스킬: ‘객장의 카리스마(Owner's Aura)’]
- 가격: 100 포인트 (현재 보유 포인트: 110)
- 효과: 10분간 가게 내의 주도권을 사장이 완전히 장악합니다. 공간 내의 모든 인물은 사장의 말에 무의식적인 권위를 느끼며, 반박하기 어려워집니다.
민수는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띵-.
머릿속이 차가워지면서 등골을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 공간이 내 손바닥 위에 있다는 확신이 차올랐다.
민수는 쟁반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갔다.
“손님!!!”
민수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며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쾅!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가 스피커폰 너머 일론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세 회장이 깜짝 놀라 민수를 쳐다봤다.
“주문하신 ‘침묵의 골드 윙’ 나왔습니다!”
침묵의 골드 윙이라니. 메뉴판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민수의 태도는 너무나 당당해서, 감히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
전화기 너머, 일론이 말을 멈췄다.
-Who is that? (방금 누구야?)
민수는 젠슨 황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스피커, 끄지 마세요.’
젠슨 황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 효과가 발동된 것이다. 민수는 테이블 상석에 선 채로, 젠슨 황의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치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베테랑 사장의 눈빛이었다.
“일론 머스크 씨라고 하셨습니까?”
민수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You? 넌 누군데 내 이름을 막 불러? 젠슨, 이 사람 누구야? 비서야?
“여기 사장입니다.”
민수는 앞치마를 툭툭 털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제 가게 VIP 손님들이 아주 중요한 식사를 하시는 중인데, 그쪽 전화 때문에 치킨이 식고 있습니다. 치킨이 식으면 맛이 없어집니다. 맛이 없으면 제가 기분이 나쁘고요.”
정적.
이재용 회장이 입을 떡 벌렸다. 정의선 회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수를 올려다봤다. 감히 일론 머스크에게 ‘치킨 식으니까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인간은 지구상에 강민수 하나뿐일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Ha! Ha! 이거 재미있네. 치킨이 식는 게 문제라고? 이봐, 미스터 치킨맨.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일론 머스크야. 화성에 사람을 보낼 사람이라고.
일론의 목소리에 조소가 서렸다. 하지만 민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죠. 화성 가고 싶은 분 아닙니까?”
민수의 도발에 젠슨 황의 눈이 커졌다.
“근데 일론 씨. 화성 가셔도 치킨은 못 드실 텐데 어쩝니까. 지금 이분들은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드시는 중이거든요. 그거, 돈 많다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거 아닙니다.”
민수는 젓가락을 들어 골드 윙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부러우면 비행기 타고 오시든가, 아니면 끊으세요. 남들 밥 먹는데 침 튀기지 마시고. 예의 없게.”
-What? You crazy…! (뭐? 이 미친…!)
“영업 방해로 신고하기 전에 끊습니다. 뚝.”
민수는 젠슨 황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의 빨간색 종료 버튼을 정확하게 눌렀다.
삑.
화면이 꺼졌다.
가게 안에는 다시 빗소리와 튀김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남았다.
민수는 스마트폰을 젠슨 황 쪽으로 스윽 밀어주며, 평소의 사람 좋은 미소로 돌아왔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껍질이 눅눅해지면 제 마음이 아픕니다.”
1초, 2초, 3초.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민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릴 때쯤이었다.
“푸하하하하하!”
정의선 회장이 테이블을 내려치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야! 진짜 미치겠다! 사장님, 진짜 대박입니다! 일론 그 자식한테 전화 끊으라고 소리친 사람은 내 살다 살다 처음 봅니다!”
정 회장은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평소 일론 머스크의 기행 때문에 스트레스를 꽤나 받았던 모양이었다.
“Wow... Mr. Kang.”
젠슨 황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Your Guts(배짱)… Incredible. 일론이 말문 막히는 거 처음 봤어요.”
“사장님, 정말 보통이 아니시네요.”
이재용 회장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안경을 고쳐 썼다. 그의 눈빛에 민수를 향한 깊은 호감이 서려 있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사실 저도 그 양반 전화 오면 끊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띵-!]
[시스템 알림]
[조건 충족! 세 거인의 ‘동지애’가 강화되었습니다.]
[공통의 적(일론 머스크)을 통해 결속력이 ‘혈맹’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계약 성공 확률: 99.9%]
민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가 기회로 바뀌었다. 일론 머스크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줌으로써, 오히려 이 세 사람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묶어버린 것이다.
“자, 자! 사장님 말이 맞아요. 치킨 식습니다. 먹읍시다!”
정의선 회장이 기분 좋게 외치며 골드 윙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젠슨. 아까 일론이 말한 거 신경 쓰지 마. 걔가 원래 샘이 많아서 그래. 우리 K-쿨링 기술력? 내가 보증해. 현대차 연구소에서도 테스트 다 끝냈어.”
“Right. 일론이 질투(Jealous)해서 전화한 걸로 치죠. 한국 치킨도 못 먹는 불쌍한 놈이니까.”
젠슨 황이 껄껄 웃으며 치킨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Oh my god. This is crispy.”
젠슨 황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장님, 이거 메뉴 이름이 뭐라고요? 침묵의 골드 윙? 이름 아주 마음에 듭니다.”
민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맛있게 드십시오.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부르시고요.”
주방으로 돌아온 민수는 다리가 풀려 싱크대를 잡고 주저앉았다. 심장이 튀김기 기름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미친 짓이었어. 진짜 미친 짓이었어.’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민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냈다. 증권 앱을 켰다. 시간외 거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케이쿨링]
현재가: 5,350원 (+18% 상승 마감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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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이거 뭐냐? 왜 시간외 상한가 감?
- 찌라시 돌았음. 엔비디아 계약 확정이라는데?
- 내일 점상이다. 꽉 잡아라!
민수는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저 밖 테이블에서는 대한민국 1, 2위 기업 총수와 엔비디아 CEO가 내가 만든 치킨을 뜯으며 형님, 동생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내 계좌를 살찌우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맥주 3,000cc 추가요!”
정의선 회장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수는 벌떡 일어났다.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네! 갑니다, 형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