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와 펨코의 신념체계 이해하기
요즘 우리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말과 감정의 움직임이 현실 정치와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일베나 펨코 같은 커뮤니티는 단순한 인터넷 게시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과 정서가 공유되는 언어적 공간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에서 오가는 언어는 거칠고 공격적으로 들리지만, 그 밑에는 자신이 소외되었다는 감정, 그리고 이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히 “극우 커뮤니티의 일탈”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왜 그런 언어를 쓰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언어로 응답해야 할까?”
신념이 만들어지는 과정 – 감각, 지각, 인지
사람은 세상을 감각(sense)으로 받아들이고, 지각(perception)으로 그 의미를 해석하며,
인지(cognition)로 확신/신념을 형성합니다. 누군가는 사회 변화를 ‘기회’로 보지만, 다른 누군가는 ‘위협’으로 느낍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반응이 정반대인 이유는 감각의 차이가 아니라 지각과 인지의 차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은 “평등이 확대됐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은 “남성의 자리가 줄어든다”고 받아들입니다. 현실은 같지만, 해석의 틀—즉 지각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일베나 펨코의 언어는 현실의 불안과 분노를 ‘의미의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의 구조 ― 선과 악, 질서와 혼돈, 우리와 그들
그들이 쓰는 언어를 보면, 세상은 늘 둘로 나뉩니다. ‘정상과 비정상’, ‘남자와 여자’, ‘애국과 매국’. 이 언어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순하게 만듭니다. ‘도덕의 싸움’으로 압축시켜, 감정적 안도감을 주죠. 마치 “우리는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이런 언어는 일종의 보호막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불안을 ‘정의로운 분노’로 포장하면, 내면의 상처를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배경 ― 불평등과 상실의 시대
이 신념의 뿌리를 따라가면, 결국 불평등과 상실의 시대에 닿습니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인식, 늘어나는 집값과 줄어드는 기회, 기계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시대. 이런 사회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사회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경험합니다.
그 분노와 좌절이 도덕적 언어로 번역될 때, 우리는 일베나 펨코와 같은 현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언어는 결국 존재의 위기가 만든 자기 방어의 언어입니다.
종교적 언어의 결합 ― 도덕적 확신의 강화
보수 기독교의 담론은 이 신념 구조에 도덕적 확신을 덧씌웁니다. “질서와 타락”, “하나님과 사탄”의 이분법 속에서 사회 변화는 ‘영적 타락’으로, 페미니즘이나 다양성 담론은 ‘사탄의 유혹’으로 재해석됩니다. 이 결합은 단순한 혐오를 “의로운 분노”로 바꿉니다. 그 순간 신념은 절대화되고, 대화의 가능성은 사라집니다.
언어적 감옥 ― 사피어–워프의 시선으로
언어학자 사피어와 워프는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현실도 어떤 언어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됩니다. 일베나 펨코의 언어는 ‘우리/그들’, ‘선/악’의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그 언어 안에 오래 머물수록, 세상은 그 틀 안에서만 보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어떤 언어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혹시 우리 역시, 그들의 언어를 비난하면서 또 다른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의 실천 ― 언어의 감옥을 여는 작은 습관
이 문제를 거창하게 해결하려 들기보다, 작은 언어 습관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 다른 언어를 들어보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세대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 단어를 의심하기: ‘공정’, ‘질서’, ‘타락’이란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살핀다.
- 대화를 복원하기: 설득보다 질문. “왜 그렇게 느꼈나요?”
- 감정 관리: 분노를 유도하는 콘텐츠에 즉각 반응하지 않기.
- 공공의 언어 사용: SNS에서 ‘우리’와 ‘그들’ 대신 ‘함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이건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습관의 문제입니다. 언어가 달라지면, 사고가 달라지고, 결국 관계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 사회적 회복의 접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잃어버린 자리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 논쟁보다 연결. 이기려 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
- 혐오 언어의 번역. 그 말이 표현하는 불안을 읽어주기.
- 새로운 소속 제공.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동체 만들기.
- 언어 교육 강화. 언어 감각을 회복하는 교육.
- 회복적 시선. 낙인보다 공감, 판단보다 이해.
이들은 ‘문제적 세대’가 아니라, ‘상처받은 세대’일지 모릅니다.
세계적 시선 ― 버니 샌더스가 던진 경고
이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는 수년 전부터 “극소수의 억만장자가 세상의 대부분의 부를 차지하고, 정치와 언론, 교육, 의료까지 좌지우지하는 oligarchy(과두 체제)가 이미 도래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진짜 위협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불평등이 만든 냉소와 분열이다.”
이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는 트럼피즘이, 한국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일베·펨코가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생존이 위협받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경제적·존재적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 감정은 다시 신념으로 굳어집니다.
구조적 과제 ― 존엄의 복원 없이는 해법이 없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사회 구조에 있습니다. 경제적 존엄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언어적·교육적 노력도 근본적 변화를 이끌기 어렵습니다.
- 생존 안정망 강화: 주거, 고용, 기본소득을 통한 최소한의 안정.
- 기회 구조 개편: 세습 자본, 불로소득, 불공정 경쟁의 완화.
- 존엄 회복: 노동의 의미와 공동체 가치를 회복하는 정치.
“존엄이 없는 사회에서는 이념이 신앙으로, 분노가 신념으로 변한다.”
일베와 펨코의 문제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과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언어를 회복하는 일은 곧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며, 존엄이 회복되어야 언어도 치유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다시 사람의 언어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어쩌면 그 시작은 경제적 존엄을 보장하는 개혁과 더불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대화에서 비롯됩니다.
존엄과 불평등 관련 두가지 모두 스스로 자신들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규정해버리므로써 사회적 약자에 ( 노약자 장애인등 ) 대한 배려마저도 세상 가장 불쌍한 자신들앞에선 불평등한 행태로 인식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도 하구요
제시해주신 해결방안들 이미 저렇게 되어 버린 세대는 변화될지 잘모르겠으나 ( 개인적 실천 과제부분을 그들 스스로 해야하는데 과연 그럴수 있을까요... )
아직 어린 일베나 펨코에 물들지 않은 이후 세대를 위해 진짜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장기적으로 보고 꼭 고려해보면 좋겠네요. 새로운 소속 ... 지금과같은 부정적 연대의식 말고 긍정적인 연대의식을 식을 느낄수 있게 해주는 지속적인 교육 또는 공동체가 필요해보입니다.
저희 아이들도 엄청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이 이기적인 것도 인정합니다.
저는 마이클 센델 교수 책들 읽히고, 학교에 보고서 쓸 때 이타심에 대해 심화탐구하는 방향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과거 된장,김치녀/중국혐오/좌좀/씹선비 이외 키보드워리어, 사이버전사등 기원 찾고 이거 주도적으로 퍼트리고 시위하는 이들이 뭐하는 놈들인가 찾아보면 꽤나 답나옵니다. 사회적 문제만은 아닙니다. 언어전쟁,문화전쟁 / 인지,심리전을 실행하는 인간들 예기죠. 이게 핵심입니다.
PS. 배인규 같은 애들이 어디서 왔는가? 이상할정도 이들 집단에게 관심이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