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동맹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군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혔던 시절,
일본 수도 도쿄를 항모에 실은 폭격기로 공습했고 폭격기들은 중국에 불시착 했습니다. 거기서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작전에 참여한 80명 중 64명의 미군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공습은 일본의 계획을 헝클어트렸고, 결국 일본이 항모 4척을 잃으며 대패하는 미드웨이 해전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전쟁이 승리했죠.
댓가가 있었습니다. 미국을 도왔던 중국은 일본의 미움을 샀고, 그 결과 중국인 25만명이 일본군에 학살당했습니다.
The consequences of the Doolittle Raid were most severely felt in China: in reprisal for the raid, the Japanese launched the Zhejiang-Jiangxi campaign, killing 250,000[5] civilians and 70,000 soldiers.[4][2]" --> 저장성, 장쑤성에서 일어난 학살에서, 25만명은 민간인, 그리고 군인은 7만명이 죽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Zhejiang-Jiangxi_campaign
"Japanese troops conducted a massive search for American airmen and in the process whole towns and villages that were suspected of harboring the Americans were burned to the ground and many civilians executed." ==> 미군을 숨겨줬다고 생각되는 마을을 불태워버리고 민간인들을 죽였다는 내용
The Imperial Japanese Army had also spread cholera, typhoid, plague-infected fleas and dysentery pathogens.[11]
The Japanese biological warfare Unit 731 brought almost 300 pounds of paratyphoid and anthrax to be left in contaminated food and contaminated wells with the withdrawal of the army from areas around Yushan, Kinhwa and Futsin.[12] ==> 25만명 학살한 것 외에도, 일본군은 콜레라, 장티푸스, 병을 옮기는 벼룩, 이질을 퍼뜨렸고, 731부대는 136 kg 분량의 파라티푸스와 탄저균을 우물 등에 살포하여 지역을 오염시켰습니다.
미군을 위해 중국인들이 피를 흘렸으니, 당시 미국과 중국의 동맹은 문자 그대로 혈맹이었네요.
물론 지금은 안 그렇죠. 중국은 미국의 가상적국 1위일 겁니다.
그럼 왜 이런 옛날 (1942년, 즉 83년전) 이야기를 가져오냐고요?
왜냐하면,
75년 전 일이라고 6.25 전쟁을 오래된 일이라고, 옛날 일이라고 하지 않고 여전히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을 삼듯,
83년 전 일이라고 미군 64명을 위해 죽은 중국인들 25만명을 잊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매우 나쁜 조직이고 중국 정부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왔습니다. 잊지 말아야죠.
학살당한 중국인 25만명도 잊지 말아야죠.
반중시위가 격해지면서 중국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것 같아서 써봤습니다.
지금 중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저장성, 장쑤성 출신이 여럿 있을 겁니다. 선조들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잃었는데, 그리고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고 일본이 패하여 한국이 해방을 맞고 오늘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 후손들이 한국에 방문했다가,
중국인 출입금지 팻말을 건 식당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을 혐오하고 모욕하는 시위대를 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역사라는건 들죽날죽해도 진행되는 큰 줄기가 있습니다. 곁가지에 그런게 있다고 해서 전체적인 내용을 뒤집지는 못합니다.
(참고로 6.25때 죽은 미군의 숫자: 33,686명)
저장-장시 작전
공습 이후, 일본 제국 육군은 중국 동부 연해 지역인 저장성과 장시성이 다시는 일본 공격의 발판이 되지 못하게 막고, 동시에 중국 민중에게 잔혹한 보복을 가하기 위해, 이른바 ‘정강(浙赣) 작전(세이고 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약 5만 제곱킬로미터(2만 제곱마일)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웬델린 둔커 신부는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것처럼,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파괴와 혼란밖에 남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일본군은 두리틀 특공대 대원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민간인 약 1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습에 협조하거나 미군 비행사들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붙잡힌 사람들은, 죽기 전에 끔찍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둔커 신부는 이황(Ihwang)이라는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이렇게 남겼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쏘아 죽였습니다. 남자, 여자, 아이는 물론이고, 소, 돼지, 움직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10살에서 65살까지의 여성들은 무차별적으로 능욕을 당했고, 마을에 불을 지르기 전 철저히 약탈했습니다. 총에 맞아 죽은 이들 가운데, 사람다운 장례를 치른 이도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6월 11일, 약 5만 명이 살고 있던 장시성 난청(南城)에 들이닥쳤고, 그날부터 시작된 공포의 통치는 훗날 선교사들에 의해 “난징 대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난청의 강간’”이라고 불릴 만큼 참혹했습니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일본군은 이미 유린당한 이 도시의 남은 부분마저 계획적으로 불태웠습니다. 한 중국 신문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계획적인 방화가 사흘 동안 이어졌고, 난청은 잿더미만 남은 검은 대지로 변했다.”
