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이런 비유를 해보고 싶습니다.
장삼봉이라고 있는데, 이 사람이 도교에서 전해지는 비중이 상당하지만,
명 초의 이 인물에 대해 후대에 여러 각색된 이야기들이...필요에 의해 반복해서 만들어 집니다.
그러다 청초에 장삼봉을 내가권의 창시자로 설정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이후 다시 태극권 계통에서 세월이 지나 신격화된 장삼봉을 원조로 끌어다 씁니다.
이 가운데 온갖 지어진 이야기가 난무하고,
나중에는 김용 소설에 등장하게 됩니다.
실존 가능성은 높지만, 과대 포장이...무척 심한...장삼봉의 예를 든 것은,
미야모토 무사시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렇습니다.
오륜서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의 세키가하라 전투 참전에 관한 왜곡 부분,
사사키 고지로와의 결투 부분의 과장, 61전 무패라는 기록의 신빙성...
이 모두가 후대에 과장 되거나 검증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최강이었다고 하면 무수히 많은 당대의 실제 기록들이 있어야 하는데,
후대에 포장 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김용이 장삼봉을 그렸던 것처럼, 무사시 역시 20세기 소설가가 전해지는 이야기를
총집합해서 그에 대한 소설을 쓰고, 그 내용이 정설처럼...
여러 매체에서 되풀이하여 소비하는 중입니다.
그나마 무사시는 장삼봉에 비해 실존 인물인 것이 확실하고,
공직 경력도 있는 등 나름 전반적인 신뢰도는 있지만,
과장이 아주 많이 가미 된 온갖 전해지는 이야기를 짬뽕한...
소설 속 이야기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무패를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최강의 검객...
이란 이미지로 여전히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한 컨텐츠를 양산하는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참 뭐라고 해야 할지...
김유신도 그렇고....
미야모토 무사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꺽정과 전우치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것 같습니다.
녹봉이 작았다는 것과 에도의 유명 검호와의 대결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제자 중에 유명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알려진 것처럼 최고 실력의 검객은 아니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이도류 창시와 오륜서를 쓴 업적이 있어서
실력이 부족한 검객도 아니었을 것 같아요.
실전을 겪은 무장들이 있어서,
무사시 류의 검도가들이 나름 검술 도장을
운영할뿐, 실전을 겪으며 손목치기의
달인들을 이기기는 힘들었을것으로
추측됩니다.
가라데 장인들 비디오 영상을보면,
손과 어깨만휘두르면, 젊은 제자들
수십명이 쓰러지죠..최근 현대도
이럴진데, 수백년이 지난지금은
뻥튀기가 된거겠죠..
건강체조지
닌자도 그냥 첩자, 자객인데 이걸 문화적 포장으로 만능 전사로 만들고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