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불편해하더라고요. 근거가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서 일했던 노동정책·정치 연구자가 지난 6월 정년연장 논의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냈을 때, 노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에서 만난 정혜윤(45)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을 반대하려던 게 아니었다”며 웃었다. “다만 지금의 논의는 너무 ‘위쪽’ 이야기라는 걸 지적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정년까지 가는 사람이 드물잖아요.”
논란의 보고서 제목은 ‘정년연장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중고령 노동시장 정책의 재구성’이다. 정년연장에 대한 찬반 구도 대신 “정년에 닿지 못하는 80%”를 가시화하고 정책의 축을 재설정하자는 제안이었다. 정 부연구위원은 “공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정년까지 간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며 “좋은 회사라도 40대 말, 50대 초면 나가야 한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년연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년까지 가야 하는 노동자층이 두터워져야 노동시장이 정상화된다”고 본다. 다만 현실은 정년의 벽에 닿지 못하는 다수가 이미 1차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상태다.
(중략)
정년제 도입률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300명 이상 사업장은 90% 이상이 정년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300명 미만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법정 정년이 존재하더라도 실제로 제도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으로 한정된다는 지적이다.
“법에 정년이 있다고 해도, 제도 자체가 없는 곳이 많아요. 그게 중소기업 노동자의 현실이죠.”
정년을 늘리자는 논의가 ‘정년을 가질 수 있는 소수’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다.
정 부연구위원은 이 ‘보이지 않는 다수’를 가리켜 “정년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라 부른다. 그는 “노동계도, 정부도, 언론도 여전히 정규직의 시야로 정년을 바라본다”며 “80%의 현실을 시야에 올리는 것부터가 논의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정년연장TF에서 나온 초안은 법정 정년을 2029년부터 3년마다 1년씩 단계적으로 늘려 2041년까지 65살로 연장하는 방안이다.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의도는 선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짚었다. 2013년 국회가 60세 정년제를 도입할 때도 “조금이라도 근속기간이 늘길 바라는 선의”가 있었지만, 여전히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여전히 40대 후반~50대 초반에 머문다.
“정년연장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어요. 법 하나 고친다고 현실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일본의 계속고용 제도는 정년을 기준으로 고용을 연장하거나 재고용 방식을 택한다. 중소기업은 노동력 부족으로 정년연장을 선택하고, 대기업은 임금을 깎을 수 있는 재고용을 선호한다. 정 부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이 진짜 필요한 곳은 중소기업이지만, 현실은 반대”라며 “제도가 있어도 기업 규모별 격차 속에서 보호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다소 낯설다. ‘양질의 비정규직 제도화’다.
“이미 중고령 노동시장의 다수는 비정규·시간제·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가가 이 영역을 방치하고 있다는 거죠.”
양질의 비정규직 제도화는 지금도 언제 잘릴지 몰라 불공정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일하는 다수의 고령자를 자칫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모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비정규직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안전망을 손질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의 임금·안전·사회보험·계약갱신권을 제도화하고, 국가가 일정한 규제와 관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고용보험 65세 이상 가입 확대나 산재보험 적용 확대, 건강보험료 부담 완화 등이다. 또 고령노동 이행구간을 55~60세, 61~65세 등으로 세분화해 대응할 것도 주문했다.
이른바 ‘양질의 비정규직’ 구상은 네덜란드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에서 힌트를 얻었다. 1980년대 바세나르 협약은 시간제 노동자에게 정규직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재취업·훈련 연계를 제도화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외부 유연성만 강조하면서 내부 안정성은 비워둔 상태”라며 “유연안정성을 ‘좋아 보이니까’ 가져온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신호로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년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다. 그는 “나이 하나로 고용을 결정하는 방식은 한국 사회가 가진 가장 고루한 관성”이라고 지적한다.
퇴직은 노동의 끝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우리나라의 실질 은퇴연령은 남성 65.4세, 여성 67.4세다. 정년보다 10년 가까이 더 일하지만, 일자리 질은 급격히 낮아진다. 비정규직·단시간 노동·무급가족종사자로 옮겨가는 것이다. 정 부연구위원은 “2차 노동시장으로의 대량 이탈”이라 설명한다. 정년 이후 양질의 노동력이 이탈하면, 그 아래 계층의 노동자들은 또다시 한 단계 낮은 시장으로 밀려난다. 층층이 무너지는 고용 피라미드가 형성되는 것이다.
“정년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그전에 이미 밀려난 사람들이 노동시장과 복지 체계 양쪽에서 이탈하고 있어요.”
그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인구의 40%가 국민연금 미가입자이거나 가입 10년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노동 배제가 복지 배제로 이어지는 이중의 위험이 벌어지고 있다.
(후략)
그래도... 이거라도 해야죠.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