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을 섭취할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소, 돼지 같은 동물도 우리나라처럼 버리는 것 거의 없이 철저하게 발라 먹는 나라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음식문화 전문가들이 그 가장 큰 이유가 '우리나라의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이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먹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런 글을 읽거나 유튜브 같은 영상을 보면 그러려니 했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전쟁을 빼면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못 먹고 굶어 죽는 사람이 중국, 일본, 유럽 보다 평균적으로 많았을까요? 오히려 압도적으로 우리가 적었을 것 같습니다. 우린 일찍부터 국가가 전국에 힘을 뻗치고 있었고 굶어 죽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도 마련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시절 중국, 일본, 유럽의 평민들의 삶은 끔찍했다는게 정설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독초까지 먹고 소고기 돼지고기를 잘 발라 먹는 이유를 먹고 살기 힘들어서 라는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 우리 민족은 먹는데 진심이었다~ 이 이유 뿐이 딱히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저만 봐도 그렇구요.
아~~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1960년대까지 보릿고개라는 말이 현실이었을정도로 먹을게 없기는 했을겁니다.
일단 토질이 유럽이랑 비교하기 힘들고, 제도나 주변 환경이 농사 짓고 살기 쉽지 않았던것 맞는것 같습니다.
다들 50~60년대 힘들었다는 이야기 하는 선생님들한테서 배우고 자랐죠.
정작 20~40년대 어르신들 이야기에는 그런게 없더라구요 ㄷㄷㄷ
그리고 꾀도 있어서 먹는 방법을 다양하게 강구해서 그나마 먹었지
아닌 자들은 못먹는거 취급하고 굶으면 굶었지 안 먹고 말았겠죠.
1950년대 이후 보릿고개 같은건 전쟁으로 전국토의 황폐화가 큰 영향이였고요
베이비붐으로 폭발적인 인구도 이유에 포함 됩니다.
뭔가 알수없는 성질의 차이아닐까싶네요.
- 죽어도 저건 안먹는다
- 뒤지겠는데 이거라도 먹어야한다
장이 발달하게 된게 다양한 식물들을 먹게 될수 있었던 것 아니였을까라고요.
유럽쪽은 저건 신의 저주다 뭐 이런식이 되면 쳐다도 안보고 뭐 그랬다고 들었지 말입니다.
땅속에 있는 작물을 악마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본적 있습니다. 감자같은게 그래서 인기가 없었다더군요
어쨌든 쌀농사 기반으로 생산력이 되니까 인구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 있었던거고 가난해서 이것저것 먹게되었다?는 근거가 부족한 것 같아요
차라리 4계절 있고 산,바다 접해있으니 여러 재료가 다양하게 발달했다가 더 맞을듯요
보통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걸로 자주 나오는 게 나물류인데 남들이 먹지 않는 걸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 자체가 꽤나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거든요.
솔직히 안 먹어도 그만인 걸 굳이 한 것을 보면 먹는 것에 진심이란 말이 어울려요.
조선때는 나라에서 먹지말라했다면서, 40만마리 도축했다는 기록도 있고 ~
오늘날 유행하는 대부분의 한국대표 음식들은
왕이나 귀족들이 먹던 음식이 아니라
가난한 민초들이나 천대받던 스님들이
주위환경을 최대한 극복하며 찾아 먹었던 음식들이라 할 수 있네요.
우리가 갔으면 아이랜드 대기근도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단위 면적당 쌀 생산력이 세계적으로 상위권입니다.
먹어도 되는지 시도하다 하늘로 가신 조상님들이 얼마나 많으실지...
감사드립니다.
조상님들 : 마시쪙~
1. 잘못된 인과 관계와 허수아비 논증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뭐라도 먹게 됐다” “그런데 납득이 안된다.”
작성자는 음식문화 전문가들의 설명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먹을 게 없어서 아무거나 먹었다”는 식으로 바꿔놓고 그걸 반박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후, 지형, 농업 생산 구조, 생태적 적응’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입니다. 즉, 글쓴이는 학자들의 복합적인 설명을 ‘굶주림 때문’으로 축소시켜 놓고 반박하는 허수아비 논증을 펼치고 있습니다.
2. 역사적 비교의 근거 부족
“조선시대에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 유럽보다 굶어 죽는 사람이 적었을 것이다.”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추측입니다. 실제 조선시대에는 대기근, 을병년 기근, 병인년 대기근 등 기록된 대규모 아사 사건이 많습니다. 반면 18–19세기 일본은 농업 개혁과 저장 제도로 기근을 줄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적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적 근거가 약한 가정입니다.
3. 국가 통치력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
“국가가 전국에 힘을 뻗치고 굶주림을 막는 정책이 있었다.”
조선이 중앙집권체제였던 것은 맞지만, 그 정책들이 실제로 효과적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의창이나 상평창 같은 제도는 부패와 비리로 자주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책이 있었다 → 굶주림이 적었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4. 문화적 본질주의
“결국 우리 민족은 먹는데 진심이었다.”
이는 논리적 결론이라기보다 정서적 결론입니다. “먹을 게 없어서 먹었다”는 설명을 부정하고 “우린 원래 먹는 걸 좋아해서”라고 말하는 건 순환 논리입니다. “잘 먹는 이유는 잘 먹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설명입니다.
5. ‘힘들어서 먹었다’ vs. ‘진심이라서 먹었다’의 이분법
“힘들어서 먹은 게 아니라 진심이어서 먹었다.”
사실 두 가지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인간은 생존의 필요 속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개발하고, 그 과정에서 음식문화가 정교해집니다. 즉, 결핍이 창의성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힘들어서”와 “진심이어서”는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6. ‘독초까지 먹는 한국인’이라는 서술의 왜곡
“외국에서는 독초로 취급되는 나물까지 먹는다.”
이 표현은 사실관계와 논리 두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독초’라는 단어의 부정확성
고사리, 취나물, 두릅 등은 생으로 먹으면 독성이 있지만, 삶거나 말리거나 절이는 과정을 거치면 무해해집니다. 즉, 한국인이 ‘독초를 무모하게 먹는다’기보다, 조리와 가공을 통해 식용화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둘째, 보편적인 현상을 ‘한국 특유의 문화’로 포장함
독성이 있는 식물을 가공해 먹는 문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일본은 독성이 있는 후키(버터버)를 데쳐 먹고, 남미에서는 시안화물이 있는 마니옥(카사바)을 삶거나 발효시켜 먹으며, 유럽에서도 라임빈이나 엘더베리를 조리 후 섭취합니다. 이런 예는 인류 보편의 생태적 적응입니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독초라 취급하지만 한국은 먹는다’는 주장은 왜곡된 대조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독성이 있으나 조리하면 안전한 식물’을 식용으로 삼습니다. 차이는 식물의 종류나 조리 방식이지, 한국만 특별히 ‘독초를 먹는 민족’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7. ‘우리가 유일하다’는 과장된 일반화
“소, 돼지도 버리는 부위 없이 먹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이는 민족 중심적 과장입니다. 프랑스, 중국, 몽골 등 대부분의 농경·유목 문화권에서도 ‘nose-to-tail’ 식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버리는 부분 없이 먹는 건 인류 전반의 특징이지 한국만의 특성은 아닙니다.