그 해 8월 중순, 일본군이 저장성과 장시 일대에서 철수했을 때, 그들이 남긴 것은 폐허뿐이었습니다. 중국 측 추산에 따르면 민간인 희생자는 약 25만 명에 달했습니다. 일본군은 이 과정에서 콜레라, 장티푸스,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 이질 등의 전염병까지 의도적으로 퍼뜨렸습니다. 일본군의 생물학전 부대인 731부대는 파라티푸스와 탄저균 약 140kg(300파운드가량)을 들여와, 옥산(玉山), 금화(衢州 인근, Kinhwa로 표기된 지역), 복친(Futsin) 주변의 음식과 우물에 투입해 오염시키고는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비인도적인 공격은 일본군 자신들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약 1만 명의 일본 군인들이 질병에 걸렸고, 그 가운데 약 1,7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5만 명에 이르는 중국 민간인 학살에 관여한 일본군 지휘관 하타 슌로쿠(畑俊六)는, 1948년 전범 재판에서 이러한 잔학행위를 막지 못한 책임, 즉 “만행을 방지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죄” 등을 사유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종신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1954년에 가석방되었습니다.
막 같다 붙인다고 인과관계가 성립되는게 아닙니다.
아 참 그리고 그때 같이 일본에 대해 미국이 함께 싸운건 장제스의 중국이고 그중국은 지금의 대만이죠
그러나 사람은 동일합니다. 제 글은 정부가 아닌 사람을 보자는 겁니다.
그럼 북한사람들도 예전엔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으니 우리의 주적이 아니구요
일본사람들중에서도 우리나라 좋아하고 감쌌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노저팬하면 안됩니다.
ㅋㅋㅋㅋㅋㅋ
[네 미국도 그렇게 많은 자국 국민들이 전사할 줄 알았으면 6.25에 참전 안 했을 수 있죠. 극동의 자그만 나라를 위해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를 줄 알았다면 말이죠]
이렇게 주변에, 특히 6.25를 겪은 어르신들께 말씀해 보세요.
미국인들은 한국 구하려고 6.25에 참전했고 그래서 지금의 한국이 있고요.
이런 배경 무시하고 논리를 전개하면,
"그렇게 많은 마국인 죽을 줄 알았으면 6.25 참전도 안 했고 그냥 북한 보고 남한 먹으라고 권했을 거에요' 가 되는 거에요.
이렇게 그대로 당시 참전용사 미군 퇴역군인에게 말해보시겠어요?
쉽게 질문드릴게요.
"오늘날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로서 번영을 누리는데 저 당시 희생된 25만명 중국인들의 기여가 있었다."
여기 동의하십니까?
"아무개 자식 출입금지" 팻말 붙여놓으면 그게 옳은 거냐고요.
왜 불특정 다수를 혐오하냐는 겁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 저는 반대한 적 없어요.
임정 도와준건 국민당이지 공산당이 아니죠
6.25 때 죽은 미군이 3만 6천명 입니다. 엄청난 수사의 미국인들이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미국을 혈맹으로 기억합니다.
중국인들이 미군 안 도왔으면 25만명 죽음도 없었겠지만 대신 한국은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였을 수 있죠.
다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희생된 중국인들의 자손 일부는 한국에 방문하여 혐중 시위를 보고 모욕을 당합니다.
이게 정의인가요?
2. 그래도 중국을 논하고 싶으시다면 Taiwan No.1 / ROC is Real China 입니다.
윤석열이 대통령 시절 윤석열을 혐오하는 외국인이, 윤정부 치하 한국인들 모두도 그 정부를 구성한 국민이라고 혐오하며 괴롭힌다면, 그건 옳지 않은 일이죠.
마찬가지로, 본인이 원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지만 태어난 나라가 중국이라면, 그래서 중국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 만으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면, 그게 정당합니까? 심지어 이 사람의 할아버지는 자유를 위해 미군을 돕다가 살해당했는데도요?
저한테 미국한테 이야기하라고 하셨는데, 그건 마치 도미노 블럭 하나가 쓰러진 원인이 그 바로 전 블럭 때문 만이라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 블럭 이전에 먼저 쓰러진 블럭이 있었던 걸 잊은 거죠.
당시 중국인들이 딱히 한국의 독립을 위해 미군을 도운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미군을 도왔기에 미국이 승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한국에도 광복이 찾아온 겁니다. 그들의 도움과 희생이 없었으면 한국은 아직도 일본 식민지였을 수 있다고요.
