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상 이황이 살던 시기에 성리학이 쇠퇴해야 다른 사상으로 이행이 가능한데, 이 분이 다 한 것은 아니지만 이 분 이전과 이후...두어 세대에 걸쳐... 너무 발전 시켜 버림.... 그래서 성리학 체제가 과해도 너무 과하게 왕조를 짓누르게 되어, 나라가 성리학 자체가 되어 버리는데 일조를 해버렸죠.
한 때 선진적이었으나.. 어느새 시대에 뒤쳐진 한물 가게 된 사상은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시대에 뒤쳐질 무렵에 너무 완성도를 끌어 올려 버린 셈...
실록에는 반전의 사실이 언급되어 있던데..... 에피소드만 언급하기엔 좀 많이 어색하군요.
https://sillok.history.go.kr/id/ksa_11503109_003 "새로 간행한 《심경석의(心經釋疑)》는 본래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인 이덕홍(李德弘)·이함형(李咸亨)의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덕홍은 식견(識見)이 고루하여 그 논설이 스승의 훈계를 등진 것이 많고, 이함형이 기록한 것은 아직 정정(訂定)하지 않았습니다. 선사(先師)가 돌아가신 뒤 이황(李滉) 후손의 집과 서원(書院)에는 모두 이 책이 없었습니다. 한 책이 이덕홍의 집에 보관되어 왔을 뿐인데, 그의 외손(外孫) 김만효(金萬烋)가 패려스런 성행(性行) 때문에 향곡(鄕曲)에서 버림을 받고 있던 중 드디어 이 책을 이황이 정정(訂定)한 것이라고 하면서 송시열(宋時烈)에게 바쳤고, 마침내는 천청(天聽)에까지 아뢰어져 중외(中外)에 간포(刊布)되었는가 하면, 김만효를 나이 많고 학문이 깊다 하여 재랑(齋郞)에 천거 하였으니, 성명(聖明)을 속이고 선현(先賢)을 속인 것이 너무도 심합니다. 이렇게 도리에 어긋난 문자(文字)를 다시 열람하시어서는 안됩니다."
남자의자격
IP 73.♡.190.247
11-19
2025-11-19 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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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기 이후의 성리학으로 인해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고통받는걸 생각하면...참 아이러니 합니다.
유학의 폐해는 그 깊이가 너무 크고 깊어 상상조차 안됩니다. 말장난으로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한 학문으로 인해.......
TheCryingMachine
IP 210.♡.82.191
11-19
2025-11-19 19: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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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자격님 전 뭐 별로 고통받은 기억이 없는데요 ㄷㄷㄷㄷ 개인적인 경험이 있으신가 보네요.
삼불거사
IP 218.♡.188.70
11-19
2025-11-19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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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자격님 우리가 유학의 폐해로 생각하는 것의 상당수가 사실은 개신교의 폐해죠.
남자의자격
IP 73.♡.190.247
11-19
2025-11-19 2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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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ryingMachine님 개인적인것보다 거시적으로 봤을때 국가적으로 봤을때 엄청난 국가의 발전을 저해한 부분이 많죠....
실학과 개혁개방의 실질적 방해요소였죠.
개인적인 경험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니 별개로 해도요...
남자의자격
IP 73.♡.190.247
11-19
2025-11-19 20: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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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거사님 임진왜란 이후 조선사회가 어떻게 파국적으로 지내왔는지는 역사가 방증하는것이고 기독교의 폐해는 이제 100년 조금 넘었습니다.
아직은 유학의 폐해에 좀 밀리죠.
천문공
IP 122.♡.56.205
11-19
2025-11-19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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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거사님 성리학의 폐해...그 때는 개신교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성리학은 중세를 지나 15세기 정도를 넘기기 힘든, 이와 리를 가지고 우주와 세상을 논하던... 즉, 고대로부터 이어온 사상의 절정의 순간이었어서, 딱 그 마디를 넘기고 나면....더 이상의 역할이 없는 구시대의 산물일 수 밖에 없는데, 연장에 연장을 한 셈이고, 그 탓에 국력이 발전할 틈이 없었죠.
윗 분이 말하는 유학의 폐해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일 겁니다.
15세기면 수명이 다했을 사상이... 수백년을 더 이어갔으니... 그 나라가 온전히 발전하며 생존하기가 어렵고, 사실 문명 수준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구시대적 사상이 지배하면... 좋을 일이 하나면 나쁜 일이 아홉이죠.
@골드문트님 과거의 사상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모든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의 총 집합이자 뿌리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도 연구 할 만한 것은 맞습니다만, 그 목적이 과거와 같이 그 시대의 근간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 다른 점입니다.
