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흥행 시대에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었네요.
이게 모르면 몰라도, 아는 구석이 있을 수록 궁금한 대목이거든요.
예를 들어 해외의 개인 콘텐츠로 무기나 방어구를 다루는 케이스가 있다 보니...
우리나라 것으로 테스트를 해보는 콘텐츠는....저 같은 경우 절로 클릭이 됩니다.
일단 실제 발굴 된 유물을 재현한 고탄소강으로 된 전면부 말 값옷과
측면의 저탄소강으로 된 신갑을 대상으로 활을 쏘아 관통이 되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었는데요.
사실상 활과 창이 먹히지 않는 거대한 짐승의 돌격도 무서운데 그 위에서
활도 잘 쏘고, 가까워지면 창으로 찔러 대는 기수가 함께 덤벼 온다는 것은...
악몽 그 자체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정도 방어력이면 전쟁에서 도나 검으로 승패를 가르기는 어렵죠.
그것을 착용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라면 실력도 제법 있을 것이니.. 더욱 어렵겠고 말입니다.
대개 보면 이 정도 방어구가 가능한 시점부터는,
넘어지거나 지치거나 하여 급소를 헤접어 들어오는 적의 공격을 전혀 방비하지 못했을 때
또는 강한 충격.. 등의 영향으로 죽지, 방어구로 감싼 부분을 어찌 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보아야겠습니다.
서양에서 판금이 나오던 시기 보다 수백 년 앞서...나온 것이 가야 갑옷이니...
나름 시기적으로도 훌륭한 것 같습니다.
신라노라 불리는 당시 석궁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겁니다.
석궁으로도 고탄소강으로 되어 있는 경우 관통이 쉽지 않다고 하네요.
신라노의 성능이 관건이겠습니다. 아주 강력한 것이었다면 박힐 수는 있는데, 찰갑은 단일판 여러 겹이라.. 아무래도 착용자를 크게 손상시키는 것은 어렵지 싶네요.
그것은 전투개시 상황에서 말은 정지된 표적이 아니라 궁수를 향해 40킬로 미터 이상의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화살이 주는 물리적 파괴력은정지 목표물보다 훨씬 강했으리라는 점이죠.
추측컨대 신라노는 대인용이 아니라 철갑중기병용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후대 한반도 전장에서 철갑중기병이 사라지면서
신기하게도 신라노도 같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하.. 모르던 내용이네요. 좋은 지적과 의견 잘 봤습니다.
다른 삼국보다 생활수준이 높았을거 같은데
낙랑이 망하고 이후에 망한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