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괜찮은 기사가 있네요.
제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능력주의란 지대추구형이라서 노력보다 시험성적같은 소유가능한 착도를 기준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형식적 능력주의라네요. 이걸 형식적 기회균등과 혼동하여 이상적 능력주의로 포장한 공정함에 대한 착각이 극우논리로 이어지구요.
자세한 건 출처 참고하세요.
나름 괜찮은 기사가 있네요.
제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능력주의란 지대추구형이라서 노력보다 시험성적같은 소유가능한 착도를 기준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형식적 능력주의라네요. 이걸 형식적 기회균등과 혼동하여 이상적 능력주의로 포장한 공정함에 대한 착각이 극우논리로 이어지구요.
자세한 건 출처 참고하세요.
수능보다 수시 위주로 대입 바꿨더니
오히려 더 엉망이 됐다는 사람들 많아졌어요
출처 보시면 우리나라 사람들는 어떤 제도를 가져와도 만족 못할 거라네요. 왜냐하면 지대 즉, 성적이나 스펙같은 거를 능력으로 보기 때문이라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실질적 성과나 노력은 평가의 대상에 아니라는 거죠.
인류사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것을 말하는데,
이런건 사실상 평가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인맥,평판이 중요한거고,
애시당초 진짜 능력의 평가는 존재할수 없다는걸 이해해야 하고,
우리가 평가할수 있는건 단지 노오오오력인데,
노오오오력하는 과정을 보느냐, 노오오오력의 결과물을 보느냐의 차이인데,
노오오오력의 결과물에는 큰 반칙이 있는데, 스테로이드 주사죠. 부자들에겐 스테로이드 버프가 있습니다. 노오오오력 없이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고로 노오오오력의 과정을 보는게 더 적합합니다. 물런 부자들에겐 그 과정에도 버프가 있지만. 결과물 보단 낫습니다.
하지만 이런건 다 진짜 능력이 아닙니다. 고로 사회의 벽을 만들지 않는게 중요합니다.
시험쳐서 바로 고위직으로 가는 벽을 만드는거 보단,
그냥 말단부터 일잘하는 고위직으로 승진시키는게 중요하죠.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이면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대학수학능력) 자체는 별 차이도 없어서 차라리 추첨제 뽑기로 입학시키는 편이 소셜믹스도 되고 유치원 때부터 학원 뺑뺑이 돌리는 미친 입시경쟁도 억제할 수 있을 거예요.
물런 이것도 노오오오력 하는 사람이 낚아챌 확률이 높습니다.
아직 사회 초년생인가 보네요. 능력주의라는 허상에 빠지지 마세요.
비정규직 없던 시절엔 어디서나 학력고사, 사시같은 줄세우기 시험으로 사람 뽑았는데
비정규직 생기고 난 이후로 사시도 사라졌고 학력고사도 사라졌고 요즘엔 수능도 별 의미 없어졌고 그래요
이젠 대기업 공채 시험도 거의 사라져가는 분위기잖아요
회사가 해고가 지유롭다면 시험 성적이 아닌 진짜 능력 위주로 사람을 유지하려고 하겠죠
해고가 자유롭지 않으니 좋은 인재를 선별하는 방법을 공통된 시험성적으로 가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갰죠
그리고 그 해고가 자유롭다는 미국도 "진짜 능력 위주"로 사람을 뽑지 않아요. 추천서를 통한 인맥과 평판 중심으로 뽑지요.
해고가 자유롭다는 미국이 대표적 형식적 능력주의 사회 중 하나라고 출처에 나와있긴 하네요.
능력주의가 마냥 좋다는 것 또한 환상이죠.
인간은 능력을 판단하고 공정하게 생각할만큼 능력이 있지 않거든요...
미국에서 일어나던 일중 하난데, 소프트웨어 개발때 6명정도로 핵심 기획을 하고, 100명 고용해서 6개월 크런치시키고, 런치하기 직전에 휴가랑 보너스 안주고 자르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물론 한 30년전 일일꺼에요. 이건 능력주의라기보단 귀족주의나 착취주의라고 따로 만들어야할 정도죠 ㅎㅎ
한국이라면 100명을 자를 수 없으니 6명 정규직으로 시작부터 런칭이후 서비스까지 줄창 월화수목금금금 크런치를 했을겁니다.