따라서 성리학 정도의 융성했던 사상은 연구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본질을 벗어난 것들에 휘둘려 본질을 외면할 필요 없이 그 가치를 제대로 들여다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면면히 흘러가야 할 역사의 흐름과 문명의 발전 가운데 성리학의 지배 사상으로서의 가치는 15세기 정도에 이미 소멸하고, 그것을 잇는 더 나은 대안 또는 전혀 다른 사상으로 나아갔어야 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놜라리놜라
IP 118.♡.92.138
11-19
2025-11-19 22: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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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팩트 체크가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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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이황은 스승로서 정말 모범이었겠구나 싶습니다.
ㅋㅋ
/Vollago
이거 진짠가요
공감합니다. 조회수 노리고 엉망으로 글쓰지요.
그 이후는 뭐... 제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영감님께 쪼매 실망했던 기억이 있네요. ㅎ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역할에서요.
시기 상 이황이 살던 시기에 성리학이 쇠퇴해야 다른 사상으로 이행이 가능한데,
이 분이 다 한 것은 아니지만 이 분 이전과 이후...두어 세대에 걸쳐...
너무 발전 시켜 버림....
그래서 성리학 체제가 과해도 너무 과하게 왕조를 짓누르게 되어,
나라가 성리학 자체가 되어 버리는데 일조를 해버렸죠.
한 때 선진적이었으나.. 어느새 시대에 뒤쳐진 한물 가게 된 사상은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시대에 뒤쳐질 무렵에 너무 완성도를 끌어 올려 버린 셈...
여종의 자식을 걱정하다가 손자를 잃었죠
에피소드만 언급하기엔 좀 많이 어색하군요.
https://sillok.history.go.kr/id/ksa_11503109_003
"새로 간행한 《심경석의(心經釋疑)》는 본래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인 이덕홍(李德弘)·이함형(李咸亨)의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덕홍은 식견(識見)이 고루하여 그 논설이 스승의 훈계를 등진 것이 많고, 이함형이 기록한 것은 아직 정정(訂定)하지 않았습니다. 선사(先師)가 돌아가신 뒤 이황(李滉) 후손의 집과 서원(書院)에는 모두 이 책이 없었습니다. 한 책이 이덕홍의 집에 보관되어 왔을 뿐인데, 그의 외손(外孫) 김만효(金萬烋)가 패려스런 성행(性行) 때문에 향곡(鄕曲)에서 버림을 받고 있던 중 드디어 이 책을 이황이 정정(訂定)한 것이라고 하면서 송시열(宋時烈)에게 바쳤고, 마침내는 천청(天聽)에까지 아뢰어져 중외(中外)에 간포(刊布)되었는가 하면, 김만효를 나이 많고 학문이 깊다 하여 재랑(齋郞)에 천거 하였으니, 성명(聖明)을 속이고 선현(先賢)을 속인 것이 너무도 심합니다. 이렇게 도리에 어긋난 문자(文字)를 다시 열람하시어서는 안됩니다."
유학의 폐해는 그 깊이가 너무 크고 깊어 상상조차 안됩니다.
말장난으로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한 학문으로 인해.......
개인적인 경험이 있으신가 보네요.
실학과 개혁개방의 실질적 방해요소였죠.
개인적인 경험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니 별개로 해도요...
아직은 유학의 폐해에 좀 밀리죠.
성리학의 폐해...그 때는 개신교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성리학은 중세를 지나 15세기 정도를 넘기기 힘든,
이와 리를 가지고 우주와 세상을 논하던...
즉, 고대로부터 이어온 사상의 절정의 순간이었어서,
딱 그 마디를 넘기고 나면....더 이상의 역할이 없는 구시대의 산물일 수 밖에 없는데,
연장에 연장을 한 셈이고,
그 탓에 국력이 발전할 틈이 없었죠.
윗 분이 말하는 유학의 폐해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일 겁니다.
15세기면 수명이 다했을 사상이...
수백년을 더 이어갔으니...
그 나라가 온전히 발전하며 생존하기가 어렵고,
사실 문명 수준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구시대적 사상이 지배하면...
좋을 일이 하나면 나쁜 일이 아홉이죠.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충분히 연구할만한 학문인 것 같습니다만 당시에는 문명 이기의 발전을 콱 틀어막아 버린 것이 안타깝죠.. 근데 학문이 아니고 견강부회한 사람이 그러거겠지만요.
과거의 사상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모든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의 총 집합이자 뿌리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도 연구 할 만한 것은 맞습니다만, 그 목적이 과거와 같이 그 시대의 근간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 다른 점입니다.
따라서 성리학 정도의 융성했던 사상은 연구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본질을 벗어난 것들에 휘둘려 본질을 외면할 필요 없이 그 가치를 제대로 들여다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면면히 흘러가야 할 역사의 흐름과 문명의 발전 가운데 성리학의 지배 사상으로서의 가치는 15세기 정도에 이미 소멸하고, 그것을 잇는 더 나은 대안 또는 전혀 다른 사상으로 나아갔어야 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