선생님의 논리라면 혐중이 오히려 더 명분이 있는거 같습니다...
-> ??? 뭔소리하시는거예요. 미국을 위해 죽은 중국인을 뭘 잊어서는 안됩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한국사람 죽은거나 신경 쓰세요.
625도 그렇고 조선시대까지 중국에 피해본게 얼마나 많은데요.
님 논리대로라면 전세계에 미국을 도와주다가 사망한 수많은 나라의 전몰장병들을 다 고마워하고 잊지말아야하나요? 그게 다 연관이 되어있으니?
혐중도 반대하지만 이런 헛소리는 하면 반중감정만 늘어납니다.
개인과 집단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개인은 인정많고 따뜻할 수 있는데,
그런 개인이 모인 집단은, 그리고 그 집단이 큰 집단일수록 더 비정하고 공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명이 있을 때보다 뭉쳐있을 때 더 무례하거나 잔인한 행동을 하기 쉬워지고
더 큰 규모의 집단인 국가간의 외교를 보면 거의 사이코패스들의 게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류라는 집단이 다른 종에게 하는 행위를 보면 더 하고 말이죠.
"왜 착한 개인들이 모였는데도 집단은 더 잔인하거나 비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책임의 분산(방관자 효과), 동조 압력, 내집단/외집단을 구분하는 진화적 본능 등,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집단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안에 있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는 그와 별개로 충분히 친밀하고 따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커뮤에 올려서 야씨 틀리앙에서 이러고 있다 ㅋㅋ 라고 박제 하려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드네요.
중국인이신가..
중국인이 이런 답글 답니까?
얼마전에는 중국이 돌솥비빔밥을 자국문화 등재한것도 옹호하는 글이 올라오던데 또 어떤글이 올라올지 기대됩니다.
제가 저 저장성 장쑤성 사람들이 중국인 전부를 대표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 단지 개인으로, 사람으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고마워하자 하는 것이고요.
중공군의 만행은 만행대로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을 삼아아죠.
--역사적 사실들을 체리피킹하며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취하지 말 것.
--개인과 국가는 다른 것.
이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어떤 외국인이 윤석열 싫어한다고, 한국에서 온 사람은 무조건 혐오하고 박대한다면 그게 옳은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원해서, 선택해서 중국인이 된 것이 아닌데, 태어나고 보니 중국인인데, 그 이유 만으로 차별당하고 혐오 받는 것이 옳습니까? 심지어 나의 조상은 자유를 위해 죽어간 25만명 중 하나였는데도요?
그들이 돕지 않았다면 우리는 광복절을 맞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는거면 지금 크게 문제 있으신겁니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분단국가가 된 부분은 쏙빼버리시네요
그리고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그래서 대한민국이 광복을 하게 되는데에, 둘리틀 공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애초에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승리하는데 그것이 큰의미가 있다구요? 냉정하게 진주만 습격은 일본 패전의 최대 병크중 하나인데 지금 전후관계를 이상하게 비약하고 계시구요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에 이미 패전은 확실시 된것이였는데 뭘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시나요
이미 이탈리아는 애초에 끝났고 독일도 패전했습니다 거기서 일본이 어떻게 됬을꺼같습니까 자꾸 독립운동가들 운운하시는데 그들이 고마워 했다고 칩시다
근데 이제와서 우리들 모두 고마워 하라는건 이게 뭔 소리죠??
지금 쓰고 계신글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담아 쓰신걸 팩트로 포장하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아시나요? 미드웨이 해전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또는 그 해전에서 미국이 패했다면 그래도 미국은 일본 상대로 승리했을까요?
맨해튼 프로젝트 말씀하시는데.. 그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에 이미 미국은 일본의 무릎꿇고 강화 조약 맺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초강대국이었고, 미국 해군은 그에 비해 초라했어요. 무기 질도 떨어졌고 군대 사기도 떨어졌고요.
그걸 뒤바꾼 것이 둘리틀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입니다. 역사를 다시 알아보시고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그러면 미군들을 위해 죽은 장쑤성, 저장성의 25만명 민간인들에 대해선 어떤 감정을 가지시나요?
재가 볼때 티끌과 태산의 차이 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그래서 대한민국이 광복을 하게 되는데에, 둘리틀 공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과 국가는 다른 개념임을 기억해 주세요.
어떤 외국인이 윤석열 싫어한다고, 한국에서 온 사람은 무조건 혐오하고 박대한다면 그게 옳은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원해서, 선택해서 중국인이 된 것이 아닌데, 태어나고 보니 중국인인데, 그 이유 만으로 차별당하고 혐오 받는 것이 옳습니까? 심지어 나의 조상은 자유를 위해 죽어간 25만명 중 하나였는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