관점에 따라 6명에게는 그나마 런칭을 위해 100명을 6개월이라도 채용해 줄 수 있어 다행이고 100명은 6개월간 일자리와 경험을 얻었다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윤석렬이라는 D급이 리더가되면 C급 이상 인재는 짤릴 위험이 높아집니다
굉장한 말씀을 하시네요.
6명이 월화수목금금 크런치 ㅋ 이러면 걍 제품이 안나옵니다. 당연히 불가능하고 그 6명이 나가죠. 그래서 돈안주려고 저런 편법을 쓴거고, 그 6명은 아마 지인그룹이었겠죠.
보통은 이런 프로젝트 규모는 20명 정도 정규직하고 80명 외주나 계약직 합니다.
이 사례를 "100명에게 경험을 줬으니 더 나은경험이다" 라고 해석하는건 꽤 신박하군요. 처음봤습니다. 오죽 개판이었으면 책에까지 실렸던 사례인데 말이죠.
고용유연 신봉자이신듯하니 딱히 더 말씀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이런 예시에서도 고용유연화가 더 낫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오리까...
미국에서 대졸 자리에 고졸 안쓸 수야 있지만 모든 자리에 대졸을 요구하진 않습니다. 한국은 대졸 아니면 사람 취급 안하는 느낌이라서요...
대학 여부를 떠나서 평소에 인맥관리와 평판을 잘 유지하면 충분히 성공 가능한 미국과 좋은 대학 나오면 그냥 평판이 좋아져서 많은 혜택을 받는 한국...
미국 살면서 여기 사람들도 출신/인종 가리지 않고 IVY 면 오~ 하겠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비교하고 하지 않습니다. 능력에 대한 대우도 돈으로 즉각적 보상이 되는, 더 능력주의 사회에 가깝죠.
한국은 소나타냐 그랜저냐 아파트냐 빌라냐 아이폰이냐 갤럭시냐로 급나누고 그냥 능력주의라는 허상에 비교하고 서로 사대하거나 까내리는 발전에 일부 도움이야 되겠지만 사람들을 너무 불행하게 만드는 문화 같아요.
저는 다른 대안을 찾을 수가 없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에서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삼는데,
그런 개인이 모인 사회가 다른 모습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출처에도 나옵니다만 시험성적이라는 형식적 능력주의를 이상적 능력주의로 보고 과도한 보상과 특권이 주어지는 게 문제라네요. 즉, 사회에 특권층이 없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핵심은 과도한 보상이 불평등을 만들고 있다는 거죠.
물론, 그 특권층이 누구인지를 먼저 가려야 겠지만요
저는 출처의 글이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말한건지, 기사로 요약하다 보니 저렇게 된건지 모르겠지만요.
"사실 ‘현실적 능력주의’뿐 아니라 ‘이상적 능력주의’를 함께 비판해야 한다."
"이상적 능력주의는 마이클 영이 말한 가상의 영국 사회처럼 순전히 개인의 IQ와 노력만으로 경쟁한 결과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는 사회다."
"이상적 능력주의는 어떻게 보면 더 위험하다.
사람들은 이걸 굉장히 긍정적으로 여기는데, 사실 불평등 문제에 있어서는 훨씬 치명적이다."
글을 보면 개인의 순수한 능력과 노력으로 경쟁한 결과에 따른 배분도 불공평하다고 하고 있죠.
(배경, 시험, 학력, 학벌로 능력이 가늠되는 것만을 불공평하다고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능력주의가 불평등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다른 기준을 세웠을 때 불공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함께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불공정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아서요.
말 그대로 이상적 능력주의란 게 허상이라는 게 출처글의 요지입니다. 불가능한 이상을 현실에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그와 유사해 보이는 형식적 능력주의를 그거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거죠. 어차피 불가능한 거니 불평등을 없애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거겠지요. 지금의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일종의 질문이지 결론을 내자는 글은 아닌 거 같긴 합니다.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거죠.
저는 그렇게 읽히지 않습니다.
저 글은 능력주의의 "불공평"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이상적 능력주의 둘 모두가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죠.
공정함과 공평함은 일반적으로는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입니다.
공정함을 위해 공평함이 희생되는 것도 문제지만,
공평함을 위해 공정함이 희생되는 것도 문제인데,
저 글은 공정함보다 공평함을 우위에 둔 것처럼 읽히네요.
