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50년대에 태어난 한 여자가 있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옆동네 지주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인물이 못생기지 않고 눈치가 빠른데다 엉덩이가 가벼웠다는 게 시부모가 그녀를 며느리로 고른 이유였다.
여자는 열여덟 살에 첫 아들을 낳고 스무 살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사법고시를 본답시고 집에서 놀고 먹으며 아내를 때렸다. 남편이 군대에 갔을 때와 절에 공부하러 들어갔을 때가 여자가 겪은 결혼 생활의 호시절이었다. 애들을 키우며 농사일과 살림만 해도 된다는 게 좋았다. 매끼 고봉밥을 먹을 수 있어 친정에서처럼 배를 곯지 않으니 행복했다.
그러나 절에 공부하러 간다던 남편은 작은댁을 데리고 돌아왔다. 뽀얀 얼굴에 키가 작달만한 고것은 말투도 암팡진 불여우같았다. 남편은 서울 첩을 신주단지처럼 별채에 모셔놓고 하루 세 끼를 본처에게 나르도록 했다.
여자는 분했으나 참았다. 그나마 남편이 때리지 않고 밤에 귀찮게 굴지 않으니 견딜만했다.
(2) 집안 대청소를 하던 날 여자는 남편이 공부한답시고 잔뜩 사서 쌓아놓은 법전을 들춰보았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한자를 가르쳐 주셨기에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1등을 종종 했던 여자였다. 여자의 가슴 속에 불온한 꿈이 싹텄다.
겨울이 왔다. 임신을 핑계로 방에만 들어앉아 있던 첩이 눈구경을 한다며 집 밖에 나갔다가 넘어져 달이 한참 덜 찬 아기를 낳았다. 남편은 첩 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아내를 때렸다. 미련한 본처가 자기집 대문 밖까지만 쓸어 놓아서 동네 어귀에서 첩이 넘어졌다는 이유였다. 첩의 아기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별채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통곡을 들으며 여자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친정 백부의 부고가 왔다. 시어머니는 온몸에 고약을 붙인 며느리에게 차비를 쥐여주며 바람 쐴 겸 다녀오라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기차 소리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숨겨둔 돈을 모두 챙겨 보따리를 쌌다. 여자는 문상 대신 서울행 열차를 탔다.
(3) 마침 기차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구로공단에 여공으로 일하는 딸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여자는 아주머니를 따라가 딸이 다니는 공장에 취업했다. 대학생들이 연 야학에서 공부도 시작했다. 여자는 명문대 학생들이 놀랄 정도로 모든 과목을 빠르게 잘 배웠다.
여자는 나랏일을 하고 싶었다. 공무원 시험의 학력 제한이 이미 철폐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붙자마자 지금으로 치면 9급인 5급 을류 공무원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여자는 1년 반만에 합격했다.
여자는 아직 이십대였다. 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이혼장을 내밀었다. 남편은 그때의 첩과 헤어지고 새 첩을 들인 직후였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고향 친구가 그녀에게 남몰래 소식을 물어다 준 덕분이었다. 새 첩이 남편 옆에 앉아 얼른 도장 찍어주고 혼인신고를 하자며 속살거렸다. 남편은 썩 꺼지라며 여자에게 소금을 뿌렸다.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숨겨놓고 보여주지 않았다. 여자도 굳이 찾지 않았다.
(4) 여자는 이혼 절차를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시간이 갈수록 타고난 일머리가 빼어난 여자를 여기저기서 데려가고 싶어했다. 월급은 박봉이었지만 여자 혼자 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아파트도 분양받았다.
야반도주했던 농가의 촌부는 10년도 되지 않아 세련된 서울 직장인으로 변했다. 아무도 여자를 깡시골 출신으로 보지 않았다. 도통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여자를 두고 다양한 뒷말이 오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자에겐 안정된 직장이 있고 자기 집이 있었다.
