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사평역(綠莎坪驛)
한겨울에도 푸르다 자랑하는 깊은 녹사평역에 가면
우리는 고개 숙여 포장 잘된 바닥만을 보며 걸어야 한다.
이름값 못하는 녹사평역에 가면 고개 들어 남산쯤은 봐야 겨우 봄이 온 줄 알 수 있다.
4월,
꽃 하나 피지 않은 푸른 녹사평은
푸르름이 하루치를 하루치를 더해 가도
찬기 남은 역사(驛舍) 깊은 지하 4층에서는 봄을 찾을 수가 없다.
푸른 들 넓다 자랑하는 녹사평역 깊이 숨어 있는 지하 4층에서도
남산 겨우 보이는 2번 출구에서도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잘 생겨 더 슬픈 아들을
밝게 웃어 더 슬픈 딸을
푸른 잎 자랑하는 너무 깊은 녹사평역에서는 봄을 찾지 못해
가까운 이태원으로
고갯길 남산 넘어 먼 시청 광장으로 등을 떠민다.
눈물 많은 시청 광장에서
아우성 고통스러운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오늘도 남은 이들은 서러워
남산 넘어 있다는
이름값 못하는 늘 푸른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원망한다.
오지 않는 귀인(貴人)을 기다린다.
다시 읽은 뒤 눈 감아 그때를 두렵게 떠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