(그리고 그걸 "형식적 능력주의"를 강조하며 포장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이런 점 억울하지 않았어?'
'그건 그게 형식적 능력주의라서 그래. 불공평하고, 공정해 보이지만 공정한 것도 아니라니까.'
'그런데 사실 이상적 능력주의로 가도 불공평하다. 아니 사실 더하지.')
공정함만 최고의 가치로 두지 말라는 글 아닐까 싶긴 하네요. 특히, 능력주의가 공정하단 착각에 빠져있다면 말이지요. 공정함과 공평함이 서로 대립하는 문제가 된 건 능략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글 같긴 합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한 걸 수도 있고,
제대로 옮기지 못한 걸 수도 있고,
제대로 읽지 못한 걸 수도 있으니,
알기 어렵긴 하네요.
"기회" "보상" "분배" "공정함" "공평함" "능력주의" 등등.
어려운 주제들이 많아서, 짧은 글로 담아내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생각을 한번 더 점검해 볼 수 있어서 그걸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그렇죠 오히려 유승민 전의원 딸이 특혜 아닌가요?
선천적 / 결과적 능력에 얼마나 많은 운이 작용하는데, 그러한 운의 결과물에 너무 큰 가치를 두는것은 저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우 많은 비약이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 많이 돌아다니던 이 짤과 비슷한 맥락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내용:
12분 지점 (썸네일이랑 다른 맥락의 내용 맞습니다.)
전에도 저 그림 보면서 생각했던 건데,
공평을 경기장 안에도 대입해보면 경기장 밖에서와는 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죠.
(종목을 농구 정도로 바꾼다면 더 선명해집니다.)
- 더 큰 사람과 더 작은 사람을 경기장 안에서 어떻게 공평하게 만들 것인가?
- 경기장 안에서도 공평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 경기장 안에서의 공평과 경기장 밖에서의 공평은 달라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사실상 결론이 열린결론인 글이긴 한데, 사실 그게 맞긴 해요. 우리나라는 결과적 능력주의가 너무 팽배해서 애초에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니깐요.
적어주신 글에 비유하자면 우리나라는 그러한 논의조차 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하는 사람이기만 하면 아무 상관없다 가 전 사회적으로 팽배해있으니깐요.
(물론 말씀하신것과 같은 담론이 스포츠에서도 꼭 필요하다 이런 맥락은 아닙니다. 예술/스포츠의 규칙에서까지 과도한/기계적 공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가족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능력"과 "성과"가 더 좋은 의사를 선택할 겁니다.
흔히들 능력주의를 나를 향한 타인의 판단을 기준으로 생각하는데,
타인을 향한 나의 판단을 기준으로 전환해보면,
능력주의 문제가 사회 이전에 개인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회의 문제는 잘못된 기준(배경, 학벌 등)으로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구요.
다만 그로 인한 대우의 수준이 너무 차이가 큰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의 현재 능력이 그사람의 온전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한 우연도 아니니 그에 대한 보상 역시 그 중간 어디쯤이 되는게 합리적이지 않겠냐...뭐 이런 맥락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야한다는건 아니고 극단적인 해결책으로는 소득세를 무지 높여서 국가에서 다시 재분배를 한다면 이러한 불평등을 줄일 수 있고요.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예시일 뿐 이러자는건 아닙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능력주의에 의해 발생하는 소득?보상?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향이 뭐가 나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도 당연히 일리가 있습니다.
사회의 방향성은 결국 개인의 방향성의 합이고, 개인의 방향성은 다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게 서로 맞물리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이든 사회든, 우리나라는 너무 무조건 최적/최선의 선택만을 원하고 아주 약간의 실패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이러한 능력주의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더욱더 치중된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위 10%가 아닌 상위 1%의 결과를 위해 기꺼이 몇배의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니까요,
보상의 문제도 저는 비슷하게 봅니다.
자신의 능력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어떻게 주어질까가 아니라.
타인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나는 얼마나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보면,
그 합이 양극단이 차이가 커지는 이유가 되는 거겠죠.