친정 식구들조차 자식 버린 모진 년이라고 여자를 욕했지만 여자는 동창을 통해 몰래 아들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큰아들의 담임교사는 여자의 국민학교와 중학교 선배였다. 그녀가 모자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여자가 보내주는 옷이나 신발, 책을 자신이 사주는 것처럼 아들들에게 주었다. 시어머니는 이를 눈치챘으나 모른척 눈감아 주었다. 전처 소생들을 미워하는 새며느리가 알면 손자들에게 득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5) 아들들의 아비는 지지리 못난 물건이었다. 사법고시에 붙지 못해 부모 밑에서 농사를 짓는 울분을 계집질로 풀었다. 본처를 갈아치우기가 그나마 어려웠지 두 번째부터는 여자들이 3년도 버티지 못했다. 세 번째 여자가 딸 하나를 낳았으나 데리고 도망쳤다. 집에 들이는 여자들은 갈수록 볼품없어졌다.
그 와중에도 여자가 두고 온 아들들은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아들이 공무원 시험을 보러 서울로 왔다. 시어머니는 커다란 보따리를 들려주었다. 서울역으로 아들을 마중 간 여자가 나누어 들기에도 버거운 짐이었다. 여자의 거실이 짐으로 꽉 찼다. 아들의 옷은 얼마 되지 않았다. 죄다 먹거리였다. 윤기나는 쌀과 씨알 굵은 새우젓, 큼직한 보리굴비, 벌겋고 찰진 고추장과 정갈하게 말린 나물들이 그득했다. 다 여자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여자의 아들은 시어머니의 귀한 손자였다. 하숙하러 간다고 했으나 어미에게 간다는 걸 알았으리라. 원망스런 며느리에게 보낸 보따리에 담긴 정성이 여자를 울렸다.
(6) 큰아들은 서울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발령을 받고서야 군대에 갔다. 작은아들은 형처럼 붙을 자신이 없다며 군대부터 다녀와 경찰이 되었다. 아들들이 합격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전화를 붙잡고 울며 외치는 아들들의 뒷모습을 본 여자는 이제야 완전히 놓여난 기분이 들었다.
서울행 기차를 탄 순간부터 어미가 아닌 자기자신으로 살기를 선택한 거였다. 아들들은 그때부터 여자의 것이 아니었다. 물건을 사 보내고 시험 뒷바라지를 좀 했다고 해서 자식을 버린 죄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들들은 눈물의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서 어머니에게 수험생활 뒷바라지를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웃으며 화답했다. 그걸로 되었다.
전남편은 아들들이 제 어미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여자의 급수와 근무지를 듣고는 살림살이를 집어던졌다. 촌무지렁이라고 무시했던 전처가 서울시장이 들어오는 회의에 배석하는 공직자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형벌이었다.
(7) 여자는 방통대에 입학했다. 살면서 공부할 기회는 한 번도 순순히 주어지지 않았으나 여자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책을 거머쥐었다. 전공책을 들고 혜화동에 갈 때마다 행복했다. 직접 가서 듣는 수업과 대학 도서관이 주는 기쁨을 생각하면 등록금은 너무 저렴했다. 졸업식에는 큰아들이 와 주었다. 아들이 주는 꽃다발을 안고 여자는 목이 메였다. 아들은 자기도 방통대에 다니고 싶었는데 어머니 덕에 와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여자는 아들의 입학 원서를 쓰고 등록금을 냈다. 아들은 사양했으나 여자는 단호했다. 널 버린 죄가 있으니 어미라곤 못 해도 선배 공무원으로서 장학금은 주게 해 달라고 했다. 아들이 흐느꼈다.
"그날... 어머니가... 머리... 쓰다듬어 주실 때... 멀리... 가시는 거 알았는데... 제가... 잡으면... 어머니... 맞으... 시니까... 계속... 맞고... 사실 수... 없으니까... 다녀... 오시라고..."
여자가 무너져내려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8) 아들은 할머니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폐암 4기라고 했다. 여자는 큰아들이 간호 당번인 날 병원을 찾았다. 기억 속 매서운 중년 대신 자그만 노인이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에미는 늙질 않았네. 서울 물이 좋은갑다."
노인의 말투는 나들이를 다녀온 며느리를 대하듯 여상했다. 여자는 노인의 발치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제가 새끼들 버리고..."
노인은 낮게 웃었다.
"빨리도 빈다. 이혼장 들구 올 때는 당당하더니."
