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고대사 기록이 수거령으로 많이 소실되고 재편찬되면서 왜곡되었지만, 고구려는 장천1호분 벽화를 통해 단군의 신단수 사상(곰과 호랑이 토템)과 부여의 천강사상의 새 숭배 신화가 공존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구려 하면 삼족오가 유명하듯이 깃털을 형상화한 것으로 압니다.
신채호 선생에 의하면 고조선 중기 3조선 및 고조선 후기 열국시대에서 부여가 탄생했고, 부여는 연맹국가였기 때문에 하나의 부여가 아닌 여러 부여국이 존재했고, 그중 고구려의 시원이 바로 졸본 부여 즉 흘본 부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를 일본의 정한론에서 부여 - 흘본부여 - 고구려 원형 - 고구려 분파 - 십제 - 백제로 이어지고, 백제는 황제국으로 제후국 다시 말해 담로가 존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온조가 백제를 창건하고 정통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지만 고이왕 및 초고왕계가 맞지 않기 때문에 조선시대 재편찬하면서 왜곡되지 않았나 보는 견해가 있기는 합니다.
어쨌든 한국 사학계와 달리 비류 백제는 바로 망하지 않고 2세기 전후까지 존속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증거로 한국에서는 사서로 인정하지 않는 남당유고의 고구려 사략, 고구려 사초이며, 이에 따르며 비류 백제는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존속하다가 고구려의 정벌에 의해 토벌 및 분열해서 백잔이 되었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민족사학계 중심으로 있기는 하며, 이는 일본 서기 및 정한론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흘본 부여 - 고구려 - 비류백제 - 일본내 담로의 백제계 후손들이 일본 천왕계를 이루었다고 보는 겁니다. 곤지를 비롯해서, 사마(무녕왕) 등,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임성태자의 후손에 의해 만들어진 오우치 가문들이 있습니다. 즉 이 흐름에서 최근 일본의 천강신화 아마테라스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라 초기 백제계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스사노오의 신라행을 함께 해석하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봄이머무는언덕
IP 211.♡.155.75
11-02
2025-11-02 09:00:47
·
저건 스키타이계 금관이랑 아주 닮았네요. 초원의 길로 교류했던 증거인가 봅니다.
후렛쉬레몬
IP 220.♡.22.7
11-02
2025-11-02 09:02:12
·
중국 황제 면류관보다는 훨씬 예쁘네요
강멘
IP 211.♡.244.204
11-02
2025-11-02 09:40:16
·
다자인이 멋진데요
흐르는강물처럼...
IP 117.♡.14.115
11-02
2025-11-02 10:07:12
·
고구려와 백제는 동일문화권이고 불꽃모양이 사용됩니다. 천손의식이 있어 아마 태양을 상징하는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삼족오가 태양의 흑점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듯이요
의외로 전세계에 유물로 발견된 오리지널 금관이 몇 점 없네요;;;; 비공식적인 갯수만 따지면 60개라는 주장도 있지만 공식 학계에서 공인하는 갯수는 대략 20점 정도되고 한반도에서 발견된 (혹은 한반도의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관은 가야+신라 포함 약 9점 입니다. 위에 고구려 금관은 사실 도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 소장품이기도 하고 아직 학계에서 완전히 고구려의 것으로 확언하고 있진 않아 제외하였고 백제의 금관 장식은 제외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근사치로 보면 한국은 전세계 금관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라고 제미나이가...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이미지 최대 업로드 용량 15 MB / 업로드 가능 확장자 jpg,gif,png,jpeg,webp 지나치게 큰 이미지의 크기는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전세계 금관이 100개까지는 없을겁니다
신채호 선생에 의하면 고조선 중기 3조선 및 고조선 후기 열국시대에서 부여가 탄생했고, 부여는 연맹국가였기 때문에 하나의 부여가 아닌 여러 부여국이 존재했고, 그중 고구려의 시원이 바로 졸본 부여 즉 흘본 부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를 일본의 정한론에서 부여 - 흘본부여 - 고구려 원형 - 고구려 분파 - 십제 - 백제로 이어지고, 백제는 황제국으로 제후국 다시 말해 담로가 존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온조가 백제를 창건하고 정통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지만 고이왕 및 초고왕계가 맞지 않기 때문에 조선시대 재편찬하면서 왜곡되지 않았나 보는 견해가 있기는 합니다.
어쨌든 한국 사학계와 달리 비류 백제는 바로 망하지 않고 2세기 전후까지 존속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증거로 한국에서는 사서로 인정하지 않는 남당유고의 고구려 사략, 고구려 사초이며, 이에 따르며 비류 백제는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존속하다가 고구려의 정벌에 의해 토벌 및 분열해서 백잔이 되었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민족사학계 중심으로 있기는 하며, 이는 일본 서기 및 정한론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흘본 부여 - 고구려 - 비류백제 - 일본내 담로의 백제계 후손들이 일본 천왕계를 이루었다고 보는 겁니다. 곤지를 비롯해서, 사마(무녕왕) 등,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임성태자의 후손에 의해 만들어진 오우치 가문들이 있습니다. 즉 이 흐름에서 최근 일본의 천강신화 아마테라스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라 초기 백제계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스사노오의 신라행을 함께 해석하는 견해도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