결국 추가 비용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까지 더 지불할 마음이 있는가의 문제인데,
이건 욕망의 문제라서 "능력주의"와는 좀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치열한 경쟁 혹은 노력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능력이든 노력이든 남들보다 좀 부족하면 남들보다 좀 부족하게 살면 되는 거 같은데,
다들 어떻게든 남들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때 "남들"은 평범한 "남들"이 아니라 그보다 한참 위 "남들"인듯 싶고요.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 부분은 결국 개인의 지불의사에 있어서 제어를 할 수 없다면, 결국엔 세금으로 재분배를 하는 방법 밖엔 안보이는데... 사실 이게 꼭 좋은 방법이 아닌것은 과거에도 많이 사례들이 있던지라 사실 이 현상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정말 잘 모르겠네요.
딱 이런 류의 기사와 글이군요.
그런데 이런 주장을 "연세"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낸다구요? ㅎㅎ
시험 학력 같은것들일수 밖에 없습니다
저글을 쓴사람 조차도 고학력자를 당연히 선호하는 사람이며
사람의 노력과 과정도 인성조차도 그나마 학력이 필터링 해주는 역활이거든요
글 내용은 이것도 저것도 싫다는 내용 밖에 안되는걸요
능력주의를 비판하는데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사회 공동체의 협의' 를 가지고 오다니
고구마 백개먹은 느낌이네요
주사위 굴릴 꺼 아니면 뭔가로 줄세우기를 해야 하는데...
쉽게 말해서 그 줄세우기에 필요한 객관적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보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선발가설' 문제인데...
이미 학문화 되어 연구된지 오래되었고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저 두 방식 모두 능력으로 경쟁해서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그 학위가 주는 지대로 남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둘 다 능력주의 입시죠.
이런식의 입시의 결과는 좋은 학벌 = 좋은 직장은 내 능력의 결과 내가 당연히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듦니다.
마이클 샌덜 교수가 주장하듯이 능력주의를 없애려면
1. 과거처럼 귀족 아들이 지위를 상속받거나 (영국식이죠, working class는 대입을 아예 포기하고 저임금 일자리로 만족하고, 중산층 이상만 대학을 가고 부모들의 지위를 간접적으로 이어받죠)
2. 입시에 확률적 요인(뽑기)를 도입해서 능력주의를 희석하는 방식
둘 중에 하나 밖에 없습니다.
2번으로 가면 더 좋은 점은 우리 중고교 아이들의 입시 지옥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도 있습니다.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시험에서 일정한 점수를 획득하면 합격하고 (절대평가)
해당 합격증이 있으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시기에 입학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법이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수능 5등급 정도를 기준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라는 책에서 읽은 부분인데 나쁘진 않겠다 싶었습니다.
정확할 수가 없죠
공정하게 합리적인 평가가 뒷받침이 안된다는게 문제이지 사람마다 능력과 노력의 정도가 달라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위치가 달라지는 것인데 그걸 개개인들이 존중하고 인정하지 못하니 불만들이 생기는 것 같더군요.
시험 잘보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라면 AI를 모시고 살아야 할까요?
인간의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그럴수가 없죠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유능할것 같은 사람을 뽑는거죠.
아무런 평가 기준이 없는 신입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학벌이 판단의 가장 큰 기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취업예비생이 스스로 기업에 어필할 수 있는 경력? 수단? 을 만들면 충분히 입사때 어필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사람은 전체 취업예비생 대비 극소수죠.
제가 보기엔 오히려 기업쪽은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취업예비생의 마인드가 더 못따라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시 잘 해서 수능 잘 해서 의대간 것도 일종의 능력 증명이죠. 물로 의대 준비에 가정의 형편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합니다.
로스쿨도 마찬가지죠. 다만 로스쿨 자체만 보면 이제 사법고시 시절의 준비 비용은 가뿐히 능가해서 지금은 넉넉한 집들 아니면 로스쿨도 쉽지 않아요.
위에 댓글 다신 분의 평등 공정 그림에서 공정을 이루는 방법이 문제인 것 같아요.
사법고시 시절에는 개천룡들이 나왔지만 이제는 개천룡들이 나올 수가 없게 되었죠. 사법 카르텔을 무너뜨리고자 했지만 계급 카르텔은 더 공고하게 만든 것이 로스쿨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의대도 똑같고요.
시험을 통한 지대추라도 일단은 시험을 통과한 능력은 인정해야죠.
능력주의를 모든 분야에 적용할 필요는 없지만 능력을 알맞게 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100미터 앞서 있는 사람과 능력으로 경쟁하는 게 말이 되는 건지?
사실상 능력주의는 좋은 허울일 뿐, 실상은 강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뿐이죠.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그저 굴복하는 노예근성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