여자가 병실이 떠나가도록 통곡했다. 울부짖는 소리에 드문드문 말이 섞였다. 노인은 여자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니 배루 낳았지만서도 갸들은 내 새끼다. 온갖 잡년들이 공중변소 드나들듯 별채를 다녀갔지만서두 내가 그것들 손하나 안 빌리구 내 손으로 키웠다. 에미 없단 소리 들을까봐 힘껏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너는 낳아줬고 내가 키웠으니 우리 계산은 끝났다. 내 아들이 지은 죄, 그걸로 갚자."
(9) 노인은 시종일관 덤덤했다.
"내가 애 셋을 흘리고 네 번째에 겨우 건진 게 아범이다. 그 이듬해 아들 하나를 더 낳았는데 돌이 안 되어 잃었다. 그래서 아범은 시어른들이 끼고 키우셨어. 귀한 장손이라고 어린 것이 떼를 부리니 비단 보료를 흙바닥에 깔아주셨지. 그놈 고시 공부시키느라 땅도 꽤 팔았는데 너도 알다시피 그 돈은 계집들 밑구녕에 다 갖다박았지. 애초에 진득허니 공부를 할 그릇이 아니었던게야."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도 전남편의 깜냥을 알았다.
"네가 아범 책에 눈을 번뜩이는 걸 봤다. 아범도 알았을게다. 그러니 너를 그렇게 두드려팼지. 살인날까 겁이 났었다. 네가 달아나자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어. 아범이 지서에 신고해 잡아온단 걸 집안 망신이라고 말렸다."
여자가 몰랐던 이야기였다.
"네가 김 선생 통해 보낸 물건들, 아범에겐 내가 사 주었다고 했다. 선생에게 애들 치수도 내가 알려주었지. 애들한테는 지 에미가 서울에 돈 벌러 가서 이거 사 보냈다고 그랬다."
(10) 말을 마치기 무섭게 꼿꼿하던 노인의 몸이 허물어졌다. 여자는 노인을 눕혔다.
"나는 이제 할 일 다 했으니 가야겠다. 애들은 에미가 든든하니 걱정없는데 내 새끼란 놈이 문제지. 나 죽으면 넌 오지 말어라."
노인은 숨을 몰아쉬며 말을 내뱉고 눈을 감았다. 여자는 이불을 덮어드리고 병실을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던 큰아들이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전 시어머니의 부고를 대학원 수업 중에 들었다. 장례식에는 가지 않았으나 석사 논문이 나오자마자 납골당에 찾아가 보여드리고 절을 올렸다. 그녀가 홀로 외롭게 싸우며 걸어온 줄로만 알았으나 뒤에서 묵묵히 길을 열어주고 보내준 이들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여자가 할 일이었다. 여자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다.
퇴직을 앞둔 어느날 작은아들이 찾아왔다. 둘째를 임신한 며느리에게 암이 발견되었단다. 여자가 속으로 아들네를 도울 수 있는 돈을 가늠하는데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봐주시면 안될까요?"
(11) 작은아들네에는 네 살짜리 첫째와 뱃속의 둘째가 있었다. 주수가 어지간히 차는대로 둘째를 수술해서 꺼내고 산모의 항암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버지와 계모에게 말했으나 바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여자는 망설이지 않았다. 정년을 마치면 오라는 곳이 적지 않았으나 속죄할 기회는 이번 한번뿐이었다.
여자는 손녀에게 하나뿐인 할머니가 되었다. 니큐를 졸업한 손자도 여자의 몫이었다. 따스한 봄날 셋은 놀이터에 나갔다. 여섯살 난 손녀가 친구와 놀며 웃었다. 친구 엄마는 전공책을 보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같은 전공이 반가워 말을 걸었다. 둘은 놀이터에서 종종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아이들을 놀리곤 했다.
여자는 아직 차남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며느리가 나을 때까지 몇 년 키워주니 세상에서 할머니가 최고인 줄 아는 손주들 때문이다.
손녀 친구의 엄마는 여자의 이야기를 써서 보여주었다. 여자가 눈물을 흘리자 젊은 엄마는 테토녀라는 말을 알려주었다.
"정말 용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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